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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Mar 18. 2024

동물위생시험소

3년을 일할 기관이 결정되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돌아온 사회는 너무 반가웠다. 고작 3주간의 격리로 사회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새삼 대체복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어지는 실무교육을 받기 위해 고향집으로 향했다. 기존에는 모두 모여 실무 교육을 받았으나, 코로나의 극성으로 이마저도 비대면 교육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훈련소를 나올 때 우리가 향할 지역은 결정되어 있었으나, 구체적인 기관까지는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실무교육이 시작될 즈음, 충남 내에서의 세부 배치에 대한 논의를 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는 합의 하에 카카오톡 뽑기 기능으로 번호표를 뽑았다. 나는 꽤 빠른 순번을 뽑았고, 동물위생시험소 당진지소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실무교육 불참은 복무기간의 연장 사유이기 때문에 교육은 필수로 참여해야 했다. 하지만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공중방역수의사들은 교육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장 다음 주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자동차와 거주지 등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배치지에서 관사가 없거나 공실이 없고, 있더라도 매우 노후화되고 좁아 대부분 집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지방은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출퇴근을 위해서는 운전이 필수적이다. 이제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선 모든 것이 막막한 상황인 셈이다. 다행히 당진은 인프라가 잘 갖춰진 축에 속해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었고, 선임이 선뜻 카풀을 해주었기에 차량이 구해질 때까지 출퇴근이 가능했다.


  공중방역수의사 배치지는 크게 검역본부, 시군청, 동물위생시험소로 나뉜다. 세 기관에서 하는 일은 크게 다르기에 성향에 따라 선호도가 나뉜다. 시군청의 경우에는 보다 행정적인 업무가 주를 이루고, 수의직 공무원이 없어 공중방역수의사 1명에게 수의사 업무가 몰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과 직결되는 업무가 많아 전화 통화량이 많고, 민원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축산업이 돌아가는 체계를 알 수 있고, 행정 업무를 선호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잘 맞을 수 있다. 게다가 주거 지원이 되는 경우가 있고, 보다 인프라가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물위생시험소는 본소와 지소로 나뉘는데, 본소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지소를 두어 업무를 분산시킨 형태이다. 동물위생시험소에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수의사가 할법한 일을 맡게 된다.


 본소는 각 도마다 하나씩 분포하여 다양한 실험을 담당한다. 아무래도 실험 장비가 고가인 데다 지소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지소에서 운반한 시료를 본소에서 한꺼번에 실험하는 경우가 많다. 실험의 종류와 들어오는 시료의 양이 많다 보니 분과도 많이 되어 있고, 배치되는 인원도 많다. 


 지소는 가축 전염병을 근절하는 방역팀과 식육 위생 및 인수공통전염병 예방을 담당하는 위생팀으로 나뉜다. 동물위생시험소에 온 첫날 우리는 방역팀과 위생팀 중 선호하는 팀으로 배정을 받았다. 다행히 4명의 공중방역수의가 2명은 방역팀을, 2명은 위생팀을 선호하여 나름의 질서가 잘 유지되었고, 나는 방역팀에서 3년의 대부분을 근무했다.


 방역팀은 시료의 채취부터 실험의 진행,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염병이 번지지 않게 막는 일 전반을 담당한다. 이를 통해 인수공통전염병이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고, 축산 농가에 경제적 피해를 주는 질병의 전파를 막아주는 1선 역할이다. 방역팀은 업무의 강도가 높고 현장에서 다칠 위험성이 있으며, 일이 몰리는 날은 하루 종일 신경을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시군청만큼은 아니더라도 전화가 꽤 걸려오는 편이고 협업하는 다양한 기관과 소통을 할 일이 많다. 축산 경력이 오래된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꽤나 애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대동물 핸들링과 채혈을 배울 수 있어 대동물 수의사에 관심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면 칼퇴근이 가능하다. 나는 퇴근 후의 라이프를 포기할 수 없었고 불면증 때문에 수면의 질이 낮아 휴식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역팀을 선호했다.


 위생팀의 경우 우리가 섭취하는 축산물의 위생을 담당한다. 근래에 사용된 약물이 잔류되지는 않았는지 검사하고, 식육 중 미생물 등 병원체를 검사한다. 검사관으로서 도축장이나 도계장으로 파견되어 공정상의 위생 관리를 담당하며, 식용으로 부적합한 경우 폐기를 명한다. 민원을 받을 일이 적고 받더라도 꽤나 존중을 받는 듯싶다. 또한 근무자가 적고 업무 강도가 완만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파견 기관의 일정에 맞추어 출퇴근을 해야 하므로 새벽 출근이 일상이고, 도축 작업이 늦어지면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잦아 총 근무 시간이 길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3년이 지나서 바라보니, 어떤 기관에서 어떤 일을 맡든 공중방역수의사와 수의직 공무원분들 모두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해주고 있었다. 그들이 각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주기에 우리는 마음 놓고 축산물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3년이라는 기간이 너무나 긴 시간이기는 했지만, 허황된 시간은 절대 아니었다. 인생이란 게 항상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편안한 길은 아니지 않은가. 이 불편한 길의 끝에서 공중방역수의사 생활을 반추하다 보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들이 하나 둘 모여 의미를 밝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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