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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분노 Jan 15. 2021

<사이코>의 가장 쿨했던 장면

알프레드 히치콕, 1960


 사이코를 히치콕의 베스트로 꼽는 게 쿨해보이지는 않겠지만

 사이코는 너무나 멋진 샷들로 가득하고

 히치콕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흑백이나 클래식을 꺼리는 사람일수록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다. 

 특히 영화의 전반부, 마리온(자넷 리)이 회사돈(재수없는 갑부가 맡긴 현금)을 훔쳐 달아나는 여정은 현재의 관객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올 법하다. 나 역시 이 영화의 전반부를 더 좋아한다. 


 그 중에서 가장 쿨했던 장면은 

 차를 운전해 도망치는 마리온이 앞유리 즉 카메라를 응시하며 

 관객으로서는 그녀의 표정을 관찰하는 클로즈샷과 함께 그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타인들의 반응(회사상사, 동료, 갑부, 경찰 등)이 보이스오버되는 씬이다. 

 마리온의 얼굴에 겹쳐지는 타인들의 목소리가 울림처리되어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게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마리온의 마음에서 그녀만의 상상으로 들리는 목소리(일종의 환청)임을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다. 

 마리온은 스스로 저지른 심각한 일탈에 대해 외부세계의 타인들이 보일 반응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다가

 어느순간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잠깐이나마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이다. 

 그동안 작은 나 자신을 억압해 온 거대한 현실에게 통쾌한 복수를 성공했다는, 마치 그런느낌이다. 


 영화를 끝까지 지켜봤다면 이와 비슷한 보이스오버가 한 번 더 등장함을 발견할 것이다.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먼에게 카메라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며

 클로즈업된 노먼의 입을 꾹 다문 얼굴에 그의 신경질적인 어머니 목소리가 마치 복화술처럼 겹쳐진다.

 마리온과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목소리가 아닌 노만이 상상해낸 목소리, 환청이다.

 마리온과 마찬가지로 그를 억압하는 타인의 목소리인데 그 타인이란 훨씬 더 밀접하게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그의 어머니라는 존재다. 

 그리고 이 어머니라는 존재는 단순히 내 마음에 침투한 타인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제 엄연히 실재하는 목소리로서 그를 완전히 잠식하고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마리온과 노먼의 관계는 단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니라

 한 가해자가 다른 가해자에게 잡아먹히는 관계다.(또는 한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에게 잡아먹히는 관계다.)

 이 잔인한 포식이 발생하기 앞서

 두 사람은 둘만의 공간에서 박제된 새들을 배경으로 둔 채 짧지않은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은 박제된 새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덫'에 대해서 얘기한다. 

 노먼은 '우린 각자의 덫에 갇혀 있는 것 같다'라고 마리온에게 말한다. 

 '우린 그 덫에서 달아나려 할퀴고 뜯고 난리치지만 오직 허공에 몸부림하고 서로에게 상처입힐 뿐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화는 노먼의 어머니에 대한 화제로 이어져

 마리온은 노먼에게 한번쯤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한다. 노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화가 끝난 후 그 대화가 그녀 심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마리온은 스스로 만든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시도한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덫에 걸렸을 때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에서 그 시도는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선택이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샤워실 씬)은 

 바로 그전에 이루어진 노먼과 마리온의 긴 대화씬으로 인해 또 다른 충격적인 감정이 덧입혀졌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마리온이라는 낯선 여자와 노먼이라는 낯선 남자가 

 서로의 비밀을 은연중에 공유하고 서로를 향해 내면적으로 가장 가깝게 다가왔던 직후에 벌어진 사건이다. 

 마리온과 노먼이 잠시나마 가졌던 이 이상한 교감이 전반부 후반부로 선명하게 나눠지는 이 영화의 은밀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 연결고리를 영화적으로 멋지게 표현했다는 점이 사이코를 지나치게 유명하면서도 여전히 쿨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지점이다. 

 자신이 상상한 자신의 머릿속을 점령한 타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순간

 카메라를 향해 마리온이 지었던 미소와

 카메라를 향해 노먼이 지었던 미소를 비교해보자. 서로 얼마나 닮아있는지, 혹은 얼마나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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