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part. 1
할미꽃이 얼음을 뚫고 망울을 틔워내면 사람들은 사냥을 나간다. 이 무렵 땅의 주인은 바람, 사납고 맹렬한 모래바람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 바람이 지나야 비로소 야생화가 기지개를 편다. 몽골, 그 황량한 대륙에 여름이 시작됐다. 울란바토르에서 홉스굴 호수로, 다시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떠도는 동안 소실되지 못한 고독이 별이 되어 뒤를 따랐다.
ULAANBAATAR 울란바토르
초원 위에 외로이 게르가 있고, 게르 너머 지평선 끝이 사막과 만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몽골 인구의 절반인 150만 명이 사는 곳으로, 현대적인 도시의 형태를 하고 있다. 칭기즈칸 광장을 중심으로 행정기관과 여행자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바람이 시작되는 곳
소년은 화면에서 웃고 있었다. 유행이 한참 지난 알록달록한 점퍼는 때에 절어 있었고, 군데군데 헤지고 구멍이 나 있었다. 볼은 발갛게 텄고, 손톱 아래가 검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 더벅머리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서서 몸을 배배 꼬던 소년이 수줍게 내민 것은 수태차. 툭 튀어나온 광대 위의 옅은 갈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디선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점퍼만큼이나 낡은 게르가 보였고, 양 몇 마리가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카메라가 물러나자 시야가 넓어졌다. 광활한 초원 위에 둥근 게르 하나, 수십 마리의 가축. 소년은 그 무리의 대장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가까운 이들 몇몇이 몽골 여행을 준비 중이라고했다. 6월부터 9월까지 짧은 여름이 이어지는데, 이즈음이 여행하기 가장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4월부터 눈이 녹기 시작하고, 몇 차례의 모래폭풍이 지나간 다음, 6월이 돼야 야생화가 말간 얼굴을 드러낸다고. 야생화보다 소년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몽골에 간다고 한들 소년을 만날 리 만무하다. 몽골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고, 화면 어디에서도 소년과 가족이 지내고 있는 곳을 짐작게 할 표지를 찾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바람처럼 몽골로 향했다.
독립 영웅의 기개가 살아 있는 광장
공항에서 울란바토르 시내로 향하는 길은 놀라울 정도로 평평했다. 쭉 뻗은 고속도로 양쪽으로 초원이 펼쳐지고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처럼 가축들이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이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먼 산 아래 게르 군락에서는 굴뚝마다 뽀얗게 연기가 피어났다. 사방에서 타닥타닥 나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칭기즈칸 광장으로 향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붉은 영웅 = 칭기즈칸’이라 생각하겠지만, 붉은 영웅은 수흐바타르를 말한다. 1919년 울란바토르는 중국군에 점령당했다가 러시아 백군에게 넘어간다. 이후 러시아에서 독립해 달라이라마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수립하지만, 청나라의 간섭을 받는 등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다. 수흐바타르는 이때 몽골인민당을 결성해 무장 독립운동을 벌이고, 레닌과의 협상을 통해 1921년 몽골인민정부를 수립한 인물이다. 칭기즈칸 광장은 수흐바타르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장소로,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불리다가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칭기즈칸 광장의 중심에는 수흐바타르의 기마상이 있고, 맞은편에 칭기즈칸 동상이 있는 몽골 정부청사가 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문화궁전과 오페라극장, 은행, 증권거래소 등의 주요 기관과 각종 호텔,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 카페, 쇼핑몰이 밀집해 있다.
시간이 고여 있는 박물관
국립박물관은 낯선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다.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5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몽골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9개의 전시실을 갖춘 몽골 국립박물관은 소장품을 시대별로 구분해 전시했다. 선사시대부터 칭기즈칸 시대를 지나 사회주의, 민주주의로 넘어오기까지 몽골의 역사를 보며 문득 궁금했다. 한때 유라시아대륙을 넘나들던 거대한 제국의 영토를 이들은 왜 지켜내지 못하고, 이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걸까.
