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만든 시야의 확장
'그냥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서
무난했던 초반의 기자생활.
그리고 7월이 되어 일본 히로시마대학에 연수를 가게 되었다.
처음 보는 후배들, 그리고 졸업 후에 오랜만에 뵙는 지도교수님. 어색한 조합이었지만 친절한 후배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 덕분에 직장생활 중 편하고 긴 휴가를 온 듯했다.
히로시마대학병원에서의 실습은 우리나라에서 했던 임상 실습과 대부분 비슷했다.
다만 특이했던 점은 대기실에 있는 환자를 진료실로 부를 때 호명하지 않고 카페에서처럼 진동벨을 울려서 환자를 부른다는 것, 그리고 교정과, 치주과, 보철과 등의 진료과목이 적혀있지 않고 번호로 적혀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진료를 받으러 입장하는지 쉽게 알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누가 어떤 진료를 받는지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이런 점은 따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직업의 무대가 확장될 잠재력을 발견하게 된 일본에서의 경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없었던 과가 있었는데, 바로 '구강건강과'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예방치과'라는 과목으로 비슷한 진료를 하는 대학병원이 있지만 히로시마대학병원의 구강건강과는 입원환자의 구강위생관리를 한다는 것, 그리고 고령의 환자들을 케어하는데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치면 치위생학과 교수님들이 구강건강과에서 직접 환자들을 본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치과대학 교수님들의 경우에는 교단에도 서지만 대학병원에서 진료도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치위생의 경우에는 교수를 하면서 임상에서도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만나지 못한 교수님들은 임상과 교육을 병행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치위생학과 교수님들이 진료에 임하시기 때문에 구강건강과에서는 치과의사보다 치과위생사가 더 주도적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었다.
이런 신선한 경험들 때문에 히로시마대학병원에서는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었다. 그중 가장 세게 맞은 한 방은 치과에서 섭식연하장애에 대해 다룬다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배우고 임상에서 본 우리나라 치과치료는 치아의 수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리나라 치과에서 하는 치료는 충치가 생기면 그 부분을 제거하고 다른 재료로 채우는 치료나 치아가 빠진 자리를 임플란트나 틀니, 브리지와 같은 보철 등으로 대체하는 치료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방치과도 충치나 치아의 상실을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섭식연하장애라는 개념조차도 생소했다.
그런데 히로시마대학에서는 구강의 기능을 위해 필요한 구강 구조물들을 다시 짚어줬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입안에 들어온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데 치아가 맞부딪히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음식물을 치아의 씹는 면 위에 올려주는 역할을 혀와 볼의 근육이 한다. 그리고 잘게 부순 음식물을 목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혀가 담당하고 있다. 또 입술이 꽉 다물어져야 입 안에 음압이 생겨 음식물을 꿀꺽 삼킬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입 안 그리고 입 주위에 분포해있는 근육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나이가 듦에 따라 팔다리 근육의 힘이 점점 약해지듯, 구강 주위의 근육들도 힘을 잃어 밥을 먹기가 한층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일본의 치과위생사들이 이를 예방하고 개선하기 위한 운동법을 환자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또 이미 근력이 약해진 노인들에게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시키기 위한 씹고 삼키기 좋은 음식들을 알려주고, 영양사와 함께 이런 식단을 처방하는데 함께했다.
치과위생사는 구강건강지킴이, 구강건강증진 전문가라며 떵떵거렸는데, 이제까지 내가 했던 치과위생사로서의 업무는 구강이 아니라 치아건강지킴이, 치아건강증진 전문가였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동시에 그 빈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는 그런 치과위생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이미 갖춰진 일본과는 달리 한국 치과는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치아의 수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다고 느꼈다.
아니, 지금이야
일본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시야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막상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내 일상에 바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일본에 다녀오기 전과 동일하게 회의와 취재, 마감이 반복되는 일주일이 계속됐다. 그렇게 히로시마에서의 2주는 장식이 되어가는 건가 싶던 때였다.
내가 담당하던 파트에는 대한노년치의학회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른 학회에 비해 비교적 활동이 많지 않아 기사거리도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입인 내가 맡게 됐다.
그런데 그런 노년치의학회에서 치과계 각 신문사의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정부에서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1단계 : 노인 커뮤니티 케어)'에 치과에 관한 사항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시 복지부는 우리나라가 2026년에는 국민 5명 중 1명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대비해 노인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개선하는 ‘커뮤니티 케어’를 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한노년치의학회는 노인이 건강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구강건강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다.
만일 내가 히로시마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치과의사랑 치과위생사가 노인들이 사는 집에 가서 대체 무슨 진료를 하겠다는 거야? 그 집에 치과진료를 위한 시설이 아무것도 갖춰져있지 않을 텐데. 결국엔 환자가 집 밖으로 나와 치과로 직접 걸음 해야 하는 건 지금이나 정책에 포함된 이후나 마찬가지 아냐?'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히로시마에서 일본 치과위생사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보고 온 후였기 때문에 커뮤니티 케어 정책에 치과가 포함되었을 때 치과위생사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눈앞에 그려졌다.
치과치료는 진료실에서 받더라도, 구강의 기능이 완전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치과위생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히로시마에서의 2주로는 그 역할을 온전히 해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떠난 히로시마로의 연수, 그리고 취재 자리에서 알게 된 새로운 정책의 추진.
그저 우연히 알게 됐다며 넘어가기엔 너무 아까운, 나와 치과위생사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히로시마로의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