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냥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서
나에게 기자 생활은 우연, 그 자체였다.
학생기자를 해봤기 때문에 기사를 아예 처음 작성해보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읽어보면 이게 기사인지 일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접했다. 그런데 그런 실력을 가지고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가 다 읽는 신문에 기사를 쓰려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이미 덴탈아리랑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 선배들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했지만, 그냥 필사를 많이 해보면서 기사가 어떤 식으로 작성되는지 스스로 공부하라는 것이 다였다. 입사 후 첫 일주일 동안은 덴탈아리랑을 포함한 다양한 치과계 신문사의 기사와 그 외에도 조중동 등 일간지 기사를 필사하면서 어느 정도 기사의 흐름을 익혔다.
문제는 취재였다.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이 사람을 만나면 뭘 중점적으로 물어봐야 할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취재 전 주말에 다른 기자 선배들의 취재 자리에 따라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의 부탁은 거절당했었다. 대신 본격적으로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주말이 없어지니 아직 배정된 취재 자리가 없을 때라도 많이 주말을 즐기라는 조언을 해줬다.
의외인 부분도 있었다. 치과계 신문사이기 때문에 치과 관련 전공자들이 기자로 활동하고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신문방송학과 등 기자가 되기 위한 과목을 전공한 사람들이었고 치과 관련 전공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덴탈아리랑은 치과 전반의 사건들을 다루는 신문이었기 때문에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를 위한 페이지가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각 기자마다 담당하는 페이지가 구분되어 있었는데, 나는 치과위생사 출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치과위생사를 위한 페이지를 맡게 되었다.
딱 한 페이지이기는 하지만 큰 자리를 차지하는 기획기사 하나를 매주 써내야 했다. 그런데 치과위생사 출신이라고는 하나 그 경력이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과위생사들이 어떤 기사를 원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사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내가 치위생학과 학생일 때 개선되었으면 했던 내용을 기사화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스케일링 실습을 학생들끼리만 한다고 들었지만 내가 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스케일링 실습을 위해 환자를 모집했어야 했다. 집은 서울이고 학교는 대전에 있어,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평일에 데리고 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환자를 모집하려면 학교 주변에서 구해야 했다. 그렇지만 대전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이 아니라면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같은 학교의 다른 과 학생을 부르기에도 어려웠다. 대부분 그 시간에 전공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고나라 카페 혹은 다른 대학교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스케일링 실습을 위해 환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리게 됐다. 문제는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간혹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기곤 한다는 것이었다.
내 환자는 아니었지만 내가 올린 모집 공고를 통해 한 환자를 동기에게 연결해준 적이 있었는데,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다. 젊은 교수님과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교수님 방에 찾아가서 꿈이 치과위생사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스케일링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길 바란다고 했다. 어딘가 꺼림칙하고 이상했지만 실습하는 동안은 아무 사고 없이 지나가서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던 찰나, 같은 과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서 스툴(치과에서 진료자가 앉는 의자)을 가지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CCTV를 확인해보니 치과위생사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런데 학교 밖으로 나간 장면이 아무데서도 관찰되지 않아 혹시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4학년 선배들을 대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돼 모두 일시에 귀가하는 등 소동이 일어났었다.
이후에 교수님께서 다른 학교의 치위생(학)과 교수님들께 수소문해보니 다른 학교에서도 스케일링을 받으러 다니면서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후배에게도 물어보니 실습 환자로 오는 대가로 학생이 신던 흰 양말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전문지식을 배우기 위한 과정에서 변태적이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했고 이 일은 개선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기사로 다루기로 했다.
이 기사를 신문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자 여태껏 업로드했었던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많은 공감을 받으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편집국장님도 이번 기사 반응이 너무 좋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 기사를 계기로 나는 기자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고 같이 개선 방향을 모색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소속된 '치과위생사'가 내가 쓰는 글들로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길 바라며 기획 기사 작성 시 기사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나의 또 다른 타이틀인 '기자'에 진심을 다하게 됐다.
우연히 맡은 일이었지만 진심으로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다.
가끔은 꿈에서도 기획기사 거리를 찾고 취재를 다닐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