칭기즈칸의 군대는 유연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고, 몽골인뿐 아니라 중국인 기술자와 아랍인 법관, 영국인 장교도 원한다면 군대에서 받아줬다. 그들을 통해 기존의 낡은 전략과 전술을 버리고, 새로운 무기와 전략을 받아 들였다. 장수는 용맹했고, 기술은 밖으로 열려 있었으며, 기동력 좋은 말도 있었다. 그리하여 몽골이 로마제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얻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73년. 몰락도 빨랐다. 마지막 황제가 물러난 후 100년을 유지하지 못했다. 로마가 작은 도시국가에서 제국이 되기까지 800년이 걸렸고, 이후로 1000년 동안 지속된 것에 비하면 너무도 급격한 변화다. 학자들은 몰락의 원인으로 시스템의 부재를 말한다. 특유의 오픈 마인드와 기동력, 전투력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확장한 영토를 다스릴 관료제도가 발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자이승 승전 기념탑을 찾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커다란 탑이 보인다. 1921년 몽골의 독립을 위해 싸운 군인들과 1939년 일본에 대항해 싸운 군인들, 그리고 1945년 만주에서 일본과 싸워 승리를 거둔 군인들을 기리는 탑이다.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어지는 기념비의 중심에는 몽골의 전통 등이 놓여 있다. 거대한 구조물 안쪽에 모자이크된 몽골 근현대 역사화를 따라 세월을 건넜다. 입구에는 눈을 가린 늙은 매 한 마리가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Tip. 몽골에선 절대로 운전하지 마라
‘운신주왕’ 운운하며 스스로 주행의 달인이라 자부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도 몽골에서 결코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조금만 벗어나면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길을 잃기 십상이다. 방향과 거리를 짐작할 수 없는 데다, GPS도 안 잡히는 구간이 많다. 눈이나 비가 내린 후에는 더욱 절망적이다. 순식간에 있던 길이 사라지고 없던 강이 생기기도 한다. 부득이 몽골에서 운전해야 한다면 몽골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발행하는 영어 혹은 몽골어로 된 국제운전면허증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디자이너블한 100% 캐시미어 제품을 판매하는 고유 팩토리 GOYO Factory
몽골은 동물 털을 이용한 섬유 산업이 발달했다. 특히 양털을 가공해 만든 100% 캐시미어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고유 팩토리는 1993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지은 직물 공장이다. 2006년까지 캐시미어 1차 가공만 하다가 몽골 대기업이 인수한 뒤 원단과 실을 만들었고,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캐시미어 완제품은 한국과 중국, 유럽 등으로 수출된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2명이 디자인을 총괄한다. 훈누몰, 샹그릴라 쇼핑몰, 노민 국영백화점 등 울란바토르 내에 7개 매장이 있다. 팩토리에서는 동물의 털을 가공해 실로, 다시 원단과 제품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지난 시즌 디자인 제품을 30~8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아웃렛 스토어가 있다.
마리 앤드 마사 몽골리아 Mary & Martha Mongolia
몽골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외국인 빌(Bill)과 이렌(Irene)이 2007년부터 운영하는 숍으로, 몽골의 소수민족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한다. 2011년 몽골에서 유일하게 공정무역기구의 멤버가 됐다. 바양 울기에서 만든 카자흐족의 문양을 넣은 가방, 준 하라에서 만든 펠트 슬리퍼와 다양한 수예품, 아르항가이에서 만든 펠트 가방, 종머드에서 야크와 낙타털로 만든 숄, 몽골의 풍경이 담긴 액세서리, 몽골의 문화와 삶이 묘사된 마그넷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인다. 가격은 일반 기념품 숍보다 조금 높은 편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이 많다. 울란바토르에 2개의 매장이 있다.
2016년 8월, 몽골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