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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과위생사 도비 Oct 13. 2022

#1 나는 사실 꿈도 계획도 없었다(3)

쓸 일이 아직 없을 뿐, 쓸모가 없진 않았다.

'그냥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서

'공무원 준비를 해야 하나'

잘 다니던 치과를 그만두고 집에서 빈둥대던 내가 나의 시간낭비에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던 말이었다. 공무원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절대 싫다'라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내뱉었을 것이지만 지금의 나태함이 공무원이 되고 나면 용서가 될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공무원이 되기 위해 4년제 치위생학과를 졸업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내 인생에 대한 희망이 섞여있기도 했다. 


치위생학과는 3년제와 4년제가 있는데 치과 진료실에서 근무를 하는 데에는 둘 다 별 차이가 없다. 졸업 후 치과위생사 국가시험을 통과해 면허만 잘 취득하면 일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3년제가 유리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같은 나이이지만 1년 먼저 졸업해서 경력도 먼저 쌓고 돈도 먼저 벌 수 있으니까.


대학교와 학과를 선택할 때 이미 이런 사항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혹시 모를 만일'을 대비해 4년제에 진학하겠다고 우겼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3년제 치위생과에 진학하면 내 인생에 이제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우겨서 선택한 4년제의 길이었는데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이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말이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채로 2개월 정도 시간을 흘려보내며 봄을 기다리던 차였다. 대학교 지도교수님께 갑자기 연락이 왔다. 아마 졸업 후 1년이 지난 때에 지도 학생들의 취업상황에는 변동이 없는지 확인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나는 머쓱하게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둔 상태라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조건이 꽤 괜찮았던 치과를 그만둔 것에 대해 의아해하시면서도 마침 잘 됐다고 하셨다. 

그 해에도 7월에 2주 동안 일본에 다녀오는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내가 재학 중일 때 참여했던 오사카로의 연수와 달리 이번에는 히로시마로 가고 히로시마대학의 치위생학과 교수님들께 강의도 듣고 히로시마대학병원 내의 치과에서 실습도 있으니 참여해보라는 이야기였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보다 어린 후배들과 함께 연수를 같이 가면 나는 어색하고 후배들은 불편해하지 않을까?'

'이제는 졸업을 했으니 연수에 필요한 돈은 스스로 준비해야 할 텐데 여윳돈이 없는데 어떡하지'

'7월에 가는 거면 그전에 다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신규 직원에게 2주씩이나 휴가를 주는 곳이 있을까?'

'갔다 오고 나면 나에게 뭐가 남을까? 그냥 시간낭비, 돈 낭비가 되지는 않을까?'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낼 바에 일본이라도 잠시 다녀오면 그래도 지금만큼 죄책감이 들지는 않겠지 하며 교수님께 가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가기 전까지는 뭐 하고 있을 거니?'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무언가 해서 돈을 벌긴 해야 하는데 2주씩이나 갔다 오는 것을 허락해줄 취업처가 있을지 모르겠어서 아직 찾아보는 중이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럼 혹시 덴탈아리랑이라고 치과계 신문사가 있는데 거기서 기자로 일해볼래?'


나는 2주 동안 다녀오는 것을 양해해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말씀드렸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원래도 만들어놓은 양식이 있으니까 괜찮았지만 치과위생사에게 기자가 되기 위한 포트폴리오 제출을 요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나에게는 대학 재학 중에 대한치과위생사협회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었고 많지는 않았지만 게재되었던 기사가 있어서 그걸 포트폴리오에 담아 제출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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