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한 통도 아니고 여러 통이 연달아 왔다. "귀하의 역량을 출중하나 안타깝게도 저희와 맞지 않아..." 같은 정중한 문장들이 내 메일함을 가득 채웠다. 처음 몇 번은 실망스러웠고, 그 다음엔 분노가 치밀었다. 왜 나를 떨어뜨렸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결과만 통보받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더 무서운 것이 찾아왔다. 바로 자기 의심이었다. '내가 정말 부족한 걸까?' '나는 이 업계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합격이 가진 진짜 독성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불합격은 단순한 탈락 통보가 아니다. 그것은 자존감을 갉아먹는 조용한 폭력이다. 특히 연속해서 불합격을 받을 때, 그 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첫 번째 불합격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경쟁이 치열했다고 위안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네 번째가 이어지면 더 이상 외부 탓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화살은 자신을 향한다.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역량을 평가절하하며, 급기야는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게 된다. 이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감의 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500번이 넘게 떨어지면서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경험했다. 매번 떨어질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작아졌다. 처음엔 '이 회사가 날 몰라봤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내가 정말 못나서 그런가'라는 생각에 잠식당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음 지원서를 쓸 때, 다음 면접을 볼 때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쓴 자기소개서는 힘이 없었고, 위축된 마음으로 본 면접은 당연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불합격이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떨어진 자신감이 다시 불합격을 부르는 끔찍한 순환 구조에 갇혀버린 것이다.
면접관으로서 수많은 지원자를 만나면서 나는 한 가지 확실한 패턴을 발견했다. 실력이 뛰어나도 자신감이 부족한 지원자는 대부분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력이 다소 부족해도 자신감이 충만한 지원자는 의외로 합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다. 면접관도 사람이고, 사람은 에너지에 반응한다. 자신감 있는 사람의 에너지는 전염성이 있다. 그들과 대화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과의 대화는 답답하고 불안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자신감의 상실은 면접장에서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시선을 회피하며, 답변이 우유부단해진다. "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잘 모르겠지만~" 같은 불확실한 표현들이 늘어난다. 심지어 자신이 해낸 성과조차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다. 자신이 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고 그 프로젝트에 대해 어필하기 어려워 스스로의 성취를 깎아내린다. 이런 모습을 보는 면접관은 당황스럽다. 지원자가 스스로를 믿지 않는데, 어떻게 회사가 그를 믿을 수 있겠는가. 결국 불합격 판정이 내려지고, 그 불합격은 다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자신감 상실이 회사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속된 불합격으로 자신감이 바닥을 친 지원자는 '일단 어디라도 붙으면 된다'는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이직을 하려고 했는지를 잊어버린다. 그저 합격이라는 결과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조건이 안 좋은 회사에도 지원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직무에도 도전한다. 운 좋게 그런 곳에 합격한다고 해도,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맞지 않는 회사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결국 또 다른 이직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커리어는 꼬이고 자신감은 더욱 떨어진다. 나는 이런 악순환에 빠진 수많은 개발자들을 봐왔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불합격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채용을 하는 입장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불합격은 개인적인 거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채용은 철저히 타이밍과 핏(fit)의 문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그 회사가 원하는 타이밍과 맞지 않으면 떨어진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도 회사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지원하면 합격한다. 이것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의 문제다. 하지만 감정에 휩싸인 지원자는 이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매번 떨어질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만 탓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취업은 운에 비중이 굉장히 높다. 운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은 운이 맞았을 때 그 운을 기회로 잡을 수 있도록 확률을 높히는 활동인 것이다.
