특별함을 향한 나의 광기 어린 집착
나는 이제 쓰디쓴 무난함을 삼키고 ‘보통’을 만끽하며 살고 있지만, 특별함에는 여전히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여태껏 내가 품어왔던 특별함을 향한 망상에 가까운 집착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저세상 사람이었을 테니, 생명의 은인에게 애착을 갖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 침울한 과거를 언급하는 것을 왠지 자기 연민에 빠져 타인의 위로를 기다리는 것만 같아 피해왔지만, 내 광기 어린 집착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선 이 불우한 과거를 들추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다. 어두운 시절은 최대한 간략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참고로 내 이야기는 거창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그저 이 '특별함'이라는 녀석이 나에게서 피어나 저물어 간 과정을 누군가와 공유하고자 하는, 특별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담은 지극히 소소한 글이다.
네 주제를 알아, 이년아! (맹렬한 비웃음)
엄마가 밥 먹듯이 했던 말이다. 내가 뭔갈 하고 싶다고 말을 꺼낼 때마다 그녀는 진심 어린 비웃음을 지으며 ‘네 주제를 알아’라고 대꾸했다. 그 뒤에는 ‘네 오빠 정도는 돼야 할 수 있지’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을 터이다. 개그우먼이 되겠다고 선언한 날에는 갓 쪄서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찐빵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기도 했다. 그녀는 이렇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내딸의 가능성을 철저히 무시했으며,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개그우먼. 선생님. 심리학자. 간호사. 치위생사.
차례로 짓밟히고 농락당하는 내 꿈들 앞에서 나는 부모가 주입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난 오빠처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전교 회장은커녕 반장도 못 해봤고, 눈높이 학습지도 밀렸으며, 부모를 끔찍이 공경하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부모 공경을 멈춘 건 오빠의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 씌운 뒤 들고 패던 엄마, 늘 그렇듯 방관한 아빠, 그리고 끝까지 자백하지 않은 오빠가 선사한 그날 밤의 충격 때문이었지만, 내가 손짓발짓을 동원해 아무리 생생하게 설명해도 가해자와 방관자는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들의 비난과 가스라이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 말대로 내가 우리 가족의 유일한 오점이니, 나만 없으면 우리 가족이 완벽해질 것이다. 나는 사라져야 마땅한 존재다. 오빠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 아빠는 대기업 사원. 엄마는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엄마. 그날도 '완벽한' 엄마의 폭언을 들으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지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질문을 처음으로 던졌다. 이 맹랑한 질문 때문에 또다시 얻어터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그 대답은 내가 망설여 왔던 행동을 실행에 옮길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어줄 테니까.
“엄마는 내가 없었으면 좋겠어? 원하면 없어져 줄게.”
다행히 엄마는 몽둥이를 집어 들지 않았다. 어디서 건방진 질문을 하냐고 길길이 날뛰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그 어떤 반응보다 훨씬 아프고, 차갑고, 잔인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래? 네가 어떻게 사라질 건데?”
'완벽한 엄마'는 늘 그렇듯 더럽게 기분 나쁜 비웃음을 내뱉은 뒤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그녀는 내가 없어진다는 가능성조차 비웃은 것이다. 내가 피워낼 꿈과 목표뿐만 아니라, 내가 시들어 사라질 최후마저도.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을 비웃은 것이다. 모든 것을.
그녀는 그렇다 또는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진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심중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엄마라는 사람은 딸의 ‘없어짐’을 도발한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차근차근 없어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단 한 가지라도 보란 듯이 성공해 내서 평생 나를 의심했던 그들에게 '특별한 퇴장'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그들이 내 싸늘한 시신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 거나 '안돼!'라고 울부짖을 거라는 생각 따윈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장례식 비용 때문에 무턱대고 ‘없어져 버린’ 나를 비난할 거라는 전개가 가장 현실적이었으니까. 그리곤 이내 비로소 완벽한 가족이 완성되었다며 파티를 열 것이 유력했다.
'나 송코튼은 18살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이 모든 건 내 가족 때문이다......'
그러나 본 때를 보여주겠다는 결심과 다르게 매일 밤 유서를 고쳐 쓸 때마다 숨을 쉴 수 조차 없을 만큼 서러운 울음이 북받쳐 올랐던 걸 보면, 난 내심 이 세상에 미련이 꽤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어느 하나 베풀어 준 것 없는 세상이었지만.
이런 나의 ‘없어지기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은 놀랍게도, ‘나는 어쩌면 지금 죽기엔 너무 특별한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미친 생각이었고. 이 미친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든 것은 다름 아닌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