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촨, 청두
홍콩의 핫플 '란콰이퐁'이 하나의 브랜드로 술집을 모아놓은 '란콰이퐁 in Mainland'가 있는 곳.
한국의 '젠틀몬스터'과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 'Victoria Secret'이 플레그쉽을 오픈한 곳.
파인 다이닝과 티 하우스가 즐비한 도시. 12시가 넘어도 좀처럼 가로등이 꺼질 줄 모르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Mall이 위치한 도시.
얼핏 들어보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도시에 대한 묘사 내용 같다. 하지만, 이 내용들은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중국 서남지역을 리드하는 역사 고도(古都)의 이야기다.
청두는 크지 않지만 신비한 도시이다.
흥을 알고 즐길 줄 아는 한국 사람이 청두를 경험하면 이내 청두의 팬이 되고 만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중국에서도 가장 '안일'하다고 평가되는 아름다운 쓰촨, 청두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중국 쓰촨 사람들을 두 글자로 표현하면? '안일‘
내가 너무 안일했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하고 나서 후회를 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안일하다'라는 말은 '무엇을 쉽고 편안하게 생각하여 관심을 적게 두는 태도가 있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또, '무사안일한 태도'라는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아 사고가 났을 때 사용하는 부정적인 말도 존재한다.
그런데 중국에 참 '안일한' 라이프스타일로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쓰촨성 그리고 특히 쓰촨성의 성도(Capital)인 청두라는 도시의 사람들이 그렇다. '안일'을 그들의 대명사로 보는 견해는 사실 메인랜드에서는 굉장히 보편적인 관점이다.
재밌는 사실이지만, 국어사전에도 '안일하다'라는 말의 첫 번째 뜻은 '편안하고 한가롭다. 또는 편안함만을 누리려는 태도가 있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일하다'의 뜻은 단어가 가진 일부의 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편안하고 한가로움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安逸舒适'이라는 말은 이제 중국에서 힐링 또는 소확행이라는 뜻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육체와 정신의 긴장이 이완되고,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그 상태가 바로 '안일'인 것이다.
Episode.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안일 공간'
나는 2012년부터 쓰촨성 청두시를 오가며 사업개발을 했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1년 정도는 청두의 통즈린이라는 곳에 상주했었다. 그때 나는 한국의 브랜딩 디자이너분들과 쓰촨 현지의 문화유산을 결합해 로컬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해외 브랜드를 제로투원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지금 생각해도 참 근사한 일이었다. 이 작업을 통해 줄곧 관심 있었던 '브랜딩'이라는 영역의 실무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고, 쓰촨 현지의 문화유산과 풍물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네이밍을 '안일 공간(安逸空间)'으로 정했다. 네이밍의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중국인은 쓰촨 사람을 보면서 '안일'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한때 바이두 빅데이터 분석에서 선정한 중국 국내여행 목적지 1위 지역은 '청두'에 간 외지인들은, 청두의 느린 템포와 워라밸을 중시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好安逸啊(정말 안일하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외지인들도 그 말을 의식적으로 내뱉으며 현지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해 간다.
실제로 '안일'이라는 단어는 쓰촨 방언(사투리)의 대표적인 습관어이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편안하거나 만족스러운 상태'를 지칭한다. '안일'이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안성맞춤으로 맞는 표현이다.
1) 쓰촨 지방의 대표적인 '화합'의 정신을 보여주는 음식문화는 '훠궈(쓰촨식 샤브샤브)'이다. 쓰촨 사람들은 샤브샤브를 먹을 때 한입 가득 음식을 넣고, "너무 안일하다"라고 말한다. 그건 훠궈가 너무 맛있고 맛이 좋다는 뜻이다.
2) 하는 일은 없는 데 돈은 많이 버는 직업이 있다면? 쓰촨 사람은 '너무 안일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는 부럽다는 뜻이 된다.
3) 멋진 경치나 풍경을 보고 '안일해'라고 말하면 예쁘고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쓰촨의 사투리를 이렇듯 '안일하다'라는 말로 여러 가지 상황을 묘사한다. 대게는 멋지다, 좋다, 편하다, 만족스럽다 등의 뜻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 보면 '거시기하다'라는 충청도 사투리와 비슷하기도 하다.
