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일하는 동안 면접을 많이 봤다. 한 70번쯤... 많이도 봤다. 그동안 일했던 회사가 열 군데 정도 되니까, 한 60번은 떨어진 셈이다. 이력서는 수백 장 보냈다.
면접을 70번이나 본 이유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8살 딸아이가 찾은 네잎클로버 ⓒ청자몽
국문과 나와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지원했다. 게다가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하필 여자다. 지금은 비전공에, 성별이나 어쩌면 나이까지도 덜 따진다고 하던데.. 내가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1990년도 중후반에는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그래서 이래저래 면접을 정말 많이 보게 됐다.
눈이 빠지게 구인사이트를 뒤적이며 이력서 넣을만한 곳이 있나를 찾아보고, 갈무리해 두었다가 이력서를 보내는 게 하루 일과인 때가 많았다. 그때는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탓하고 원망하고 힘들어하기 바빴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면접 오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실제 면접을 본 건 70번 정도(정확히는 모르겠다. 60 몇 번까지는 세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세는 것도 포기)였지만, 이력서 보낸 것 수백 번이 넘을 것이다. 90년도 중후반만 해도 출력한 이력서를 회사에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력서용 사진을 하도 많이 찾으니, 어느 날 사진관 아저씨가 물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 많은 사진을 다 어디다 써요?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망을 담아 부친 이력서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연락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취준생 초반에는 그랬다. 그러다가 경력이 생기면서 차츰 나에게도 기회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면접 보며 있었던 여러 일들
압박 면접이나 무례한 면접도 많았다. 사실 아쉬운 건 구직자이다 보니 그래서 더 그랬던 거 같다. 결혼 언제 할 거예요?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해도 애 낳고 일 계속할 거예요? 비전공인데 왜 지원했어요? 등의 질문은 하도 많이 받아봐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여자가 어쩌고 하는 류의 인신 공격성 질문도 받았다.
면접도 자꾸 보다 보면 내성이 생긴다.
자주 반복되는 무례한 질문에 나름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게 됐다.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나 역시 '느낌'이라는 게 생겼다. 딱 봐도 무례한 질문을 하게 생긴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면접관들은 구직자를 면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반대로 구직자들 또한 회사와 면접관들을 평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고약한 질문에 상처받고, 말이나 분위기에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많았다. 기가 다 빨린 듯 나와서 허탈함에 털썩 주저앉을 때도 있었다. 허탈하다. 내가 이런 소리 들으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싶은 적도 많았다.
테이블에 놓인 음료수를 다 마셨다고 한소리 들은 일이 제일 황당했다. 이후로 다른 곳에 면접을 가면, 음료수를 적당히 마시거나 마시지 않게 됐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미 면접 때 그렇게 황당한 곳이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모르고 간 회사에 면접관으로 이전에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면접관으로 나오신 적도 있었다. 좁은 세상이구나 싶어 긴장이 됐다.
면접을 보다 보니, 대화하는 방법이나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법, 순간 대처법 등 나름의 기술이 쌓여감을 느꼈다. 면접경력도 소중한 자산이 됐다. 운이 없어 많이 본 게 아니고, 큰 자산이 되는 거였는데 당시에는 몰랐다. 면접을 보며, 소통하는 방법을 아주 아프게 배워갔다.
그러고 보니 여러 면접들이 생각난다.
어디서는 면접을 식당에서 했다. 밥 많이 먹으면, 쌀 축낸다고 떨어뜨리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저녁이라 배도 고프고 나도 모르겠다 하며 잘 먹었는데.. 붙었다. 내 능력 밖인 곳이라, 입사 일주일 만에 그만둬서 아쉬웠지만..
당시 뜨는 신기술을 한참 공부하고 갔는데, 면접관들이 꼬치꼬치 기술에 대해 묻는 거다. 답을 하다 보니, 이 분들도 잘 몰라서 알고 싶어서 묻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사를 한다면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과 이유를 아주 집요하게 묻는 곳도 있었다. 구직자는 웁니다.
면접 보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2차 면접이 전 직원 브레인 스토밍하는 자리였다. 입사면접인지, 내 아이디어 내놓으라는 자리인지 헛갈리기도 했다. 가지 않았다. 대표님이 기존 팀장님에게 말 안 하고 무작정 뽑으셔서, 기존 팀장님이 잘 알려주지도 않고 입사 이틀 만에 출장 가라고 해서 그만두기도 했다.
대놓고 전공자만 지원하라는 곳도 넣어보고, 경력 없을 때도 경력자만 지원하라는데에도 지원했다. 대놓고 나이 제한하는 곳에 '일단 얼굴 보시면 생각 달라지실 거예요.'라고 써서 지원하기도 했다. 같은 곳에 여러 번 지원하기도 했다. 말 잘 못해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말 너무 잘한다고 핀잔받기도 했다. 어쩌라는 건가.
본부장이랑 나이 같다고 떨어진 곳은 조금 억울했다. 어차피 연락올 곳은 어떻게든 연락이 오게 되어있고, 아무리 면접 잘 봐도 떨어뜨리려면 별별 이유를 다 대서 떨어뜨린다. 그나마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있거나 떨어졌다고 연락 주는 곳은 엄청 좋은 회사다.
실무진 면접에서 합격이라고 말했는데, 한 달 넘게 연락 없다가 임원진 면접을 봐야 하니 이력서 출력 다시 해서 오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구직자도 그 회사를 바라보는 사용자 중에 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면접 본 회사 중에 면접비를 줄 정도로 좋은 회사는 한번 정도 갔던 거 같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생각이 난다.
면접은 경력 5년 차 이하일 때 많이 봤고, 10년 차에 가까워질수록 그렇게까지 많이 보지는 못했다. 연차가 적을 때, 아직 기회가 많을 때 면접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보다 보니 떨어지려면 아무리 면접을 잘 봐도 떨어지고, 붙으려면 어떻게든 붙게 되는 것 같다. 하긴 면접 말고 합격하면 입사 이후가 문제다.
그러고 보니 면접이나 한번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였던 소원은 무려! 장장! 70번이나 이뤄진 셈이니.. 뒤늦게 감사하게 된다. 한참 면접 떨어져서 맨날 한숨 쉴 때는 그 생각까지 못했는데, 돌아보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