내가 찾은 첫 번째 해법은 '감정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것이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딱 하루만 슬퍼하기로 했다. 그 하루 동안은 마음껏 분노하고, 좌절하고, 자기연민에 빠졌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칼같이 감정을 정리했다. 불합격 메일을 지우고, 그 회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음 기회를 찾았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떨어졌을 때는 하루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감정에 끌려다니면 다음 기회마저 놓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독립적 면접'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다. 각각의 면접을 완전히 독립된 이벤트로 보기로 했다. 이전 면접의 결과가 다음 면접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차단했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기회다. 이전의 불합격은 이 면접과 아무 관련이 없다." 처음엔 자기최면 같았지만, 반복하다 보니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각 면접을 독립적으로 보니 부담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본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면접관들도 그 변화를 느꼈는지,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나를 드높히고 불합격을 준 회사를 깎았다. 어떤 한 회사는 여러번 지원을 했는데 그 때 마다 최종의 관문에서 떨어졌다. 항상 최종 전형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실무자들은 나의 우수함을 알아봤지만 임원들이 부족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는 취업, 이직의 시간이 끝났는데도 유지가 되었다. 내 시간을 굉장히 소비하면서 불합격만 주던 이 회사의 서비스는 내 인생에서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살고 있으며 그 회사에 안좋은 뉴스가 있을 때마다 꼬시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이런 나를 보면 채용 브랜딩 역시 회사의 브랜딩 마케팅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두번째의 독립적 면접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네 번째는 '피드백의 재해석'이었다. 불합격을 실패가 아닌 피드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대부분의 회사는 구체적인 불합격 사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분석했다. 면접에서 어떤 질문에 답변을 잘 못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면접관의 표정이 어두워졌는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면접을 준비했다. 이렇게 하니 불합격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매번 떨어질 때마다 조금씩 나아졌고, 결국 합격에 가까워졌다.
불합격의 진짜 문제는 불합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늪이다. 한 번 이 늪에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정말 어렵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또 떨어지고, 그래서 더 자신감이 떨어지는 악순환.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나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이 늪에서 허우적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봤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스펙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는 기술이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단순히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전략이 필요한 일이다. 멘토링을 할 때 멘티들에게 회고를 강조하는 편인데 대부분 KPT에서 P의 비중이 50%가 넘게 쓴다. 그 중 P의 비중이 90%에 육박하는 감정에 굉장히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멘티가 있었는데 이 멘티에게 K를 별도로 쓰라고 했다. 이를 '합격 일기'라고 불렀다. 매일 자신이 잘한 일, 성취한 일, 배운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좋다. "오늘 알고리즘 문제를 하나 풀었다", "면접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이력서 한 줄을 수정했다"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게 매일 작은 성취를 기록하다 보면, 불합격을 받아도 '나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 확신이 자신감의 바닥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또 다른 전략은 '동료 찾기'다. 혼자서 취업 준비를 하면 감정의 늪에 빠지기 쉽다. 불합격을 받으면 혼자서 그 아픔을 감내해야 하고, 자기 의심도 혼자서 견뎌야 한다. 하지만 함께 준비하는 동료가 있으면 다르다. 서로의 불합격을 위로하고, 서로의 성장을 격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만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나도 가장 힘들 때 스터디 동료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불합격을 축하(?)하며 웃었고, 그 웃음이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전'이라는 마음가짐이다. 취업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한두 번의 불합격으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나처럼 500번을 떨어져도 결국 길을 찾은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버티는 것과 전략적으로 버티는 것은 다르다. 감정을 관리하고, 피드백을 수용하고, 꾸준히 성장하면서 버텨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불합격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연속된 불합격으로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500번이 넘게 떨어진 사람으로서, 그 좌절과 분노와 자기 의심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가치는 불합격 통보서가 결정하지 않는다. 당신의 실력은 면접관의 판단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불합격은 단지 타이밍과 핏이 맞지 않았다는 신호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불합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느냐다. 감정에 휩쓸려 자신감을 잃으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하지만 감정을 다스리고 교훈을 얻으면, 불합격도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쌓인 불합격 통보서들이 나를 더 강한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불합격이 두렵지 않다. 그것은 단지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불합격의 감정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서, 더 나은 기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왔고,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당신도 그중 한 명이 될 것이다. 단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오늘 받은 불합격 통보에 너무 연연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