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균사체 네트워크에서 영감을 얻은 네트워크 사운드 디자인
생각 스케치 No.6
'인터넷'이나 '네트워크' 하면 어떤 소리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영화 속 해커의 작업실에서 들릴 법한 빠르고 날카로운 '삐빅-' 소리, 데이터가 오가는 듯한 전자적인 '지직-'거림 같은 것들일 겁니다. 차갑고, 인공적이며, 때로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소리들이죠.
그런데 지구상에는 우리가 아는 인터넷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어쩌면 더 지능적인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바로 버섯과 곰팡이를 이루는 미세한 실들의 지하 연결망, '균사체 네트워크(Mycelial Network)'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는 숲 전체를 연결하며 나무들 사이에 영양분과 정보를 주고받는, 말 그대로 '숲의 인터넷' 역할을 합니다. 놀랍도록 효율적이고, 유기적이며, 생명력 넘치는 시스템이죠. (균사체 네트워크의 경이로움에 대해서는 폴 스테이메츠(Paul Stamets)의 TED 강연 등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전 Sound Essay에서 '4분 33초'라는 작품으로 '소리 없음'의 의미를 묻고, '우연성'을 음악에 도입했던 전위 예술가 존 케이지(John Cage)입니다.(관련 글 읽기 - 우리는 소리를 만드는 사람일까, 경험을 만드는 사람일까?: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사운드 디자이너에게 던지는 질문)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음악가이자 사상가였을 뿐 아니라, 열렬한 버섯 애호가이자 전문가 수준의 아마추어 균학자(Mycologist)였습니다.
그가 왜 버섯에 빠졌을까요? 이야기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젊은 케이지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시골(캘리포니아 카멜 근처)에서 지내며 직접 먹을 것을 구해야 했습니다. 숲에는 버섯이 지천이었지만,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죠. 생존을 위해 그는 필사적으로 버섯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이 먹을 수 있는 버섯이고, 어떤 것이 독버섯인지 구별하는 법을 익혔고, 라틴어 학명까지 외워가며 버섯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존 케이지와 버섯에 대한 이야기는 Open Culture 기사 등 여러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지에게 버섯은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섰습니다. 버섯의 예측 불가능한 성장 방식, 놀라운 다양성, 그리고 숲 전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균사체 네트워크는 그가 추구했던 예술 철학과 깊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즉흥성, 우연성,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심지어 침묵까지도)를 음악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그의 태도처럼, 버섯 역시 자연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예술 작품이자, 숨겨진 질서의 상징이었던 셈이죠. 그는 뉴욕 균학 협회(New York Mycological Society)를 공동 창립할 정도로 버섯에 진심이었습니다.
케이지가 침묵 속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발견했듯, 어쩌면 우리 발밑의 이 조용한 네트워크 속에도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놀라운 소리의 가능성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요? 자, 여기서 우리의 스케치가 시작됩니다. 만약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디지털 네트워크(인터넷 트래픽, 소셜 미디어 연결 등)의 소리가, 이 땅속 균사체 네트워크처럼 유기적이고 생명력 있게 디자인된다면 어떨까요? 존 케이지가 귀 기울였던 그 미묘하고 복잡한 세계처럼 말입니다.
현재의 네트워크 관련 소리들은 대부분 '경고'나 '알림'의 기능에 집중합니다. 데이터 전송 오류가 발생했을 때의 날카로운 경고음, 새로운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명확한 신호음. 이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네트워크가 가진 본질적인 '연결'과 '흐름'의 감각을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긴장시키거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 때가 많죠.
균사체 네트워크는 어떻게 소통할까요? 물론 소리를 내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 정보의 흐름을 소리로 번역한다면, 아마 '삐빅'거리는 소리는 아닐 겁니다. 훨씬 더 느리고, 미묘하며, 복잡하게 얽힌 소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땅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맥박이나, 수많은 생명체들이 주고받는 조용한 속삭임처럼 말이죠. 존 케이지가 사용한 '우연성 음악(Chance Music)'처럼,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 안에 어떤 질서와 가능성이 느껴지는 그런 소리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땅속 네트워크의 지혜를 빌려와 디지털 네트워크의 소리를 어떻게 새롭게 디자인해볼 수 있을까요?
데이터 흐름을 '영양분'처럼 느끼게: 인터넷 트래픽의 양이나 속도를 단순히 빠르고 시끄러운 소리로 표현하는 대신, 균사체가 영양분을 보내듯 느리고 부드러운 '맥박'이나 '흐름'으로 표현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와이파이 신호 강도를 나타내는 소리가 딱딱한 단계별 알림음이 아니라, 마치 물이 스며들듯 부드럽게 변화하는 앰비언트 톤이라면 어떨까요? 네트워크 상태를 시각적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귀로 그 '건강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연결을 '성장'의 소리로: 소셜 미디어에서 새로운 친구 관계가 맺어지거나, 커뮤니티에 새로운 멤버가 참여하는 순간을 생각해봅시다. 지금처럼 짧고 기능적인 알림음 대신, 마치 균사체가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가듯, 유기적이고 생명력 있는 짧은 사운드가 재생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작은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소리나, 물방울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듯한 소리. 이는 '연결'이라는 행위에 단순한 알림을 넘어, '성장'과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감성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 전체를 '숲'처럼 느끼게: 개별적인 알림음에 집중하기보다, 네트워크 전체의 활동량을 하나의 거대한 '앰비언트 사운드스케이프'로 디자인하는 방식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숲속의 고요함처럼 아주 미세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들이 배경에 흐르다가, 특정 지역(예: 내가 속한 그룹 채팅방)에서 활동이 활발해지면 그 부분의 소리가 마치 특정 구역의 나무들이 바람에 더 흔들리듯 조금 더 풍성해지는 식입니다. 이는 개별 알림의 방해 없이도, 내가 속한 디지털 생태계의 전반적인 '활력'과 '흐름'을 자연스럽게 감지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접근은 주변 환경 정보를 소리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앰비언트 디스플레이' 연구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런 '균사체 사운드'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을까요?
디지털 스트레스 감소: 날카롭고 인공적인 소리 대신,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유기적인 소리는 우리가 디지털 기기와 상호작용할 때 느끼는 긴장감과 피로감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기술이 우리를 재촉하는 대신,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연결에 대한 새로운 감각: 우리는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 정보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균사체 사운드는 이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마치 살아있는 생태계처럼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가 디지털 세상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기술과 자연의 조화: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종종 자연과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균사체 네트워크의 지혜를 빌려 기술의 소리를 디자인하는 것은, 오히려 기술과 자연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존 케이지가 생존을 위해 시작한 버섯 연구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듯, 우리도 자연의 소리 없는 네트워크에서 미래 기술의 소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직 실험적인 생각의 스케치입니다. 인터넷 트래픽을 버섯처럼 소리 나게 만드는 것이 항상 더 효율적이거나 유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술을 디자인할 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꼭 다른 기술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발밑의 땅속에서 수억 년간 세상을 연결해 온 작은 생명체의 지혜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최첨단 기술에 가장 필요했던 '인간적인 온기'와 '생명의 감각'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섯 번째 스케치북 페이지는 이렇게, 땅속 깊은 곳의 속삭임과 존 케이지의 버섯 바구니를 떠올리며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