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첫 드럼은 오락실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느 날, 오락실 한 켠에서 드럼을 치던 고학년 오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의젓한 어깨와 현란한 박자, 머리를 울리던 퉁퉁거림. 그 순간 이상하게도 직감했다. 아, 나는 평생 드럼 치는 사람을 좋아하겠구나.
그 이후로 밴드부 드럼을 치던 오빠들을 몰래 동경했고, 아이돌 밴드 무대에서 드럼 파트가 카메라에 잡히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밴드 ‘데이식스’를 만나 밴드 사운드에 깊이 빠졌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나도 저 박자의 중심에 서보고 싶다고.
두둥탁.
그 단순한 소리만 낼 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드럼을 배우면 ‘드럼 악보’를 본다. 일반 오선지와는 다른, 쿵과 짝이 구분되어 있는 표기. 킥을 어떻게 밟는지, 스틱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팔의 각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부터 배운다.
막상 드럼 앞에 앉으면, 그 광활한 세트가 나를 압도한다. 심벌, 탐, 스네어, 킥. 악기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물 같다. 그 앞에 앉아 발과 손을 동시에 움직이려 하면 금세 깨닫는다. 이건 음악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걸.
킥을 밟을 때의 힘, 스네어를 칠 때의 타격감, 심벌이 울리는 순간의 파워. 예쁜 소리는 우아함이 아니라 체력에서 나온다. 일주일쯤 지나 ‘쿵치따치’ 리듬으로 한 곡을 완주했을 때, 나는 거의 유산소 운동을 마친 사람처럼 땀에 젖어 있었다. 그날 내가 처음 연주했던 곡은 백지영의 ‘사랑 안해’였다.
한 곡을 끝까지 끌고 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동안 드럼에서 들었던 건 단순한 박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에너지였다는 것을. 무대를 빛나게 한 건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연주자의 땀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공연장에 가면 아직도 드럼을 먼저 보게 된다. 저 자리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체력을 다 써가며 곡을 밀어붙이고 있을 것이다. 드럼은 박자를 맞추는 악기가 아니라, 심장을 울리는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드럼을 잘 치지 못한다. 그래도 안다. 박자를 맞추는 연습을 하다 보니, 내 삶의 리듬도 조금은 또렷해졌다는 걸. 드럼을 배우며 나는 소리를 낸 것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