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는 색채를 듣고,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을 그렸다

공감각(Synesthesia)의 미학

by JUNSE

Sound Essay No.104

칸딘스키는 색채를 듣고,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을 그렸다

공감각(Synesthesia)의 미학 : 눈은 망치고, 영혼은 울리는 피아노다

출처 : www.ultimahora.com

1. 1911년 1월 2일, 추상미술이 태어난 날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많은 학자는 1911년 1월 2일 독일 뮌헨의 한 콘서트홀을 지목합니다. 그날 객석에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당시로는 충격적일 만큼 파격적인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현악 사중주 2번>과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소품>이었습니다. 멜로디는 뚝뚝 끊어지고,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무조(Atonal) 음악'. 관객들은 당혹스러워했지만, 칸딘스키는 전율했습니다.


그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색채'를 보았습니다. 바이올린 소리는 초록색으로, 첼로의 저음은 짙은 파란색으로, 트럼펫의 고음은 노란색으로 그의 망막을 강타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 강렬한 청각적 경험을 캔버스로 옮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추상회화의 기념비적 작품인 <인상 III: 콘서트(Impression III: Concert)>입니다.


검은색의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노란색의 소리 물결. 이 그림은 단순한 공연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은 왜 눈에 보이는 사물(사과, 사람, 풍경)을 묘사하지 않고도 감동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자, '그림도 음악처럼 될 수 있다'는 미술의 해방 선언이었습니다.



2. 뇌과학의 영역 : 공감각 (Synesthesia)

출처 : 'Synaesthesia — A Window Into Perception, Thought and Language' 원문

칸딘스키가 경험한 이 현상을 뇌과학에서는 '공감각(Synesthesia)'이라고 부릅니다. 'Syn(함께)'과 'Aisthesis(감각)'가 합쳐진 말로, 하나의 감각 자극이 뇌에서 다른 감각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신경학적 현상입니다. 칸딘스키는 그중에서도 소리를 들으면 색채가 보이는 '색청(Chromesthesia)'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이는 예술가들의 과장된 은유로 치부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신경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anur S. Ramachandran) 박사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실재하는 뇌의 작용입니다.


- 교차 활성화(Cross-activation) : 인간의 뇌에서 소리를 처리하는 '청각 피질'과 색을 처리하는 'V4 영역(방추상회)'은 인접해 있습니다. 일반인은 이 두 영역이 분리되어 있지만, 공감각자는 유전적 요인 등으로 인해 두 영역 사이의 신경 연결(Cross-wiring)이 비정상적으로 풍부합니다.


그래서 C단조의 화음을 들으면 뇌의 시각 영역도 함께 켜지며, 실제로 눈앞에 특정 색상이 번쩍이는 듯한 물리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칸딘스키에게 "색채를 듣는다"는 말은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현실이었습니다.


참고 논문 : 'Synaesthesia — A Window Into Perception, Thought and Language'
V.S. Ramachandran and E.M. Hubbard (2001)


3. 칸딘스키의 사전 : 노랑은 트럼펫, 파랑은 첼로

출처 : 열화당

칸딘스키는 자신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Concerning the Spiritual in Art, 1912)>에서 소리와 색채의 관계를 매우 구체적인 이론으로 정립했습니다. 그는 화가가 물감을 쓰는 것이 작곡가가 악기를 고르는 것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정의한 '색채-악기'의 대응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노랑 (Yellow) : 트럼펫(Trumpet)의 팡파르. 날카롭고 공격적이며, 땅의 에너지를 가진 색. 쳐다보면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소리.


- 파랑 (Blue) : 첼로(Cello)나 오르간(Organ). 깊고 심오하며, 하늘을 지향하는 색. 색이 짙어질수록 더 낮은 소리를 내며 인간을 무한의 세계로 이끈다.


- 초록 (Green) : 바이올린(Violin)의 중간 음. 아주 평온하고 움직임이 없는, 부르주아적인 안락함을 주는 색.


- 빨강 (Red) : 북(Drum)이나 튜바(Tuba).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힘과 열정. 노란색처럼 밖으로 발산하지 않고 안에서 타오르는 에너지.


그의 추상화 속에 있는 점, 선, 면은 무작위로 그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적 교향곡'입니다. 노란 삼각형과 파란 원의 배치는 트럼펫과 첼로의 합주를 악보 대신 캔버스에 기록한 것입니다.



4. 쇤베르크와 칸딘스키 : 불협화음과 추상의 만남

출처 : www.elbphilharmonie.de

칸딘스키가 그토록 열광했던 음악가, 아놀드 쇤베르크와의 관계는 이 에세이의 핵심입니다. 두 사람은 평생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쇤베르크는 음악에서 수백 년간 지켜져 온 '조성(Tonality)'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도(Do)'라는 중심음으로 돌아와야 편안함을 느끼는 규칙을 깨고, 모든 음을 평등하게 다루는 '무조(Atonal) 음악'을 창시했습니다. 이는 관객에게 익숙한 편안함 대신 낯선 긴장감(불협화음)을 주었습니다.


칸딘스키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음악이 '조성'을 버렸다면, 미술은 '대상(Subject)'을 버릴 수 있다." 그림이 꼭 사과나 사람을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재현의 의무) 강박을 버리고, 쇤베르크의 음악처럼 순수한 점, 선, 색채만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음악의 불협화음(Dissonance) = 미술의 추상(Abstraction), 두 거장은 각자의 영역에서 '재현'이라는 족쇄를 끊어내고, 인간의 내면을 직접 타격하는 예술을 완성했습니다.



5. 부바와 키키 : 우리 안의 공감각


"나는 공감각자가 아닌데, 어떻게 그 그림을 이해하죠?" 흥미로운 점은, 공감각이 없는 일반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소리와 형상을 연결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한 것이 유명한 '부바/키키 효과(Bouba/Kiki Effect)'입니다.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Wolfgang Köhler)의 실험에서, 둥글둥글한 도형과 뾰족뾰족한 도형을 보여주고 어느 것이 '부바'이고 어느 것이 '키키'인지 물으면, 전 세계 사람의 95% 이상이 둥근 것을 '부바', 뾰족한 것을 '키키'라고 답합니다. 우리의 뇌는 이미 둥근 소리(Bouba)와 둥근 시각 정보를, 날카로운 소리(Kiki)와 날카로운 시각 정보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칸딘스키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특수한 공감각적 체험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지만, 그 결과물은 일반인들의 뇌 속에 잠재된 '감각 연결 본능'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볼 때, 귀가 들리지 않아도 왠지 모를 리듬감과 소리의 웅장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6. 예술은 공명(Resonance)이다

사진 : Unsplash의 Pawel Czerwinski

칸딘스키는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술가는 그 건반(색채)을 두드려 인간의 영혼을 진동(Vibration)시키는 연주자라는 뜻입니다.


미술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1911년 뮌헨의 콘서트홀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실험은, 예술이 감각 기관의 경계를 넘어 뇌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공명(Resonance)'의 과정임을 증명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음악을 보고, 미디어 아트를 통해 빛을 듣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멀티미디어 경험의 시초에는, 피아노 소리에서 쏟아지는 노란색 물결을 보며 붓을 들었던 바실리 칸딘스키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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