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연재를 마치고 나서

"초보 리더를 위한 바이블"과 "아빠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이야기" 회고

by 박정욱

건방지게 시작했다

시작은 나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껴서 시작하게 되었다. 책을 집필하면서(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내가 가진 것을 표현하는데 서투른지 많이 느꼈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글쓰기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연재를 택했다. 집필할 때 하루에도 몇 페이지씩 써내려 갔었기에 일주일에 두 편의 포스팅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초보 리더를 위한 바이블"과 "아빠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이야기", 두 편의 10부작 연재의 목차와 프롤로그를 쓸 때만 하더라도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나 자신을 밀어 넣기로 했다.


에세이여야 했다

나는 독서의 힘을 믿는다. 글쓰기 또한 책으로 배웠다. 그리고 글쓰기 책들에서 나는 묘사라는 기법에 꽂혔다. 소설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흙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쓴 소설보단 내가 쓴 나의 이야기가 남겨진 이들에게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에세이를 선택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묘사를 많이 사용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의 글을 보여주지 못하고 읽혀야 하는 글이었다.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 어쨌든, 그렇게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고백하고 싶은 아빠의 삶을, 지식으로서가 아닌 내가 겪고 느낀 리더의 삶을 써내려 갔다. 나의 이야기로 나의 딸들에게, 초보 리더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쓰며 내가 정리되었다

글쓰기의 좋은 점은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고무오리 이론이라고 고무오리를 두고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면 그 설명에서 부족하거나 이상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다는 이론인데 글쓰기 또한 그런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번 두 편의 연재를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정리됐다. 머릿속에서 흩어져 떠다니던 생각들이 문장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내가 어떤 리더인지, 어떤 아빠인지, 오히려 내가 더 또렷이 알게 되었다.


본연의 목적

당연히 글쓰기도 늘었다. 초반에는 퇴고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한편을 작성하는데 9시간이 걸렸지만, 마지막 회차쯤 되니 5시간 정도면 쓸 수 있었다. 글의 품질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완성하는 감각은 분명히 생겼다. 아직 나의 글이 보여주기를 하진 못한다. 그래도 읽히게는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번 외로 글을 투자한 노력만큼 그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조회수 폭발의 맛

“팀에 빌런이 있어요”라는 글을 썼을 때, 조회수가 갑자기 폭발했다. 알림이 마구 울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정말 설렜다. 물론 그런 반응이 다음 글에도 계속되진 않았다. 그래도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짜릿한 경험이었다. 신나는 마음에 이런 글도 작성했다.
왜 그 글이 그렇게 읽혔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싸이가 “왜 강남스타일만 잘 됐는지 아직도 모른다”라고 말한 걸 들었을 때는 그냥 웃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내 글도 그런 한순간의 운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글쓰기의 가장 어려운 것

나는 이과생이자 공대생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가장 많이 써온 글은 보고서였고, 항상 간결하고 명확한 글쓰기를 요구받았다. 그래서 분량을 줄이고 핵심을 요약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분량을 늘리는 일은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했는데, 억지로 분량을 채우려 문장을 늘리다 보면 부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억지로 늘린 글은 중심 메시지가 흐려지고 무엇이 핵심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퇴고하는 데 유난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이 많아졌다. 사실, 간결하고 명확한 글이 좋은 글 아닌가? 정보를 전달하는 보고서라면 그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내 글이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소통은 적었지만 연결은 있었다

독자와의 소통이 활발했던 건 아니다. 댓글도 많지 않았고, 메시지를 받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구독자는 한 명, 두 명, 꾸준히 늘었다. 그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구나.’ 내가 혼자 떠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감각은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조용한 연료였다.


읽고 싶은 글보다는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글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생계를 위한 글이 아니기에 가능한 건방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글에도 누군가는 공감해 주고, 좋아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휴식

연재를 끝내고 2주 정도의 쉼을 가졌다. 단순히 글쓰기만 쉰 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생산적인 활동 대부분을 쉬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순식간에 나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생산성을 억지로 끌어올리기보다는, 규칙적으로 리듬을 유지하는 게 나에게는 더 잘 맞는 방식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다시 쓰는 게 나다웠다.


다음 이야기

이번에는 주 1회의 연재를 하려고 한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내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 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나의 현재를 기록하려고 한다. 개발자로, 아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마주하는 버그 같은 상황들. 그것을 어떻게 디버깅해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제목은 "개발자 아빠의 디버깅 라이프". 완벽한 코드는 없듯, 완벽한 아빠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버그를 수정하고 리팩토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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