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수집품
남편에게는 오랜 취미가 있다. 대학생 시절부터 모아온 DVD 수집이다. 그 시절만 해도 스트리밍 서비스는커녕, 영화를 보려면 DVD를 사거나 대여점에 들러야 했다. 그러니 DVD 한 장 한 장에는 그때의 젊음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애 시절, 남편은 이 컬렉션을 자랑하듯 내놓곤 했다.“내가 모은 영화가 천 편이 넘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걸 다 본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반짝이던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모으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귀엽다.
그 방대한 수집품은 결혼할 때 따라오지 못했다. 작은 신혼집에는 놓을 공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시댁에 보관해 두었는데, 이번 이사로 결국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잊고 있던 보물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우리 학원 한쪽 벽에 다시 자리 잡은 DVD들은 단순한 디스크가 아니었다. 남편의 인생 기록이고, 나에게는 그의 청춘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DVD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 넷플릭스만 켜면, 리모컨 몇 번만으로 언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남편이 몇 년간 모은 천 편의 영화보다, 지금 내 손안의 스트리밍 한 달 이용권이 훨씬 편리하다. 때로는 DVD들이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버리자니 아깝고, 보관하자니 공간을 차지하는 묘한 존재. 그럼에도 남편은 기꺼이 그 무게를 안고 간다. 그 속에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대학 시절의 설렘과 젊음의 한 조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DVD가 자리를 잡자, 남편의 눈길은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바로 레트로 게임기다. 처음에는 추억이 담긴 게임기를 하나쯤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책상 위, 장식장 위, 심지어 서랍 안까지 크고 작은 게임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형, 세로형, 스틱형, 폴더형, “이건 고급형이야”라며 보여주는데, 내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였다.
“왜 이런 걸 다 모아?”“그냥 좋아서.”
이유 없는 좋아함. 설명할 필요도 없는 취향. 사실, 수집이라는 건 다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 보기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다. DVD와 게임기가 늘어날수록, 집은 점점 비좁아지고 정리는 어려워진다.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남편의 취미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물건을 모으는 게 아니라, 시간을 모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DVD에는 그 시절의 젊은 날이, 게임기에는 어린 시절의 설렘이 들어 있다. 남편은 그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아서,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남겨두는 게 아닐까.
그 모든 수집품들이 결국 남편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좋더라.”좋아하는 걸 모으는 모습, 괜히 뿌듯해하는 얼굴,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행복해하는 마음. 그 모든 것이 내겐 소중하다.
집안 가득 DVD와 게임기가 늘어가도, 괜찮다. 그것이 남편의 세계이고, 나의 일상에 스며드는 작은 풍경이니까. 언젠가 아이가 자라 아빠의 DVD 장식장을 보고 “이게 뭐야?” 하고 묻는 날이 오겠지. 그때 우리는 웃으며 말할 것이다.“아빠가 젊었을 때 모은 보물단지란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의 우리도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남편을 보며 나는 배운다. 좋아하는 건 이유 없이 좋아해도 된다는 것.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스스로 즐거우면 충분하다. DVD와 레트로 게임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담은 작은 기록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기록을 곁에서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된다.
오늘도 학원 벽 선반에는 반짝이는 DVD 커버들이 줄지어 서 있고, 남편의 책상 위에는 크고 작은 레트로 게임기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그래, 우리 집은 작은 박물관이야.’그리고 그 박물관의 큐레이터는, 나의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