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튠/리버브를 걷어낸 '초근접(Proximity)' 사운드 디자인 미학
Sound Essay No.45
2019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데뷔 앨범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가 그래미 어워드 5관왕을 휩쓸며 전 세계 음악 산업을 강타했습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어린 10대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의 음악이 그동안 팝 시장을 지배해 왔던 견고한 '성공 방정식'을 철저히 조롱하듯, 정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팝 음악, 특히 케이티 페리(Katy Perry)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등으로 대표되던 메인스트림 사운드는 소위 '맥시멀리즘(Maximalism)'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터질 듯 꽉 채운 신시사이저, 완벽한 피치로 조율된 고음의 보컬, 그리고 거대한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듯한 웅장한 리버브(잔향)가 필수였죠. 소리는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멀리 뻗어나가야만 대중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빌리 아일리시와 그녀의 오빠이자 프로듀서인 피니어스(Finneas)는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아주 기묘한 선택을 합니다. 그들은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침대 맡에서 혼잣말하듯 웅얼거렸습니다. 화려한 오케스트라 세션 대신 치과 드릴 소리나 성냥 긋는 소리를 비트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 세계 대중은 웅장한 디바의 고함 대신 이 불친절하고 음침한 속삭임에 더 열광했습니다.
이 글은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가 보여준 '안티-팝(Anti-pop)' 사운드 디자인을 해부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소리의 '크기(Loudness)'가 아닌 '거리(Distance)'와 '질감(Texture)'을 조작하여, 청취자의 고막을 점령했을까요?
기존 팝 음악의 보컬 믹싱은 가수를 '무대 위'에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청취자와 가수 사이에는 적당한 물리적 거리가 있고, 그 공간을 메우기 위해 풍성한 에코(Echo)와 딜레이(Delay)를 사용하여 닿을 수 없는 '스타'의 아우라를 만들었죠.
반면, 빌리 아일리시 사운드의 핵심은 '거리의 소멸'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가 아니라, 청취자의 '고막 바로 옆', 심지어는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합니다.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근접 효과(Proximity Effect)'와 '컴프레션(Compression)'의 극단적인 활용입니다.
근접 효과의 미학: 지향성 마이크(단일 지향성)에 음원이 아주 가깝게 접근할수록 저음역대가 급격하게 부스트(Boost)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피니어스는 빌리에게 마이크와 입술이 거의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노래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육중한 저음의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컴프레션으로 숨소리를 증폭하다: 작게 부른 노래를 크게 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히 볼륨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납작하게 누르는 '컴프레서'를 아주 강하게 걸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큰 소리는 눌리고, 아주 작은 소리(숨소리,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 침 삼키는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증폭됩니다. 이를 통해 '기식음(Breathy sound)'이 성대의 울림보다 더 강조되는, ASMR과 같은 질감이 완성됩니다.
심리적 효과: 이 극단적인 근접성은 청취자에게 강력한 심리적 효과를 줍니다. 마치 가수가 내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 안으로 침범해 들어와 비밀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한, 거부할 수 없는 친밀감과 기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요즘 팝 음악은 리버브라는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고 있어요." 피니어스의 말처럼, 기존 음악에서 리버브는 보컬의 미세한 잡티를 가리고 예쁘게 포장하는 필수적인 '필터'였습니다.
하지만 피니어스는 과감하게 이 리버브를 걷어내고, 소리를 '드라이(Dry)'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표곡 'Bad Guy'나 'Xanny'를 들어보십시오. 보컬은 마치 방음이 잘 된 좁은 옷장 안에서 바로 내 귀로 전달되는 것처럼 건조하고 직접적입니다.
비교 분석: 80년대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주창했던 '소리의 벽(Wall of Sound)' 기법이 수많은 악기와 리버브로 빈틈없이 꽉 찬 소리를 지향했다면, 피니어스의 방식은 '여백의 건축'입니다. 그는 드럼과 베이스, 보컬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비워둡니다(Mute).
침실(Bedroom)이라는 공간의 특성: 이 '드라이함'은 그들이 전문 스튜디오가 아닌, 집 침실에서 녹음했다는 사실과도 연결됩니다. 침대 매트리스, 커튼, 옷가지들이 가득한 침실은 소리의 반사가 거의 없는(Dead) 공간입니다. 그들은 이 열악한 환경을 억지로 스튜디오처럼 꾸미는 대신, 오히려 그 '먹먹하고 건조한' 공간의 특성을 자신들의 시그니처 사운드로 승화시켰습니다.
현실감의 회복: 리버브를 제거한다는 것은, 가수를 신비로운 환상의 공간에서 끌어내려 우리와 같은 좁은 방 안에 앉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날것(Raw)'의 사운드는 인위적인 가공을 거부하고, 아티스트의 인간적인 면모와 감정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피니어스의 프로듀싱 방식은 전통적인 작곡이라기보다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 혹은 '사운드 콜라주(Sound Collage)'에 가깝습니다. 그는 "왜 킥 드럼 소리는 항상 똑같아야 하지?"라고 질문하며, 값비싼 가상 악기(VSTi) 대신 침실에서 녹음한 일상의 소음(Foley)들을 리듬과 텍스처로 적극 활용합니다.
'Bury a Friend'의 치과 드릴: 이 곡의 리듬 트랙에는 실제로 치과에서 녹음한 날카로운 드릴 소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이햇(Hi-hat) 악기가 줄 수 없는, 신경을 긁는 듯한 기계적인 소음은 곡의 기괴하고 불안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Bad Guy'의 횡단보도 신호등: 호주 멜버른 여행 중 녹음한 횡단보도 신호등 소리('틱-틱-틱')를 샘플링하여 곡의 메인 리듬 소스로 사용했습니다. 규칙적이지만 어딘가 인공적인 이 소리는 곡의 독특한 그루브를 만듭니다.
성냥 긋는 소리 (Watch): 스네어 드럼 대신 성냥에 불을 붙이는 '치이익-' 소리를 사용했습니다. 타악기의 어택감(Attack)뿐만 아니라,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의 질감까지 청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러한 '파운드 사운드(Found Sound, 발견된 소리)' 기법은 음악에 세상에 없던 독창적인 질감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청취자에게 무의식적인 현실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어? 이거 무슨 소리지?" 하며 음악을 분석하게 만들고, 더 깊이 귀 기울이게 만드는 장치인 셈입니다.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의 성공은 "더 크게, 더 화려하게"를 외치던 음악 산업(Loudness War)에 "작게 말해야 더 자세히 듣는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기술적 완벽함(Perfect Pitch, Huge Sound) 대신, 심리적 거리감(Proximity)과 소리의 질감(Texture)을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수만 명을 수용하는 스타디움에서도 마치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가장 사적이고도 강력한 음악적 경험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운드 디자인의 핵심은 데시벨(dB)을 높여 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취자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 관계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밀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침묵에 가까운 속삭임이 천둥소리보다 더 깊게,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