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이어주는 우리 사이
남편과 연애할 때, 우리가 가장 자주 갔던 장소 중 하나는 극장이었다.
번화가의 붐비는 거리, 늦은 밤의 한산한 상영관, 예매 사이트에서 잔여 좌석을 확인하던 설레는 순간들.
그 시절 우리의 데이트는 단순했지만, 늘 특별했다.
영화 한 편 보고, 근처에서 매콤한 떡볶이나 파스타를 나눠 먹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큰 호사처럼 느껴졌다.
남편의 취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감상, 독서, 게임. 대부분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연애 시절엔 그의 취향이 오히려 나와 잘 맞았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했고, 그는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길 좋아했다.
영화는 그 두 성향을 이어주는 완벽한 매개체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삶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점점 우리 삶에서 멀어졌다.
주말이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했고, 저녁이면 집안일로 하루가 바빴다.
극장에 앉아 두 시간 동안 몰입할 여유는 사라지고, 대신 유튜브 화면 앞에서 아이와 함께 웃는 시간이 늘어났다.
요즘 우리가 함께하는 유일한 의식이라면, 일요일 예배 후 교회 앞 스타벅스에서 나누는 커피 한 잔이다.
아이가 초등부 예배에 들어간 동안, 잠시 남편과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 순간만큼은 연애 시절의 기분이 스쳐가지만,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이제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남편과 마지막으로 극장에 간 게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그렇다고 영화가 우리 삶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우리 집이 작은 극장이 되어 주고 있다. 넷플릭스를 켜고 함께 영화를 본 뒤, 나는 늘 장난스럽게 묻는다.
“감상평 뭐야?”
그러면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감독의 전작부터 미장센, 카메라 시퀀스, 인물의 동선과 색감의 의도까지 줄줄 설명을 이어간다.
나는 그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뿌듯하고 즐거워 보여 자꾸만 묻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이어가는 또 다른 대화의 방식이다.
지난 주말, 우리는 오랜만에 「야당」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강하늘이 주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가운 선택이었다.
아이 이름 후보 중 하나가 ‘하늘’이었기에,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이 묘하게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늘 그렇듯 남편의 긴 감상평이 이어졌다.
플리 바겐이 어떻고, 사법 거래가 어쩌고, 비슷한 영화들은 뭐뭐머가 있고...
솔직히 다 듣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저 끄덕이며 웃었다.
연애 시절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다만 그땐 더 자주, 더 오래 이어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지금도 여전히 그 대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안다. 중요한 건 ‘공간’이 아니라, 그 순간을 함께하는 ‘마음’이라는 걸.
극장은 앞으로도 여전히 멀리 있을지 모르지만 괜찮다.
우리 집이 작은 극장이 되어 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영화 덕후 같은 남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