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 위의 번영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읽고...

by 흰 점

"그러나 코라는 나섰다. 코라가 소년을 제 몸으로 막았고 그를 대신해 주인의 매질을 받아냈다. 코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벗어난 사람이었고, 길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벌써 오래전에 이곳에서 탈출한 사람 같았다." (언더그라운드레일로드, 265쪽)


코라에 대한 시저의 묘사이다. 흑인이자 여성이었고, 어린 소녀였던 코라는 도망친 엄마의 버려진 아이... 약자 중의 약자요,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온갖 야만에 그대로 노출된 아이였다. 그러나 코라는 살아남았다. 랜들가의 대농장으로부터, 폭력과 강간과 살인으로부터 코라는 탈출했고, 그 여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흑백 인종차별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흑인들을 폭력으로 희생시키고, 그 위에 번영을 이룬 백인들의 야만이 엄존하나 그 야만에는 동료를 밀고하고 착취하고 백인 못지않게, 혹은 보다 더 잔혹하게 같은 인종을 억압한 자들의 부역의 그림자가 존재하며, 흑인들을 탈출시켜 자유도시로 이동시키며, 그 과정에 죽어간 무수한 백인들의 존재 또한 잊힐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노예제 폐지는 어느 한 인종의 승리가 아니라 양심의 승리였고, 비록 그것이 '시대적 이익'에 부합한 어떤 배경이 있었다 할지라도, 수많은 피의 희생이 뒷받침된 것임을 간과할 수 없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비겁하고 무력해 보이는 껍데기를 잡고,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최규석의 웹툰 '송곳' 중에서)


코라는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어린 체스터의 작은 실수가 불러온 거대한 폭풍, 그곳에 몸을 던진다는 것은 곧 함께 부서진다는 것을 뜻했지만, 코라는 체스터 위로 몸을 던졌다. 거기에는 어떤 의식이나 의지나 거대한 이념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공포, 그러나 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한 걸음. 결국 실신할 때까지 맞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코라는 몸이 망가질 때까지 맞아야 했지만, 그렇게 행동했다. 그것은 동료들에게는 이상한 것이었고, 코라를 향한 주인의 분노가 집착으로 이어지게 하는 단초가 되었지만, 코라는 그렇게 행동했다. 비록 당시에는 처참하게 부서지고, 무기력하며, 심지어 미련해 보일지라도, 이런 송곳과 같은 이들이 존재해 세상을 바꾸어 왔고, 지금도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실제로 미국에 존재했던 비밀 지하조직으로, 10만 명이 넘는 흑인들을 남부 노예주에서 북부 자유 주로 이동시킨 노예제 폐지 비밀 결사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 조직의 실제가 비밀 지하철도로 상징화된다. 책에서 코라는 종종 이 거대한 굴을 '누가' 팠을까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하철의 모습도 다 다르고, 그 방향도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며, 움직이는 시간대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마치 그것을 움직이는 실제 하는 사람들의 다양함과 거대함, 동시에 위태함을 표현하듯. 그러나 지하철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여기저기에 다 있고,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그렇게 코라도 살았고, 십만이 넘는 흑인들이 살았다.


당시의 야만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듯 납치, 살인, 강간, 폭행은 물론이거니와 도망 노예를 숨겨준 백인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묘사된 노스캐롤라이나의 야만에는 온 동네가 동원되었다. 흑인을 숨겨준 부모를 어린 딸이 밀고하여 즉결처분된 사례, 코라를 숨겨준 철도 기관사 부부는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었다. 길마다 흑인들의 시신이 매달려 있었고, 노예 사냥꾼들이 온 미 대륙을 누비며 마음대로 가택을 침입하고, 불사르고,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먼 옛날,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던 그 손이 이제는 아프리카인들을 향했고, 오늘날에도 그 폭력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야만성이 작동하는 방식은 꽤나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이익이 이기심과 결합하여 합리화되는 과정에 종교와 철학이 혼합되고, 그것이 사상을 형성하고 세계관을 만든다. 그것이 다시 법과 제도와 문화로 정착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을 멈춘다. 주어진 시스템의 편리성 속에서,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이익에 봉사할 때면, 이성도 양심도 의외로 손쉽게 놓아버린다. 거대한 악이 무섭게 작동하지만, 분자로 흩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눈을 감는 것인지도...


이 책을 읽으며, 그 야만에 탄식하다, 그 시절을 벗어난 것에 대한 감사로, 그러다 다시 보니 형태는 다르나 오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으며, 과연 인간이 야만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오늘의 평안이 딛고 선 피 묻은 땅의 호소와, 또 이 평안의 위태함을 상기하며, 그것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혹은 지킬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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