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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과위생사 이주화 Oct 05. 2022

#1 나는 사실 꿈도 계획도 없었다. (2)

나쁘지 않은 건 만족은 아니었다.

'그냥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을 졸업한 직후 취직했던 치과는 꽤 괜찮은 치과였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치과의원이지만 전문의 3인 원장님들로 구성돼 있고 여러 고연차의 치과위생사 선배님들이 근무 중이어서 양질의 진료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임플란트・교정・일반진료 등 대부분의 진료과목을 다루기 때문에 추후 이직하게 될 경우, 진료해본 경력을 인정받아 급여 협상에 유리해지는 등 얻는 메리트가 많은 곳이었다.


특히 마음이 잘 통하는 동갑의 치과위생사 친구가 있어 의지할 곳이 있었음은 물론, 고연차의 치과위생사 선배님들이 막내로 입사한 나를 동생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드물었다. 대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유 없이 인격비하 발언을 하는 등 일종의 '태움'을 겪고 있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매일같이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도 많았다. 감사하게도 나의 경우에는 예쁨과 칭찬을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그 좋은 치과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 1년 정도 근무하며 이 치과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이유가 복합되어 있었지만 이제와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이 직업을 가지고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일한 고연차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은 진료에 있어서 배울 점이 많았고, 내가 식은땀을 흘려가며 낑낑대고 있을 때 너무나도 안정된 자세로 1분도 안 돼서 해결해주시는 그 선생님들은 참 멋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멋있는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불가능한 치과위생사?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치과위생사가 치과에서 주로 하는 일은 스케일링, 그리고 진료 보조, 구강보건교육 등이 있다. 구강보건교육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는 빠르고 정교한 손이 필요한 일이다. 물론 타고나기를 손이 야무진 사람은 저연차 때부터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손이 야무진 사람이 더 빨리 승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승진자를 정할 때 누가 더 이 회사에 먼저 입사했는지, 이 일을 오래 했는지를 함께 고려하겠지만, 그것보다 누가 더 실적이 좋은지 즉 업무 능력을 주로 평가한다. 그렇지만 치과위생사 가운데에서 상급자를 결정할 때에는 그 사람이 고연차인지 아닌지를 먼저 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4-5년 차 이상 이 일을 하면 일정 수준의 업무 스킬을 얻게 되기 때문에 저연차가 고연차를 제치고 상급자가 됨으로써 생길 불필요한 분란을 막기 위함이지 않을까. (물론 많은 경험과 경력을 통해 쌓은 지혜와 노하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업무 스킬이 좋아도, 결국에는 먼저 태어나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승자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런 회의감에 잠겨 고연차 선생님들을 바라보니 그 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은근한 기싸움.

원장님 입장에서는 직원들 간 업무능력이 대동소이하지만, 연차가 올라갈수록 급여도 높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고연차 채용을 꺼려할 것이다. 고용주인 원장님의 이런 마음을 모를 리 없는 고연차 선생님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보다 연차가 낮은 선생님들과 업무 능력에서의 차이를 원장님께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들기 위해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제일 간단한 방법은 저연차에게 자신의 스킬을 전수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후배들이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업무 능력의 차이를 유지하며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어른과 거리가 있었고, 고연차 치과위생사가 되어서도 후배들에게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을 전해주면서 '치과위생사'라는 직업군의 전문성이 강화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우습게도 퇴사를 하고 나서도 나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알지 못해 귀한 시간들을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아마 '참 대책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그랬지만, 우선 치과 밖으로 나와야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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