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언어를 번역하다

부부상담을 통해 되찾은 것들

by 올리비아

2025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에게는 유난히도 시린 해였다.

학원을 하나 더 확장하며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성장의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지독한 번아웃이었다.

몸은 늘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마음의 여백이 사라진 자리에는 예민함만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서로를 이해할 여유가 고갈된 자리에는 서운함이 앙금처럼 쌓였고,

그 앙금은 날카로운 말투와 서늘한 표정이 되어 매일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남편이 왜 나에게만은 그토록 차갑게 느껴졌을까.

주말도 잊은 채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가정을 지키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남편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헤아리기보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의 크기를 재는 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쉼 없이 달렸던 고단함은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최선이 서로를 돌볼 힘마저 앗아가 버렸다.



부부의 대화는 때때로 가장 위험한 소통이 된다.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과정은 생략되고, 그 빈자리를 서운함이라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갈등을 중재할 사람도, 말에 담긴 본심을 풀어줄 통역사도 부재한 상황에서 우리의 언어는 오해가 되고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우리는 심리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이미 아이가 그곳에서 놀이치료를 받으며 정서적 안정을 찾고 있었기에, 센터장님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면, 길을 잃은 우리 부부의 마음도 한 번쯤 맡겨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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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마주 앉은 우리는 예상보다 고요했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려내는 날 선 공방 대신, "그때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 우리 사이를 오갔다.

담담하게 쏟아내는 남편의 고백 속에는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피로와 고립감이 서려 있었다.

이해받고 싶었던 나의 간절함 또한, 어느새 상대를 베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부부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삶에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의견 차이로 부딪힌다. 하지만 싸움의 방향은 확연히 달라졌다.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아, 지금 저 사람이 이런 감정의 파도를 지나고 있구나’ 하고 한 템포 멈춰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부부상담은 관계를 수리하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다시 한 명의 ‘사람’으로 복원해내는 여정이라는 것을.

나를 힘들게 하는 가해자가 아니라, 나처럼 지치고 버티며 애쓰고 있는 한 연약한 인간으로 마주하는 일 말이다.


2025년은 분명 고된 해였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를 깊게 성찰하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선택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용기라는 것을 배웠다.


완벽한 부부와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동행은 충분히 가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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