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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과위생사 도비 Sep 21. 2023

#이왕이면(2)

건강이 우선이긴 하더라

잠실로 출근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1시간 정도 타야 했고 한 번의 환승을 해야 했다. 

나는 경의중앙선을 30분 정도 타고 왕십리 역에서 환승해, 다시 20분 정도 2호선을 타고 이동해 출근을 했다.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환승을 하기 위해 왕십리역에서 2호선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속이 메스껍고 너무 어지러운 것이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렸지만, 이 열차를 탔다간 열차 안에서 쓰러져 응급처치가 늦어질 것 같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돌려 의자에 앉아서 쉬어봤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구역질이 났다.


출근길에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어지러운 상태에서 화장실로 향했다. 토를 하더라도 변기에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테니.

그러나 토는 나오지 않았고 어지러운 증상은 지속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함께 일하는 선생님에게 연락해 어지러운 증상이 너무 심해 병원에 먼저 갔다가 출근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부모님과 남자친구에게 현재의 증상을 전했다. 

(갑자기 쓰러졌을 때 빠른 대처가 가능하도록)


어지러운 증상이 있기 며칠 전에 치과에서 근무를 하다가 갑자기 오른쪽 귀가 먹먹해지며 안 들리는 증상이 있었기에 어지러운 증상이 약간 호전되고 나서 나는 바로 근무지 근처의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이비인후과에 도착해서 며칠 전에 귀가 먹먹했던 증상과 당일 겪은 어지러운 증상을 이야기하니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지러운 증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질환에는 이석증과 메니에르가 있는데, 현재 말씀해 주신 증상으로 봐서는 이석증은 해당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메니에르입니다."


메니에르라는 병명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했기에 '그게 뭔데요?' 하는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메니에르라면, 청각이 점점 소실돼 청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겨우 20대인데, 청력을 잃는다고?'

'우리도 치과에서 사랑니 발치를 하더라도 신경 손상의 가능성까지 이야기하듯, 최악의 경우까지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


병원에서는 담담한 척하며 나왔지만, 약국에서 약사님의 "어지럼증이 있으신가 봐요. 잘 챙겨드세요"라는 말에 '어지러운 게 문제가 아니라... 안 들릴 수도 있대요'하는 복잡한 마음을 담은 대꾸를 삼키다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어지러운 증상을 겪은 것을 부모님도 남자친구도 알고 있었기에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를 전해야 했는데,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리면 울음이 주체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이며 속상하게 해 드리기 싫어 우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남자친구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우선 알겠다. 울지 말고 뭐라도 마시고 있어'라고 했다. 

그렇지만 생소한 병명에 걱정이 되었는지, 바로 카카오톡 메시지로 '메니에르'라는 병에 대해 검색한 결과를 보내왔다. 


부모님께도 소식을 전하고, 직장에 전화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출근을 하고 싶지만 너무 많이 울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에 조금만 더 늦게 출근해도 될지 묻는 나의 말에 예약이 많지 않으니 오늘은 그냥 쉬고 내일부터 건강하게 보자고 나를 위로해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건강과 관련된 문제는 나의 개인적인 사정인데,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팅팅 부은 눈으로 나는 카페에 가서, 혹시라도 치과에 환자가 몰려 일손이 부족해지면 언제라도 출근할 수 있도록 대기를 하며 메니에르에 대해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검색해 보니 약물 치료로 어지럼증을 호전시킬 수 있으며, 수술적 치료도 있다고 나오는 것이다.

나아질 수 없는 병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그렇게 낙심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 있다는 나에게 함께 일하던 선생님은 오전, 오후 예약이 둘 다 많지 않고 오히려 취소되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에도 출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어지럼증을 견뎌야 했고, 건강에 무리가 갈 정도로 잠실로 출퇴근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실 근처의 자취방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너무 비싸거나 너무 열악한 환경의 방뿐이었다. 


결국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직을 선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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