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눈물카페(Café deTears)를 들어보셨나요?

자신을 위해 울어 본적인 언제인가요?

by 영웅
나는 이제 너에게 슬픔(눈물)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눈물)을 주겠다, 정호승 <기쁨이 슬픔에게>


과거 홍대는 배고픈 젊음과 열정이 가득한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갖 상권으로 얼룩져 지저분한 전단지가 거리를 가득 메우니 자연스레 발걸음이 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만 기억될 뻔했던 그곳으로 최근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곳엔 눈물카페(Café de Tears)가 있기 때문이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와 달리 한적한 10번 출구로 나와 우측 골목으로 들어 들어가면 그곳을 발견할 수 있다. 시끌벅적한 인파도 요란한 버스킹도 없는 나만의 장소 10번 출구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와 승강장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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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코너에 자리 잡은 눈물 카페는 작은 정원이 있는 앤틱 한 건물이다. 그 카페의 나무 손잡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듯한 코튼 향과 함께 푹신한 소파와 책장들이 펼쳐진다. 오픈되어있는 듯하면서도 교묘한 가구들의 배치로 인해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이곳 주인은 건축학과나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nter-please.jpg The Valley, Virgin Gorda

눈물 카페라고 해서 딱히 폐쇄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단지 냄새부터 소리까지 인간의 편안함을 극도로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곳은 바로 “Café de Tears” 이곳은 눈물 카페 아니 눈물을 허락하는 카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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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자리는 편안한 소파, 책 몇 권이 흐트러져있는 작은 탁상 그리고 원목 서랍 위에 크리넥스 티슈가 올려져 있다. 서랍을 열어보니 작은 손거울과 클렌징 티슈, 베이비 로션이 다소곳하게 놓여있었다. 실컷 울고 난 뒤 화장이나 매무새를 고치라는 배려가 아닐까? 그런데 재밌는 건 눈물을 편하게 흘리라는 이런 작은 배려들에서부터 벌써 난 울컥해버린다.


그곳에서는 원 없이 울 수 있다.


슬픈 사진도 생각도 필요 없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웅크린 채 눈물 흘리고 있는 소년, 소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곧 내 눈에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걷잡을 수 없이 흐르게 된다. 잔잔한 음악소리를 비집고 퍼지는 내 울음소리가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살짝 숨죽여보지만 이미 쏟아지는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 눈물을 흘리는 지금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마크툽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만약 울어야 한다면 어린아이처럼 울어라. 예전에 너는 어린아이였고, 우는 것은 네가 최초로 배운 것들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삶의 일부다. 너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잊지 마라. 원하는 만큼 시끄럽게 소리 내어 울어라. 흐느껴 울어도 좋다. 어린아이들은 그렇게 울고 마음을 진정시키니 말이다. 그리고 그 울음 이후에는 좋은 관심사를 찾기 위해 명상하라
249991721e.jpg 마크툽 39번째 이야기 84쪽

“Café de Tears”는 그렇게 내게 자유를 주었다. 눈물은 인간성의 정화이고 위안이고 깊은 밑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카타르시스다. 그 소중한 과정을 느끼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곳에 방문했다. 당신은 언제 자기 자신을 위해 한껏 울어보았는가?


누군가는 이 글의 제목을 보고 별 신기한 카페가 또 오픈했구나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이 글을 다 읽고 아 정말 이런 카페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분들께 미안하지만 현재 눈물 카페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묘사는 단지 눈물을 흘리기에 이상적인 장소를 그려본 것이다.


우리에겐 눈물이 필요하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적절한 기회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허락해줄 수 있는 본인 스스로의 용기도 필요하다. 위로가 되는 자기계발서 한 권보다 진실된 눈물 한 모금이 본인 스스로에게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 성역을 지키는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성역(sanctity of human heart)을 침범하는 일이다. 나데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서는 이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큰 죄라고 하지 않는가? 눈물을 보이고 더 강해지길 바란다. 눈물을 보이고 그 성역을 오랫동안 지키길 바란다.

오늘은 죽을만큼 보고 싶어도.jpg 신원미상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