젊어서는 쓰촨에 가지 말고, 늙어서는 쓰촨을 떠나지 말라.
내가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공항에 처음 갔을 때, 현지 파트너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젊은 나이에 청두에 왔으니 '왔으면 떠나기 싫을 거다'라고 단정 짓는 말도 선물했다. 사실 젊어서 쓰촨에 가지 말고, 늙어서 쓰촨을 떠나지 말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쓰인다.
첫째, 쓰촨을 들어가고 나가는 길이 엄청나게 험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젊은 외지인이 쓰촨으로 들어가려면 젊음을 허비하게 되고, 늙은 노인은 쓰촨을 나가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위함하다는 뜻이다. 유명한 시인인 '이백'은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시조에도 쓰촨을 드나드는 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큼 험난하다고 표현했다. 쓰촨지방의 독특한 지형은 잠시 후 소개할 쓰촨과 청두 지방 사람들이 안일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환경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둘째, 쓰촨 지역의 라이프 스타일이 매우 '안일'함을 표현한다. 쓰촨은 산도 좋고 물도 좋으며,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미녀도 넘쳐난다. 특히 젊은 시절에 쓰촨에서 생활을 하면, 너무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생활 때문에 큰 뜻을 품을 기회를 잃게 된다. 반대로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쓰촨에 있으면 생활이 편하고 만족스러워 떠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내가 가본 중국의 도시 중에서 쓰촨의 청두가 가장 편안하고 떠나기 싫었던 여행 목적지였다. (물론 상주하는 건 좀 다르다. 나는 서울이 가장 좋다^^)
그럼 쓰촨 사람들은 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쓰촨의 역사, 환경, 문화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안일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삼국지의 유비가 '촉한(蜀汉)'의 도읍을 정한 곳이 쓰촨의 청두이다. 앞서 '촉도난'이라는 이백의 시조에서 소개했듯, 청두 인근은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난공불락'의 형국이다. 천혜의 요새 형태인 것이다. 때문에 이 지역의 외부의 침입을 많이 피할 수 있었다. 외부의 칩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태평하게 살 수 있었다는 말과 같다. 두려움이 없으니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환경적으로, 쓰촨 지역은 중국의 서남지역의 분지에 위치해있다. 여름엔 아주 덥지만, 겨울이 그리 춥지 않다. 때문에 사계절 아주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 또한, 청두 지역을 '천부지국(天府之国 ; 하늘이 하사한 땅)'이라고 부를 정도로 풍부한 먹을거리와 물자가 나는 곳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항상 여유롭다. 또, 물이 좋아 여자들의 피부가 좋고 과거부터 미인이 많았다. 게다가 중국의 유명한 뮤직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쓰촨 청두 출신이다. 목청까지 좋다.
풍부한 물산과 느긋한 라이프 스타일 덕분이었을까? 청두는 중국에서 소문난 '미식의 고장'이며, 많은 문화유산과 예술이 발달한 지역이다. 청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미식의 도시'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청두가 최초로 등재되었다. 국내에서는 '전주'가 미식의 도시이다). 그리고 청두에서는 마작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은 도박을 금지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조금 줄어들었으나, 마작을 안 하면 청두에서는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이다.
아내를 우선시하는 젠틀맨들, 쓰촨 남자의 '耙耳朵'
'파얼뚸'라는 말을 직역하면, '귀를 써레질한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쓰촨 말로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자를 뜻한다. 위 이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쓰촨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잡혀 산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쓰촨 남자의 성향도 반영되어 있지만, 일단 아내에게 져주는 미덕이 있다. 쓰촨에서는 파얼뚸라는 말을 들으면 남자에겐 큰 칭찬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쓰촨 청두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환경, 따듯한 기후 그리고 풍부한 물자 만들어준 자연의 심성을 지키고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편안하다. 사실 시장경제가 발전하며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잃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청두 사람들을 보면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를 더 높이 생각하며, 노래를 잘 부르고 즐길 줄 안다. 개인적인 견해로 한민족과 가장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는 지역이 중국의 쓰촨, 청두 지역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작성하는 이순간, 현지에서 수시로 즐기던 '딴딴미엔(担担面;탄탄면)'과 '촨촨샹(串串香 ; 훠궈 국물에 각종 꼬치를 익혀 먹는)'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