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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Jan 15. 2021

<맹크>와 <시민케인>

데이빗 핀처, 2020. 오손 웰즈, 1941. 

 

 그래서 어느 쪽이 어려울까?

  <시민케인>이 '상대적으로' 쉬운 영화다. 

 영화를 학구적으로 대한 경험이 없는 나 같은 일반관객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그 영화사적 가치를 일일이 체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시민케인> 역시 보편적인 이야기를 대중적인 화법으로 전달하는 상업영화였기에(그 당시에) 너무 선입견을 갖지 않고 낯가림만 극복한다면 충분히 이입해서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맹크>가 보편성이 결여되었다거나 대중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맹크>는 흑백에 담배빵에 과거지향적인 무드를 띄지만 무결한 미장센과 리드미컬한 숏의 전환이 돋보이는 여전한 데이빗핀처의 영화다. 다만 영화가 거슬러올라가는 과거에 친숙하지 못하다는 부담이 있고 그것말고도 의외의 복병은 다름아닌 자막의 장벽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 쏟아지는 정보량이 꽤 많은 편이다. 1930년대 헐리우드 흐름이라거나 정치사회적 맥락을 영화 내적으로 전혀 소화할 수 없는 건 아닌데 그걸 자막과 동시에 받아들이려니 과부하가 걸릴 때가 있다. 또 작가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드립을 생생하게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일례로

 MGM 창업주 루이스 메이어의 독립기념일 생일파티를 떠올려보자.

 루이스 메이어와 MGM프로듀서 어빙 솔버그, 언론재벌 윌리엄 허스트와 그의 정부 마리온 데이비스, 주인공인 맹크와 그의 부인 불쌍한 사라까지. 대충 열거한 주요인물의 얼굴이 아직 낯선 시점이고 저마다 이름도 잘 붙지 않는데 또 다수 조연들이 파티장을 가득 메웠다.

 여러 카메라가 포착하는 얼굴들이 이리저리 잽싸게 오고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고 섥힌 대화를 나눈다. 게다가 그 대화의 내용이란 2차대전을 앞둔 나치의 대두부터 시작해 헐리우드 경쟁 영화사들끼리의 대립 그리고 주지사 자리를 둘러싼 공화당과 밍주당의 신경전, 그 후보 중 한명 업턴 싱클레어에 대한 화제로부터 촉발된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까지... 겹겹으로 쌓인 이 시끌벅적한 수다는 인물끼리의 이해, 갈등의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흘려듣고 넘기기가 곤란하다.


 말해놓고 보니 또 난이도를 부풀린 기분이기도 한데...

 강조하고 싶은 바는 맹크 뿐 아니라 그 주변인물(대충 위에서 언급한 정도)들은 영화에서 주인공을 받치는 조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시민케인>이 케인이란 1명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그를 알았던 N명의 플래시백들을 수집해나가는 과정이라면

<맹크>는 거꾸로 맹크의 플래시백마다 등장하는 N명의 실체를 알아가며 이를 토대로 케인이라는 1명의 허구인물을 구성하는 과정이다.

 즉

 <맹크>는 <시민케인>의 또 다른 버전이다. 데이빗핀처가 <시민케인>의 재해석으로 새로운 시민케인을 제시한다고 느껴질만큼.

 암튼 그 정도로 <맹크>와 <시민케인>은 서로 마주보고 출발해 끝내 하나의 도착점 '케인'으로 달려가는 라이벌과 같다. 어떤 관객은 당연히 <시민케인>을 보고 케인에 대해 알았다고 말하겠지만 어떤 관객은 오히려 <맹크>를 보고나서 케인이라는 실체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설령 <시민케인>을 보지 않았더라도 오직 <맹크>만으로 그 나름의 케인을 형성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알긴 어렵겠지만 <맹크>를 온전히 받아들였다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을것이다. 그 어렴풋함이 관점에 따라 진실에 더 근접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말해 나는 <맹크>가 <시민케인>을 추종한다기보다 어느정도 동등한 입장에서 같은 각본을 다른 방식(재현이 아닌 해체)으로 재구축하려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두 영화가 각자의 방향으로 닿으려 하는 '케인'은 어떤 존재일까?

 <시민케인>의 케인은 알쏭달쏭한 인물이다. 멀리서 보면 천박하고 어리석은 갑부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다가가보면 또 천박해지기를(천박해보이기를) 열렬히 거부한다. 마지막의 불타는 로즈버드를 목격하고 아~ 불쌍한 할베 연민할 수도 있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별것 아닌것 같기도 하다. 끝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기자의 말처럼 우린 결국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지 않을까... 허무해지기도 한다.

