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렴의 시대에 작곡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Sound Log No.16 | 상업음악의 태도

by JUNSE

Sound Log No.16


수렴의 시대에 작곡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Hearing the World – 상업음악의 태도


먼저 전제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작곡”은 순수 예술음악이 아닙니다. 현대예술음악에서는 유통 구조나 데이터, 선택 경쟁 같은 논의가 핵심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작품의 태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작곡은 대중예술/상업음악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가고, 플레이리스트에 놓이고, 스킵과 반복의 경쟁 속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음악을 전제로 합니다. 즉,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안에서 작동하는 음악입니다.


이 전제를 놓치면 논의는 무의미해집니다.

그러니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업음악을 이야기합니다.



1. 상업음악의 환경은 ‘표현’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를 먼저 던집니다

brittany-bendabout-ztsbjou4vus-unsplash.jpg 사진 : Unsplash의 Brittany Bendabout

상업음악의 세계에서 작품은 존재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선택”되어야 합니다.


이때 작곡가는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상대합니다.


곡의 시간(작품이 흘러가는 시간)


선택의 시간(사람이 떠날지 남을지 결정하는 시간)



상업음악은 이 두 시간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가깝습니다.

즉, 음악적 전개가 아니라 선택의 전개를 설계합니다.


이 말은 미학을 버리자는 뜻이 아닙니다.

미학이 작동하기 위해서 먼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2. ‘긴장 - 이완’은 미학이기 전에 계약입니다


우리는 ‘긴장 - 이완’을 흔히 음악 내부의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상업음악에서 ‘긴장 - 이완’은 종종 청자와의 계약입니다.


“기다리면 보상을 주겠습니다.”

“따라오면 풀어드리겠습니다.”


대중이 익숙해진 감각 질서 속에서

‘이완’이 너무 늦으면 계약은 파기됩니다.

사람은 떠납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합니다.

상업음악에서의 ‘긴장 - 이완’은

예술적 필연이라기보다 관계의 기술이 됩니다.



3.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simone-secci-49uySSA678U-unsplash.jpg 사진 : Unsplash의 Simone Secci

이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상업음악을 듣는 사람은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을까요.


법률과 윤리의 영역에서는 자유의지가 중요한 전제입니다.

책임을 묻고 규범을 세우기 위해서, 인간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알고리즘 환경에서는

자유의지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선택은 존재합니다.

다만 선택이 놓이는 ‘무대’가 이미 설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골랐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노출된 것 중에서” 고릅니다.


이때 작곡은 단순히 노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선택이 일어나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됩니다.



4. ‘도시의 신호등’과 ‘길 잃지 않게 하는 설계’

rodrigo-curi-jMwvXP860fU-unsplash.jpg 사진 : Unsplash의 Rodrigo Curi

상업음악의 구조를 저는 종종 도시의 신호등에 비유합니다.


신호등은 자유를 빼앗는 장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수가 동시에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최소 규칙입니다.


하지만 신호등이 너무 많아지면

도시는 느려지고, 움직임은 단조로워집니다.

사람은 규칙을 따르지만, 감각은 무뎌집니다.


상업음악의 강한 구조(반복, 귀환, 빠른 이완)는

‘길 잃지 않게 하는 장치’입니다.


청자가 이탈하지 않게 하고


이해 비용을 줄이고


집단이 함께 반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그 장치가 과도해질 때,

음악은 “움직이지만 이동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계속 재생되지만, 감각은 축적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작곡의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신호등을 더 늘릴 것인가,

아니면 신호등을 유지하되 도시의 골목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상업음악의 태도 문제입니다.



5. ‘패스트푸드’와 ‘슬로우쿠킹’의 공존

david-foodphototasty-E94j3rMcxlw-unsplash.jpg 사진 : Unsplash의 David Foodphototasty

상업음악은 빠르게 소비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점에서 패스트푸드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가 전부가 되면

사람은 어느 순간 “다른 질감”을 원합니다.

씹는 시간, 향이 남는 시간, 천천히 변하는 맛.


상업음악 안에서도 같은 욕구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립이 아니라 공존입니다.


빠른 선택을 통과시키는 최소 구조는 유지하되,

그 안에서 감각이 남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


즉, 상업음악 안에서의 “깊이”는

느리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통과한 뒤 남는 잔향을 설계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6. 조건 속 선택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현대예술음악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유통 구조가 논의의 중심일 필요가 없고,

‘선택 경쟁’ 자체가 작품의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업음악만 이야기합니다.


상업음악에서 작곡은

무엇을 표현할지 이전에

어떻게 선택될지를 먼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상업음악의 작곡은

순수한 자유가 아니라 조건 속 선택의 예술입니다.


자유의지는 여기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설계된 환경 안에서의 결정”으로 작동합니다.


세계는 듣는 방식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업음악은 그 ‘듣는 방식’ 자체를

가장 빠르게 갱신하는 현장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전제를 유지한 채,

“청자는 수동적인가”를 다시 묻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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