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100년의 삶을 추모하며...
설에 즈음하여 갑작스레 들려온 소식 하나. 앞으로 10년은 더 사시겠다 하셨던 할아버지의 부고. 100세 생일을 지내시고 돌아가셨다. 이 땅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몸으로 겪어내고, 100년을 한자리에서 지켜내신 우리 할아버지.
“온종일 문밖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 한 사람이나 볼까. 모두 다 죽어버렸어.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고독한 삶이 안쓰러워 자주 모셔오지만, 이삼일을 못 견디시고 다시 그 자리. 당신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가시곤 하셨다.
코로나 여파로 휑한 장례식장. 그러나 가족들은 모였다. 7남매를 둔분답게 가족만으로도 장례식장은 꽉 차 함께 2~3일을 보냈다. 다만, 할아버지의 죽음이 오랜 기간 흩어져 지내던 이들을 모이게는 하였으나, 정작 당신이 그 모임 속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셨다. ‘호상’이어서 일수도 있겠으나 이상하리만치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잘 짜인 예식과 절차 속에 묻혀버린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를 잘 알지 못하던 목사님들이 집례 한 피상적인 예배와 입관식장에서 흘러나오던 찬송가 소리. 엄숙한 절차 속,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바라본 벽에 떡하니 걸려있던 기독교 성화 한 장. 맞춤형 서비스. 문득 할아버지의 죽음이 값싸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인을 대하는 후손들의 방식이란....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100년을 살아온 한 인간의 삶과 고독에 대하여. 그의 삶이 추구한 것들과 남긴 것들. 할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다. 권위 있는 가부장이셨던 할아버지는 엄격하셨고, 너무 먼 분이셨다. 그렇다 해도 한 인간의 삶이, 그 마지막이 몹쓸 자본주의와 그에 걸맞은 효용성에 따라 처리(?)되는 모습은 씁쓸하다.
설을 지내며, 할아버지를 추모하며, 그의 이야기를 남기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할아버지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