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와분노 Jan 15. 2021

밀양의 신애, 시의 미자, 버닝의 해미

이창동, 2007, 2010, 2018

밀양의 신애는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인물이지만

이창동 영화의 많은 인물들이 그렇듯 그 자신의 모순을 안고 있다. 

그녀는 자기서사를 꾸며내고 스스로 그걸 믿으려는 여자인데(비극을 겪기 이전에도)

그러므로 그녀가 겪게 되는 비극이 더 견딜 수 없어지는 건 

그 비극에 자신의 거짓말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견딜 수 없기 때문) 

결국 그녀는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궁극의 거짓말? 신과 대결하게 된다. 

원래 각본상에서도 신애가 저수지에 들어가서 자살시도하며 끝까지 보이지 않는 신과 대결할 예정이었지만

촬영상의 사고로 다시 찍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각본이 수정되어 사과를 베다 손목을 가르고

이전까지 불신하고 불화했던 사람들, 이웃들에게 살려 달라 호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시의 미자도 귀여운 소녀 같은 할머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감각이 결여된, 현실에서는 종종 무시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시 쓰기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하늘과 나무의 꽃들을 올려다보며

예술에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아름다운 게 필요해서 애초에 시 쓰기를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더 그게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조금씩은 자기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고 싶어하고

자기 삶을 윤색하고 싶어 한다.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만 없는 게 그런 환상적인 영역조차 없다면 현실은 너무나 냉담하고 삭막할 뿐이다. 


버닝의 해미는 

물론 원작이 있고 각색도 오정미 작가가 먼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창동적인 인물의 특징이 어느 정도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더 극단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그런데 해미도 완벽한 4차원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종종 드러나는 그녀의 울먹이는 표정은

스스로도 그렇게 믿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인상을 전한다. 

귤이 없다는 걸 잊듯 돈이 없다는 걸 잊고 행복하게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어 하고

자기가 그들보다 가진 게 없다는 걸 잊고 그들(벤의 친구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리려 한다. 

나는 해미가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믿는 방식을 믿으려고. 하지만 결국 그녀도 외톨이였다. 미자나 신애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사이코>의 가장 쿨했던 장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