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글 박종원
남을 이해하지 못 할 때가 있다. 독특한 습관, 독특한 취향, 혹은 독특한 취미, ‘쟤는 뭐가 저렇게 재밌어서…’. 자기소개서를 차지하는 자그마한 한 칸. 취미. 누가 영화감상을 적는다. 다른 이는 악기 또 누군가는 스포츠. 아 다들 고상하고 바람직하다. 그 때 나는 음악감상을 적는다. 그래 음악 좋아하는 사람 많지. 그리고 음악감상 옆 소심하게 적혀있는 음반수집. 음반이라, CD를 안 본지 얼마나 오래됐지. 요즘은 CD도 구식이라던데. LP? 우리 부모님 세대 뻘 물건 아니야? 전에 뉴스에서 LP 판매량이 늘었다던데 그 시대 감성인가. 나도 궁금했다. 클릭 몇 번으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의 시대에 나에게 음반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이 나를 ‘음반을 사는 바보’로 만들었는지. 그래서 내 과거는 어땠던 거지? 내가 처음 산 팝 앨범은 David Guetta의 Nothing but the beat. 당시 나는 한창 유행하던 댄스 음악을 들으며 DJ의 꿈을 키우던 ‘EDM-boy’였다. 그 음반을 진열대에서 빼낸 손가락은 동경이었을지도. 세계 최고의 팝 댄스 DJ의 음반에 담겨있는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 나머지 손가락에는 응원의 마음도 조금 묻어 있던 것 같다. 이렇게 CD는 한 장 한 장 쌓여갔다. 칸의 아래쪽만 비워도 널널했던 책장은 이내 한 칸을 빼곡히 채웠다. 채워진 책장만큼 음악도 나를 채웠다. EDM-boy였던, 일렉트로니카는 EDM이 전부인 줄 알았던 중학생은 이제 과거가 됐다. 열정적인 파티의 붉은 색으로 붐볐던 그 칸에는 겨울 바다를 보는 듯이 차분한 청색, 산뜻한 녹색이 모여 이내 조화를 이룬다. 아직 20대 초중반이면 더 열정을 불태워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여하튼 붉음은 희석되어간다. 다채로운 삼 색의 조화. 경험들이 겹칠수록 접하는 음악 역시 다양해진다. 다채롭고 자칫 어지러울 수도 있는 다양한 색들. 하지만, 어지럽게 보이는 색들도 하나하나 짚어가면 경험이라는 틀에 차차 정리된다. 음반이란 나라는 사람의 작은 역사, 이렇게 정의 내리자. 신기하게도, 삼 색의 조화는 흰색을 부른다. 무채색의 흰색처럼 음악에는 답도 끝도 없다. 일평생 다 들을 수 없는 방대한 음악들. 책장을 채우듯이, 그저 우리는 자신의 음악사를 만들 뿐이다.
사람은 소유에 환장한다. 인간의 역사란 가짐의 역사이다. 소유를 포기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비참한 말로를 걸었고,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 규칙에 따르고 있다. 음악은 형체가 없지만 음악을 소유하고 싶다. 단지 데이터, mb가 아니라 물질로. 왜,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그것. 사람은 그런 것에 끌린다. 눈에 보일만큼 큼지막한 앨범 커버는 그에게 흡족 가득한 미소를 준다. 이 미소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네모난 유리판의 가치를 아는 건 자신밖에 없다. 제목처럼 다른 이들이 ‘굳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 타인에게는 가치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바보들을 너그럽게 봐주자.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대상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자. 나는 이번주에도 음반을 사러 서면에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