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시집와서... 남편 군대 보내고, 홀로 아이를 낳고, 시댁 큰 집 수발들고... 마치 흥부네 가족처럼 일하다 서울로 상경. 부부가 함께 오만 일 다해가며 아들 셋 잘 키우신 우리 어머니. 손재주 좋고 예민한 아버님과 달리 손 크고 여장부다운 어머니가 최근 사고를 당하셨다. 사람 많은 골목에서 부주의했던 한 택시가 어머니를 들이받은 것이다. 대퇴부가 으스러져 두 차례 수술받으시고 한 달째 병상에 계신다. 너무 아파 신음하면서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고, 병간 하는 사람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맘 쓰심이 참으로 어머니답다.
이런저런 바쁜 일 핑계하며 한동안 뵙지 못하다 오늘 찾아뵀다. 한결 밝아진 모습, 지지대 의지해 조금씩 걸으신다. 뭣하러 왔냐고 하시지만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이야기 꽃을 피우신다. 말재간 좋고 재치 있으신 분. 손을 잡고 잠시 기도 하는데... 마음이 저려온다. 많이 놀라고 힘드셨을 터. 홀로 얼마나 이유를 찾으셨을까. '왜 나에게...' 수도 없이 되물었을 터.
어머니와 한 병실에 계시는 분들 모두 홀로 몸을 가누지 못하신다. 말도 어눌하고 눈빛도 흐리고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과일을 씻으러 싱크대로 갔다가 몸 가누지 못하는 남자의 밥 떠먹이는 한 여인의 한숨소리를 들었다. 부부인가. 그날따라 남자가 심하게 몸을 떤다. 떠먹이는 밥조차 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여인이 소리를 친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 저러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것을 여인이 모르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여인은 소리친다. 그 소리는 한숨이고 비명인 셈이다. '왜 나에게...'
몸을 떠는 남자도 같은 질문을 했을터.
문득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이 이곳에도 있을까 자문해보았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생각해 보는 것조차 괴롭지만, 순간 '존엄함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원하지 않는 나의 모습, 그것을 견디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마침 오래전 보았던 영화, 스틸 앨리스의 줄리언 무어가 떠올랐다. 어느 모로 보나 완벽했던 엄마이자 교수이자 아내였던 그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스토리.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미리 장치를 해두던 모습. 다행히 실패했으나 그녀의 절절했던 모습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기억을 잃으면, 몸을 가누지 못하면 삶은 가치가 없는 걸까. 누군가에게 기대어 짐이 되는 삶은 의미가 없는 걸까. 쉬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존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생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짐 지우지 않으려는 태도도 존중받아 마땅하고, 서로 짐을 지우고 나누는 태도도 의미 있다.
우리의 생은 딱 부러지게 답할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로 가득 차 있고, '왜 나에게...'라는 질문이 자주 솟구친다. 어쩌면 답이 없어서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고통들과 때때로 찾아오는 고독. 낯섦. 두려움... 때때로 인간을 겸손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종종 더 깊어지고 연대의 필요를 깨달아 간다.
오늘, 어머니의 병실에서 마음이 복잡했다. 저 강인한 여인의 몸뚱이가 너무 약해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병상의 무수한 분들이 한 때 장래 유망한 총명한 이들이었을 것에 또 충격이었다.
풀과 같이 꽃과 같이 시들어 가는 인생들이 마지막 힘을 내 '생'을 유지하니 그 자체가 격려받을 일인 것은 틀림없다. 다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기품 있게 존엄하게... 그렇게 견디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