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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과위생사 이주화 Dec 07. 2023

#이왕이면(3)

이직하게 된 김에 전공을 더 잘 살릴 터를 찾아볼까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달리 이직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

'그래 이왕 옮기게 된 직장, 내가 공부했던 것을 활용하기 좋은 터를 찾아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새 직장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본가에서 가까운 치과도 찾아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본가가 있는 지역 사람들은 아직까지 예방이나 재활에 시간과 자본을 투자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본가에서는 멀더라도 기숙사를 제공해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치과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예방진료를 하는 치과 위주로 검색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고난이 시작되어 버렸다.


첫인상은 참 좋았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과가 깨끗하고 모두 새로운 장비들로 가득했다. 

예방과 재활뿐만 아니라, 새로운 치과 진료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까지의 면접은 고용주인 원장님과만 봐왔는데, 실장님이 같이 면접관으로 있는 것도 신선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지만, 면접 시에 원장님보다 실장님의 질문이나 의견이 더 많았고 그것이 오히려 좋은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 치과위생사로서 내가 나의 역할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적응하기에 바빴다.

개원치과가 원래 다 그렇듯,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하는 터라 업무 동선에 맞지 않게 기구들이 배치되어 있어 시간 활용이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계시던 진료팀장님이 그만두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 자리가 공석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적응을 하고 보니, 문제가 참 많은 치과였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크고 작은 의료사고들이 일상처럼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후 대처가 너무나도 미흡했다. 만약 환자들이 조금만 더 치과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의료 소송을 제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들이 빈번했다. 내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버는 것인지 환자들을 속여가며 양심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인지 자괴감이 드는 하루가 반복됐다.


그리고 오버타임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은 양의 예약이 잡혀있어서인지, 아니면 크고 작은 의료사고들을 수습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서인지 진료마감시간에서 1시간은 기본으로 초과근무를 하게 되는 날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초과근무를 하는 대상자가 타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진료가 끝나지 않으면 실장님이 임의로 초과근무자를 정하고 나머지 근무자들은 퇴근시켜 버리기 때문에 약속된 퇴근 이후의 시간까지도 내 마음대로 계획하고 활용할 수 없었다. 모두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유급휴일 사용도 자유롭지 않았다.

실장님이 임의로 환자가 없는 날, 연차가 가장 많이 남은 직원을 불러 '너 지금 연차 쓰고 퇴근해야 해'라고 통보하는 식이였다. 


월급도 지정한 날짜에 나오지 않았다. 세무서에서 아직 일처리를 다 마치지 못했다며 월급일보다 하루, 이틀 지급일이 미뤄지더니 일주일이나 늦게 주는 날도 있었다.


이외에도 문제점들이 많았지만, 크게 꼽자면 이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도 치과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럼에도 함께 일하는 시간만큼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사비를 털어 커피나 간식을 선생님들께 사드리며 우리 다시 힘내보자고 다독여가며 수개월을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라도 제대로 전문 지식을 갖춰 환자분들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며 그렇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나서도 주말에 다 같이 시간을 내서 세미나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치과에서도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직을 해야 했다.

처음 이직을 하게 된 데에는 건강 문제가 컸기 때문에, 사전에 면접을 볼 때에도 나의 건강문제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한 후 입사를 하게 되었고, 나의 어지럼증이 스스로 건강관리를 못 해서가 아니라 업무량이 너무 방대하고 업무 시간도 계약한 바와 전혀 다르게 늘어난 것이 원인임에도 병가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처음 이직을 계획하게 된 의도와 달리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빈도도 잦아지고, 그 시간도 길어졌다. 결국 나는 퇴사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원장님과 실장님은 몇 주만이라도 더 일해달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쁜 기억만 있었던 직장도 아니었기에, 좋은 마무리를 하고자 기간을 채우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조금 더 일을 하던 때에, 역시나 나의 어지러움증이 도졌다. 어지러우면 병원에 가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병원에 갈 정도로 거동이 가능하게 증상이 완화되었다면, 그냥 바로 출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어지럼증에 주는 약은 멀미약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의 근무태도를 운운하며, 처음 계약한 근무 시간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병가를 쓸 수 있는 상황임에도 눈치가 보여 유급휴가를 사용해야 했고, 계약을 안 지킨 것은 오히려 치과 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도 약속한 날 지급하지 않는 날이 허다했고, 계약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도록 한 것은 계약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가? 내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계약을 위반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선생님들과 힘내서 일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는데, 그 노력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그리고 이미 퇴사를 이야기하고도 추가로 근무를 하고 있는 이유는 좋은 마무리를 위함이었다.

그런데 더 다니면서 어지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그때마다 실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치과에 대한 서운함을 더 쌓아간다면, 오히려 좋은 마무리에서 거리가 더 멀어지는 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의 이런 입장을 실장님과 원장님께 전했고, 나는 그렇게 막장 드라마 같은 그 치과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쁜 기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활용할 시간과 체력이 없는 환경에서도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남은 시간들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과의 정이 남았다는 것이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막장 드라마에서 하차한 후, 옮기게 된 치과 역시 기숙사를 제공하는 치과였고 1년차 때 함께 일했던 친구가 일을 하고 있는 치과였다. 어디든 이전 치과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별다른 기대 없이 옮긴 새 직장에서 오히려 물을 만난 고기처럼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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