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버림받는 경험이 남긴 것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우리의 존재

by 웰다잉말그릇


사람의 삶을 바꾸는 사건은 언제나 거대한 비극의 모습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조용히 인생의 바닥을 무너뜨린다.

특히 그것이 부모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면, 그 사건은 한 사람의 존재 전체에 깊은 균열을 남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다양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중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 남는 질문이 있다.

“사람은 왜 가장 사랑해야 할 관계에서 버려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에 무엇을 남길까.”

오늘 떠오르는 한 내담자가 있다. 스무 살의 젊은 여성이었다.



자랑이었던 그녀는 외동딸이었다.

부모는 지역에서 꽤 성공적으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이는 그들의 자랑이었다.

어릴 때부터 눈에 띄게 영리했다. 또래보다 이해가 빠르고 기억력이 뛰어났다. 학교에서는 늘 칭찬을 받았고, 부모 역시 그런 딸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린 나이에 멘사회원이 될 정도로 높은 지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했다.

“부모도 성공했고, 아이도 똑똑하니 정말 복 받은 집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 집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 풍경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기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칭찬은 늘 성취 뒤에 따라왔고, 사랑은 성적표와 함께 움직였다.

그 사실을 어린아이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늘 긴장하며 성장과 동행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균열은 빠르게 커졌다.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부모의 표정이 달라졌다.


“왜 이 정도도 못하니?”

“너는 머리가 좋으면서 왜 노력하지 않니?”


아이에게 지능은 축복이 아니라 기준이 되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 시기부터 부모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집 안의 공기는 늘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중학교 시절,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어둠이 들어왔다.

아버지의 성추행이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아이는 결국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네가 이상하게 행동한 거 아니니?”

그 한마디는 아이의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집 안이 비어 있었다.

가구가 모두 사라져 있었고, 학원도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부모는 아무 말 없이 이사를 가버린 뒤였다.

그녀는 그날 부모에게 버려졌다.


설명도 없었다.

전화도 없었다.

연락처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아직 열여섯 살의 아이였다.


그녀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소녀 가장이 되었다.

의지할 친척도 없었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학교, 생활비, 먹을 것, 잠잘 곳. 모든 것이 갑자기 자신의 책임이 되었다.

지능이 아무리 높아도 그것은 어린아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그녀의 몸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르헤니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일상적인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병은 그녀의 삶을 또 한 번 제한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대학에 가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지능이 높았기 때문에 공부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삶의 조건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몸,

그리고 아무도 없는 가족.

높은 지능이 그녀에게 더 큰 절망을 주기도 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도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상담 중에 이렇게 질문했다.

“왜 부모는 저를 버리고 떠났을까요.”


그리고 조금 뒤에 또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던 걸까요.”


그 질문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상실과 슬픔. 공허한 외로움과 삶에 대한 두려움 모두가.



그녀의 분노는 종종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

또 멘사회원 모임에 다녀온 날이면 이유 없이 짜증과 답답함이 커졌다.

통합사례관리로 그녀를 돌보던 사회복지사가 한 번씩 전화를 요청하거나

센터에 방문에 난감했던 상황을 토로하는 일이 잦아졌다.

겉으로 보면 공격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버려진 사람의 슬픔이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또 다른 모습도 나타났다.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담 외의 연락을 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녀의 삶에서 안정적으로 남아 있는 관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 관계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8개월의 만남을 정리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그 만남을 떠올릴 때마다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부모는 아이에게 세계의 첫 번째 설명서다.

부모의 눈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배운다.

그런데 그 관계가 무너질 때,

아이의 마음에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나는 왜 버려졌을까.”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일까.”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분노로 나타나고,

때로는 공격성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는 관계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종종 그 행동만을 보고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행동은 사실 하나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버려지지 않을 관계를 찾고 있다.”



“관계의 비밀”


우리가 관계에서 이해해야 할 중요한 비밀이 하나 있다.

사람은 상처받은 방식으로 관계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버림받은 사람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먼저 관계를 공격하기도 한다.

관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래도 당신은 떠나지 않을까요?”


그 질문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분노와 공격성도 어쩌면 그런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경험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삶에서 부모라는 존재를 가볍게 말할 수 없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도 관계이고,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도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믿는다.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도 결국 관계일 것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그녀의 질문도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왜 나는 버려졌을까”가 아니라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구나.”

그 문장이 그녀의 삶에 언젠가 찾아오기를,

나는 조용히 바라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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