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Sound Essay No.6
모든 창작가는 자신만의 동굴, 혹은 성역을 갈망합니다. 글이 쏟아져 나오는 서재, 기가 막힌 사운드가 터져 나오는 스튜디오, 흙먼지와 물감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 우리는 흔히 창의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물리적 공간'에 어떤 신성함이나 판타지를 부여하곤 하죠. 마치 좋은 장비를 갖추면 좋은 결과물이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믿는 아마추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솔직해집시다. 진짜 영감이라는 녀석은 그렇게 얌전하고 예측 가능한 장소에만 머무는 고상한 손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감은 우리가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 가장 익숙하다고 믿었던 공간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나타나는 불청객에 가깝습니다. 창의성의 본질은 근사한 작업실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나를 낯선 감각의 한복판에 내던져 기존의 안온한 인식을 무너뜨리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진짜 '공간'이란, 점유할 수 있는 평방미터가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강제하는 '경험의 차원' 그 자체입니다.
유럽에 있으면서 몇 번 접했던 '제임스 터럴(James Turrell)'의 작품 속에 들어갔던 경험은 저에게 '공간'의 개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강렬한 경험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작품 <Ganzfeld>는 사방이 온통 특정 색의 빛으로만 가득 찬 방입니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저는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벽과 바닥, 천장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직 무한해 보이는 색의 공간만이 눈앞에 펼쳐졌죠.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휘청거렸습니다. 눈은 분명 '공간'을 보고 있는데, 몸은 어디를 딛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각 정보와 신체 감각이 서로 충돌하며 뇌에서 에러 메시지를 뿜어내는 듯한 기묘한 불안감. 그리고 그 혼돈의 끝에서 찾아오는 경이로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아름다운 색의 공간에서 '인생샷'을 건지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실제 작품 내부에서는 촬영불가), 저에게 그곳은 일종의 '감각 리부팅 장치'였습니다. 터럴의 공간은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뇌의 관습적인 해석에 의존하는지를 폭로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기존의 데이터(벽은 여기에 있고, 바닥은 저기에 있다)를 기반으로 편집해 준 요약본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강제로 깨닫게 하죠. 이는 신경과학자 마크 험프리(Mark Humphrys)가 그의 저서 《Spike: The Neuroscience of Action》에서 언급한 ‘감각의 스파이크(Sensory Spike)’를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강제적인 감각의 폭발이야말로 창작자에게는 최고의 자양분입니다. 기존의 입력(Input) 방식이 고장 났을 때, 뇌는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뻔한 생각의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각적 충격을 위해 매번 비싼 티켓이나 공연, 감각적 자극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더 지독하고 농밀한 경험은 우리의 '정신적 공간'을 확장하는 데서 찾아옵니다.
좋은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가 수년에 걸쳐 구축한 정교한 세계, 그의 뉴런과 시냅스가 연결된 방식을 잠시 '대여'하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특히 설명이 불친절하고 난해하기로 소문난 영화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은 더욱 강력한 훈련이 됩니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영화를 보며 "그래서 이게 무슨 내용이야?"라고 묻는 것은,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왜 사람이 이렇게 생겼죠?"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독의 기이한 '논리' 그 자체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인과관계가 무시되는 그만의 세계에 잠시 머물다 나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세상은 이런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구나'라는 새로운 운영체제(OS)를 슬쩍 엿보게 됩니다.
요즘 시대의 아티스트에게는 더 흥미로운 '정신적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잘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의 세계입니다.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에서 수많은 오브젝트를 조합해 괴상한 이동수단을 만들어내는 유저들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올까요? 그것은 게임 개발자들이 미리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들이 설계한 '물리 법칙'이라는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들고, 그 규칙을 역이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사운드 시스템을 설계하는 저의 일과 정확히 같은 원리입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 이처럼 창작이란, 결국 잘 짜인 시스템(공간) 안에서 얼마나 새롭고 흥미로운 '버그'를 찾아내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매트릭스의 ‘네오’가 생각이 나는...)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제임스 터럴의 전시도,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도 결국 특별한 이벤트입니다. 하지만 진짜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은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는 시간의 연속이지만, 창작자에게 일상은 가장 치열한 '정보 수집 필드'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감각의 스파이 행위'라고 부릅니다. 영감이란 우아하게 찾아오는 뮤즈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 잠입해 기밀문서처럼 빼내 와야 하는 정보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이 닫힐 때 나는 "삐-" 소리를 그냥 소음으로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그 소리를 휴대폰으로 녹음한 뒤, 집에 와서 피치를 극단적으로 낮춰보세요. 아마 기괴한 괴물의 신음 소리처럼 들릴 겁니다. 이번엔 반대로 피치를 잔뜩 올려보세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날카로운 효과음이 될 수도 있겠죠. 무심코 지나치던 건물의 거친 벽을 손으로 쓸어보세요. 그 까끌까끌한 질감은 어떤 소리를 연상시키나요? 낮은 저음의 노이즈? 아니면 잘게 부서지는 사운드? 카페에서 옆자리 커플이 나누는 대화의 말꼬리, 그 미묘한 억양의 변화 속에는 어떤 감정의 파고가 숨어있을까요?
결국 창의성이란, 이렇게 수집된 수많은 감각의 파편들을 나만의 서랍장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다가, 전혀 다른 맥락의 프로젝트에서 엉뚱하게 꺼내 붙여보는 '편집 능력'에서 나옵니다. "A는 B다"라는 익숙한 공식을 "A는 사실 Z가 아닐까?"라고 비틀어보는 용기. 그 용기는 바로 이 지루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집요하게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는' 훈련을 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영감을 위한 완벽한 공간'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십시오. 당신의 가장 위대한 작업실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으며, 그 작업실을 채울 재료는 지금 당신이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지루한 현실 속에 널려 있습니다. 문제는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해킹하려는 당신의 '태도'입니다. 이제 당신의 일상을 어떤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시켜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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