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채 표류하는 그녀의 정체성

[관내분실]을 읽고...

by 흰 점

둘이 하나가 되어 셋이 되고 넷이 되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하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였다. 나의 불완전함에 누군가 하나 더하여 조금은 더 완전해지고 서로 도와 상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닥친 현실은 임신-출산-육아의 연속이 젊은 날을 통째로 점유하며 그 외의 일은 파트타임으로 소일되었다. 그렇다 하여 이 사건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한 아이가 내 삶에 들어오며 그 반경을 확대하고, 전에 경험치 못했던 풍부함을 선사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육아)이 어느 정도 끝나고(과연 끝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삶을 찾아보려니 '오롯이 나'는 사라지고 관계마저 끊어져 오직 가정에만, 남편에만 매달려 있더라는 것이다. 하물며 남편과의 사이마저 나쁘다면 '나'의 '연'은 자식과만 이어질 것이고, 혹여 건강하지 못한 '나'라면 자식이 받을 압박과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관내분실'에서 발견한 엄마, 김은하의 삶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엄마가 죽고 3년이 지나 찾은 망자의 도서관. 이 도서관은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기술을 통해 망자의 생전 기억과 습관 태도 등 마치 죽은 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만날 수 있게 해 두었다. 무당을 통한 접신이 아니라 망자의 시냅스를 스캔해 업로딩 해 둔 것을 인덱스를 통해 찾아내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 과학적 사고가 점유한 오늘의 시대에 적합한 재미있는 발상이다. 작가는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에 소위 '엄마'로 대변되는 한 여성의 고립된 삶을 '분실'이라는 키워드에 녹여냈다.


엄마는 사라졌으나 존재했다. 그러나 찾지 않으면 영원히 고립되며,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고립된 채 표류하는 엄마의 정체성... 엄마의 '마인드'는 도서관 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나 다만 찾을 수 없었다. 인덱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를 찾을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이 주인공 지민의 과제가 되었고, 지민은 자신의 기억 밖 엄마를, 엄마 이전의 김은하를 찾아 나선다.


'한 사람을 고유하게 특정할 수 있는 물건', 즉 엄마의, 엄마를 특정할 수 있는 유품을 찾아오라는 도서관 사서의 말에 따라 '그런 물건 하나쯤'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던 지민의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가 남긴 것은 대개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그나마 자식들과 관계된 것들뿐. 엄마를 특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가 하나도 없어."


지민이 동생 유민에게 한 말이었다.

엄마의 흔적이 없었다. 이십 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고립되어 살았는지, 왜 그렇게 자식에게 집착하고 모두를 힘들게 했는지, 어떻게 세상에 유의미한 단 하나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흔적을 찾는 과정이 지민에게는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그려졌지만 독자인 내게는 엄마 은하에 대한 공감과 상처로 다가왔다. 어렴풋이 보이는 나의 삶, 보다 뚜렷이 대입되는 나의 엄마의 삶이 바로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 셋이 되고 넷이 되어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각각의 개체가 나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뻗어나갈 때,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고 각기 서로 자라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가 누구이던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되거나 그림자에 갇히거나 정체될 때, 그 삶은 왜소해지고, 흔적조차 희미해질 수 있다는 사실. 모처럼 고요한 명절을 보내며,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어딘가 존재할 무수한 김은하들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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