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래 자동차의 심장은 소리로 뛴다

엔진음을 대체할 인공지능 사운드 디자인의 가능성과 철학

by JUNSE

Sound Essay No.35

미래 자동차의 심장은 소리로 뛴다


엔진음을 대체할 인공지능 사운드 디자인의 가능성과 철학


andrew-roberts-2JvEjF0tf50-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ndrew Roberts


심장이 멈춘 자동차의 시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동차의 심장은 '엔진'이었습니다. 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 즉 엔진음으로 자동차의 힘과 건강 상태를 느꼈고, 그 거친 포효에 열광했습니다. 페라리의 날카로운 비명, 할리 데이비슨의 말발굽 같은 고동 소리는 단순한 소음을 넘어, 그 기계에 영혼을 불어넣는 심장 박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전기차라는 혁명이 침묵 속에서 다가왔습니다. 강력한 모터는 소리 없이 돌고, 자동차는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입니다. 심장이 멈춘 것입니다. 이 침묵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기능적 문제를 낳았고, 운전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감성적 교감'의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멈춰버린 심장의 빈자리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심장은 더 이상 강철과 기름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소리' 그 자체, 그리고 그 소리를 실시간으로 빚어내는 '인공지능(AI)'입니다. 이 글은 AI 사운드 디자인이 어떻게 자동차의 새로운 심장이 되어, 브랜드의 철학과 운전자의 감성까지 담아내는 '소리의 영혼'을 창조하는지에 대한 미래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침묵이 남긴 숙제 - 기능과 감성의 빈자리

Harman-Halsonic.jpg www.motoringelectric.com 'Do electric cars have to make a sound?'


전기차의 침묵은 우리에게 두 가지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기능적 숙제: '존재'를 알려야 하는 의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자동차는 보행자, 특히 시각 약자에게 매우 위험합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전기차에 '가상 음향 시스템(AVAS)' 장착을 의무화했습니다. 자동차가 저속으로 주행할 때 의무적으로 소리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는 지루한 기계음만으로 충분할까요? 이는 최소한의 기능적 숙제를 해결했을 뿐, 자동차의 개성이나 매력을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감성적 숙제: '영혼'을 되찾아야 하는 과제
더 큰 문제는 감성의 빈자리였습니다. 운전자들은 엔진의 회전수(RPM)에 따라 변화하는 소리를 통해 자동차와 교감했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는 깊이에 따라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운전자에게 속도와 힘에 대한 직관적인 피드백이자, 운전의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진 전기차의 운전 경험은, 마치 생생한 오케스트라 연주 대신 박자만 알려주는 메트로놈을 듣는 것처럼 어딘가 허전하고 심심하게 느껴졌습니다.



1세대 심장 이식 - '작곡가'의 시대를 맞다

x1080.jpeg 출처 : BMW IconicSounds Electric at CES 2022 - Hans Zimmer i4 and iX Iconic Sounds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브랜드들은 '소리'를 다시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선택은 바로 세계적인 '작곡가'들과의 협업이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 <듄>의 음악 감독 한스 짐머가 BMW의 전기차 사운드를 디자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1세대 심장 이식 수술이었습니다. 한스 짐머는 '스포츠 모드'에서는 우주선이 날아오르는 듯한 웅장하고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를, '에코 모드'에서는 평화롭고 미니멀한 사운드를 만들어, 운전 모드에 따라 자동차의 성격이 변하는 것을 청각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자동차는 비로소 지루한 기계음에서 벗어나, 작곡가의 의도가 담긴 '음악'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리 녹음된 연주곡을 상황에 맞게 재생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운전자의 미세한 감정 변화나 주변 환경의 특수성까지 반영하는, 진짜 '살아있는' 심장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차세대 심장 - 인공지능, '소리의 영혼'을 빚다

acoustic-ais-revolutionary-ability-to-hear-sirens-and-horns-could-transform-driver-safety-and-save-lives.jpg 출처 : www.rudebaguette.com “Cars Can Now Hear Sirens Before You Do”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심장 전문의가 등장했습니다. AI가 만드는 자동차의 새로운 심장은, 미리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소리를 '창조'합니다.


살아있는 심장 박동: 실시간 생성 사운드
AI의 심장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는 깊이, 운전대의 각도, 도로의 경사와 상태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이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 다르게 뛰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은 어제와 다른 소리를, 1초 전과는 다른 소리를 내며, 운전자에게 무한히 섬세하고 유기적인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더 이상 반복 재생되는 배경음악이 아닌, 나와 함께 호흡하는 진짜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읽는 심장: 공감하는 사운드
AI 심장의 가장 놀라운 점은 운전자의 '감정'을 읽고 그에 '공감'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복잡한 퇴근길, 차 안의 센서가 당신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 것을 감지하면, 자동차의 가상 사운드는 저절로 더 차분하고 부드러운 톤으로 바뀝니다. 마치 "힘들었지? 조금만 힘내"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말이죠. 반대로 주말 아침, 한적한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릴 때, 당신의 즐거운 기분에 맞춰 자동차의 소리는 더 경쾌하고 역동적으로 변하며 함께 노래합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심장: 지능적인 사운드
AI 심장은 GPS와 카메라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이해합니다. 병원이나 학교 근처의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서면 스스로 목소리를 낮춰 주변을 배려하는 사려 깊은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전용 서킷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잠재웠던 야수의 본능을 깨워 심장을 울리는 강력한 사운드를 토해낼 것입니다. 소리가 상황에 맞는 '지성'과 '태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심장은 '소리'로 뛴다


Listen_What_Sound_Should_a_Car_Make_AVAS_Report_June_2024_Cover__1_.png 출처 : https://wearelisten.com/splash/future-of-ev-sound/


엔진음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그 거친 심장 소리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엔진의 시대가 힘과 효율의 경쟁이었다면, 다가올 AI 사운드의 시대는 감성과 경험의 경쟁이 될 것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심장이었던 엔진의 울음소리는 강력했지만, 운전자의 마음을 읽거나 주변을 배려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소리의 심장'은 강력할 뿐만 아니라 지능적이고, 때로는 따뜻하기까지 합니다.


미래의 자동차는 더 이상 차가운 기계 덩어리가 아닐 것입니다. 운전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주변 세계와 교감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리의 생명체'로 진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중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심장은 바로 '소리'로 힘차게 뛰고 있을 것입니다.


https://linktr.ee/soundfoundrynco

https://www.instagram.com/junse/


https://blog.naver.com/soundfoundrynco/22400002669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대화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