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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Mar 20. 2022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리뷰

아트인사이트 이남기 에디터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대 그리스어로 ‘파종’을 의미하는 단어로, 조국을 떠나 살아가는 이민 공동체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은 자신의 조국(조상의 나라)과 고국(태어난 나라), 모국(국민으로서 속한 나라)의 일치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디아스포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디아스포라는 가족의 곁을 떠나, 혹은 국가 정체성을 부여받은 장소에서 벗어나 이방인으로의 삶을 살아가며, 애초에 그렇게 태어날 수도 있다. 


국가 정체성이란 개인의 자아 형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에, 디아스포라들은 필연적인 혼란함을 겪기 마련이다. 이것은 인물의 입체감을 더하는 요소로도 활용되기에, 많은 창작물에서는 디아스포라의 지난한 삶을 그려내어 부조리를 넘어서는 화합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예컨대 이스라엘을 떠나 우크라이나에서 게토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유태인 민족을 그린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있다. 애플 TV 플러스에서 선보일 예정인 드라마 <파친코> 또한, 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미국에까지 뿌리를 내린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공통점은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다루어 결국에는 인류 집단의 포용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여 교수 생활을 보낸 서경식 작가 또한 디아스포라다. 그가 집필한 소설 <디아스포라 기행>(돌베개, 2006)에는 일종의 경계인으로 살아갔던 그의 자전적인 고뇌가 담겨있다.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향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을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기행> 中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위치를 곱씹으며 선택을 망설였을 것이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선사하는 든든한 소속감을 꿈꿀 수조차 없었던 그는, 어떻게든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를 고뇌했다. 그렇게 겪어왔던 인생의 굴곡을 글로 녹여낸 그의 저서, <디아스포라 기행>은 소수자의 자각이자 소시민의 반성으로도 읽힌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또한 같은 이름의 <디아스포라 기행>이다. 이는 극단 서울괴담과 성북문화재단이 공동제작한 연극이며, 유영봉 연출이 구성과 연출을 맡았다. 작년 여름에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린 이후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올해 3월에 천장산우화극장에서 본 공연을 올렸다.  





나는 원작 소설 및 작가의 일생에 큰 감명을 받았던 터라, 이를 어떻게 무대에 옮겼을지 궁금하여 연극을 관람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연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작은 블랙박스형 극장에 단출한 무대와 객석을 설치한 것이 보였다. 무대 요소를 드러내어 보여주기보다는 배우의 발화와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어 최대한 단출하게 연출하려는 것이 예상되었다. 조명의 조도 또한 낮아서 극의 분위기를 한층 차분히 만들어주었다. 곧이어 수어 통역사와 함께 등장한 배우는 연극의 ‘기행’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에게 이륙을 안내하는 것처럼 극을 시작했다. 


가장 좋았던 연출은 수어 통역사들이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이었다. 수어 통역사들의 역할이 언어의 통역 및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무대 속의 인물로 동화되어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원작 도서에 쓰인 많은 이야기를 한 편의 연극으로 압축하기 위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나열했는데, 이때 쓰인 많은 소도구와 퍼펫 등의 연출 요소가 상당히 화려했다. 여기에 고정 및 이동식 카메라를 사용하여 객석과 무대를 실시간으로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영상 연출은 흥미로웠다. 소극장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현대적 연출법을 거의 모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제공: 서울괴담, 촬영: 윤헌태  



이렇듯 미학적인 연출법과 섬세한 오브제를 활용하여 훌륭한 미장센을 구성한 것은 볼만했으나,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극본(원작 도서)이 가지는 힘은 약해져서 아쉬웠다. 단순히 ‘볼만한 공연’ 이상의 무언가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선, 원작을 무대화하는 단계에서 책과 비슷한 병렬 구조를 채택한 것에 의문이 든다. 책이 아닌 무대에서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다소 밋밋한 낭독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관망하는 것이 지루해질 때쯤, 무대미술의 힘으로 극의 밀도가 높아지니 오히려 대사의 매력은 줄어들고 배우의 연기도 납작하게 보였다. 


또한, 극 중에서 배우들이 언어를 힘주어 던지듯이 말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강조하는 발화법은 시의성을 지닌 메시지가 서브 텍스트로 깔린 대사에서 힘을 얻는다. 동시대의 관객을 일깨우는 연속적인 단어를 제공하고, 그 발화법을 계속 유지해야지 관객이 그나마 익숙해진다. 예컨대 구자혜 연출의 작품이 그렇다. 


이 작품에서는 문어체일 때는 강조하는 발화를, 구어체일 때는 일상적인 발화를 택했다. 게다가 이 위에 다양한 무대 연출을 또 얹었다. 영상 연출 또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서 관객으로서 집중이 흐트러졌고, 전체적인 구성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연극의 핵심은 언어인데, 언어 위에 얹은 장식이 많아서 소화하기 어려웠다. 이 희곡의 원작은 책이다. 책의 글은 그것만으로도 완결성을 지닌다. 작가는 독자에게 읽히는 글이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끔 다듬어놓았을 거다. 이러한 글을 무대에 옮기려면, 대사 이외의 연극적 요소들에는 힘을 빼서 활자의 무대화에 방점을 찍었어야 할 것이다.  



제공: 서울괴담, 촬영: 윤헌태



그래서인지 90분 동안 연극을 관람한 이후에, 머릿속에 확실히 정리되어 남은 것이 부족했다. 책을 다시 읽어봄으로써 감상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은 기성 연극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갈무리하여 관객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세상에는 조명받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외면받고 버림받으며, 경계에서 벗어나 디아스포라가 되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개인과 개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집단. 이것이 인류의 자의적인 선택에 의한 결과였다면, 차별과 분열을 일으킨 이들이 책임을 지고 감내하는 것이 옳겠으나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디아스포라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연극 언어로서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퍼뜨릴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한다.


* 원문 링크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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