 <맹크>의 맹크는 침대에 누워 글쓰다 회상하고 글쓰다 회상하기를 반복하며 케인을 완성해간다. 기본적으로는 그가 만난 윌리엄 허스트라는 언론재벌이 모델이다. 그리고 그가 헐리우드에서 경험한 다채롭게 서글픈 현실이 케인을 둘러싼 서사의 살을 채워나간다. 영화 종반부에 맹크는 축하연에 만취한 모습으로 나타나(아마 선거축하 파티였을 거다.) 현실의 시민케인 속 등장인물들을 모조리 앉혀둔 채 그들 눈앞에서 돈키호테의 변주로 케인의 프로토타입을 이룩한다. 그럼 케인은 곧 맹크가 마지막까지 지목한 돈키호테, 윌리엄 허스트라고 단정지어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케인이란 존재가 맹크가 오슨웰즈에게 받은 첫인상 + 윌리엄허스트의 사회적조건과 배경 + 맹크 본인의 내면이 결합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민케인>의 케인에게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면 일종의 '소년성'이다. 시민케인은 착하다 나쁘다 진실하다 가식적이다 어느 하나로 확 기울어지지는 않지만 매 결정적 순간마다 소년같은 선택과 행동을 한다는 점만큼은 일관적이다.(고로 젊은 나이에 늙은이 분장을 한 오슨웰즈의 얼굴이야말로 정확한 케인의 정체성이다.) 수잔과의 외도가 들통났을 때 그는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앞세워 사태를 악화시킨다. 그후 여태까지 아군이나 다름없던 전국의 신문독자들이 그를 조롱하는 적대적세계로 변하자 그는 이 세계에 전쟁을 선포한다. 수잔을 어떻게든 오페라가수로 무대에 오르게 해 온 세상의 비웃음과 정면대결한다. 수잔은 케인의 산초노릇을 하다 나가떨어진다. 풍차와의 싸움에 지친 케인은 그걸 정신승리로 얼버무리고 제나두 성을 세워 스스로를 가둔다.

 이러한 소년성은 <맹크>의 윌리엄허스트보다 <맹크>의 맹크에게서 확연히 드러나는 공통분모다. 즉 그가 마지막까지 손가락질했던 돈키호테의 진면목은 바로 자신이었고 바로 그 축하연에서 말 그대로 돈키호테 짓을 저질러버렸다. 이 영화의 많은 기점마다 그는 그런 식의 선택을 하며 끝까지 돈키호테짓을 고집한 결과가 바로 <시민케인>이다. 돈키호테는 맹크의 자화상이다. 곧 케인은 맹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대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맹크와 달리 모든 걸 다가진(그러나 딱 하나만은 갖지 못한) 시민케인을 상상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의 처음과 중간 '불쌍한 사라'라고 부르는 자신의 아내에게 맹크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당신은 왜 (아직까지, 이런 나를 참고) 내 곁에 남아있어 주느냐고.

 그동안 아내를 고달프게 한 죄책감이 있겠으나 또 한편으로 진심 궁금하다는 듯 멍한 얼굴로 물어본다.

 맹크와 시민케인 어느쪽의 삶이 더 어려웠을까? 라고 질문을 달리 한다면 오히려 모든 걸 가졌지만 딱 하나만은 갖지 못한 시민케인이 가장 불운한 삶일수도 있다. 반면 왜 아직까지 내 곁에 남아있어 주느냐고 물어볼 누군가가 아직 남아있다면 그 자체로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걸 다가진 시민케인은 그 한 사람을 갖지 못했다. 작정한 건 아닌데 쓰다보니 끝이 감동적이다.


 덧붙여서 나는 왜 맹크가 게리 올드만이어야만 했는지 좀 궁금했다. 게리 올드만은 훌륭한 배우다. 이 영화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아까 그 축하연 장면에서 게리 올드만은 스크린안팎의 모두를 침묵시킬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맹크가 마리온(아만다 사이프리드)과 처음 산책을 동행하며 친구가 되는 장면에서 나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더 적었어야만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실존인물 맹크와 마리온은 1897년생으로 동갑이었다. 왜 의도적으로 맹크를 실제보다 더 늙은 모습으로 보여줘야만 했을까? 릴리 콜린스나 아만다 사이프리드 같은 아름다운 배우들 사이 불필요한 성적긴장을 차단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맥락으로 관객의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아니면 혹시 이 영화의 각본이 데이빗 핀처의 아버지 잭 핀처가 남긴것이기에 맹크의 모습에 같은 각본가로서의 아버지를 겹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이 역시 감상적인 나만의 상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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