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왜 고통을 반복하는가?

게임 <다크 소울>과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로 본 부조리한 삶의 태도

by JUNSE

관점 프리즘 No.10

우리는 왜 고통을 반복하는가?

게임 <다크 소울>과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로 본 부조리한 삶의 태도

출처 : publicmedievalist.com 'The Fire Fades: Vulnerable Knights in Dark Souls'

게이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게임, <다크 소울(Dark Souls)>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게임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튜토리얼도 없이 낯선 세계에 던져지고, 몇 걸음 떼지 못해 마주친 적에게 단 일격에 목숨을 잃습니다. 화면에는 붉은 글씨로 "YOU DIED(당신은 죽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뜨고, 저는 다시 차가운 감옥 바닥이나 꺼져가는 화톳불 옆에서 눈을 뜹니다. 그리고 다시 걷고, 다시 죽습니다. 이 과정은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됩니다.


출처 : www.britannica.com/topic/Sisyphus

도대체 우리는 왜 이 고통스러운 행위를 반복하는 걸까요? 단순히 엔딩을 보기 위해서일까요? 저는 문득,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죽고 되살아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리스 신화 속 비극적인 인물, 시시포스(Sisyphus)를 보았습니다.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 그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으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는 다시 산을 내려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합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 『시시포스 신화』에서, 이 형벌이야말로 인간 삶의 '부조리(Absurdity)'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했습니다.



화톳불 : 바위를 향해 내려가는 시간

출처 : www.pockettactics.com/dark-souls/bonfire

<다크 소울>의 세계는 시시포스의 산과 같습니다. 플레이어는 강력한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도전하지만(바위를 미는 행위), 죽음이라는 굴러 떨어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형벌'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카뮈는 시시포스의 이야기에서 절망이 아닌 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바위가 굴러 떨어진 후, 시시포스가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기 위해 산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는 그 짧은 '휴식'의 시간에 주목했습니다.


게임 속 '화톳불(Bonfire)'은 바로 그 시간입니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 잠시 검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시간. 이 화톳불 앞에서 플레이어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게임을 끌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출처 : www.newstatesman.com How Albert Camus’s The Plague became the defining book of ~ ''


카뮈는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강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시시포스가 굴러 떨어진 바위를 보며 절망하는 대신,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다시 바위를 향해 걸어 내려가는 그 순간, 그는 신들이 내린 형벌을 자신의 '의지'로 덮어씁니다. 그는 피해자가 아니라, 고통을 스스로 선택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망자(Hollow)가 되지 않는 법

출처 : darksouls.wiki.fextralife.com/Hollow+Warrior

게임 속 설정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망자(Hollow)'의 개념입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죽지 않지만, 삶의 목표나 의지를 잃어버리면 이성을 상실한 좀비 같은 존재, 즉 '망자'가 되어버립니다.


플레이어인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YOU DIED"를 보며 좌절할 때, "이건 너무 어려워, 못해"라고 포기하고 패드를 던져버린다면, 저의 캐릭터는 그 자리에 멈춰 영원히 망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패드를 잡고 화톳불을 떠나는 순간, 저는 망자가 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보스를 쓰러뜨린다는 결과(성공)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실패가 예정된 싸움일지라도 다시 도전하겠다는 그 '태도' 자체가 저를 인간으로, 혹은 영웅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출처 : www.nybooks.com 'Camus on Tour - Vivian Gornick'

<다크 소울>은 우리에게 승리의 쾌감보다는, 승리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더 길게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이라는 바위를 밀어 올리고, 저녁이 되면 지쳐서 굴러 떨어집니다. 내일 아침이면 바위는 다시 바닥에 있을 것입니다. 이 무한한 반복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카뮈는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책을 맺습니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무거운 바위와 싸우며 흘리는 땀, 거친 바위의 감촉을 느끼는 손,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는 그 마음. 그 '투쟁의 과정' 자체가 곧 삶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크 소울>을 플레이하며, 역설적이게도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화면 속의 기사를 보며,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라고 중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부조리한 세상,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도망치거나 망자가 되는 대신, 기꺼이 나의 바위를 다시 짊어지는 것. 그것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존엄임을, 이 어둡고 불친절한 게임이 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쇄된 그림은 왜 가격이 두 배로 뛰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