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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Oct 19. 2023

괴물의 탄생 - 연극 '괴물B' 리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지원사업'에 선정된 극단 코끼리만보의 연극 [괴물B]가 2021년 알과핵 소극장에서의 초연에 이어 2년 만에,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무대에 재연으로 찾아왔다. [괴물B]는 한현주 작가와 손원정 연출의 합작으로, 2019년 한문위 창작산실의 연극 부문 대본 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기도 하다.  



특별한 몸을 가진 B는 자신의 몸이 시작된 어느 폐공장에 짐을 푼다. 배달 일을 하는 연아는 일이 없을 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B와 폐공장을 공유한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연아에게 B는 사람 찾는 일을 부탁한다. B가 찾는 인물은 세 명, 그녀는 수고비를 받고 그중 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를 찾는 과정에서 연아는 B가 세 명의 인물을 절실하게 찾는 이유와 어릴 적 사라진 아빠의 실체에 서서히 다가간다.


- 시놉시스



연극 [괴물B]에 등장하는 괴물 'B'는 노동 현장에서 훼손된 몸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종(種)이다. 이는 상상력의 산물로, 산업재해로 인해 소실된 누군가의 각 신체 부분이 모여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리하여 'B'는 기계에 끼어 잘려나간 누군가의 팔과 다리, 공장 화재로 타버린 누군가의 가슴, 또 다른 누군가의 망가진 폐와 간 등으로 이루어져 육신의 파편들로 구성된 모습을 보인다. 
  


괴물 'B'는 마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과도 비슷한 모습인데, 이는 ‘B’가 산업이라는 인류의 집단적 욕망에서 뒤처진 이들의 표상을 상징하는 캐릭터임을 비유하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왜 이 괴물을 ‘B’로 명명하는 것일까? 


실제 극 중에서도 주인공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실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닌 괴물을 창조한 박사의 이름이었음을 말하는데, 이는 ‘괴물’이라 특정할 수 있는 존재들이 어디에서나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간 산업 현장에서 스러진 누군가를 특정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이 아닌, 그저 괴물 ‘B’와 같은 포괄적 명칭을 사용하여 뭉뚱그려 불러왔다는 뜻이다. 과연 사회가 그간 산업재해로부터 망가지고 소외된 존재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괴물 ‘B’는 신체의 각 파편이 담고 있는 사고 순간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현재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다. 몸의 부위마다 주인이 다르기에, 그들이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B’ 또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B'는 자신의 몸이 시작된 어느 폐공장에서 만난, 배달 일을 하는 '연아'에게 세 명의 사람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을 찾는 과정에서 연아는 'B'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세상에 얼마나 많은 'B'가 존재하는지, 어릴 적 사라진 자신의 아빠 또한 그들 'B'의 삶과 어쩌면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B'가 애타게 그들을 찾는 이유가 '죽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된다.

 


이번 공연의 특징은 움직임에 강점을 보이는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것이다. 괴물 B 역 이상홍 배우, B-1 역 마임이스트 이두성, B-2 역 무용가 류정문 등. 몸의 움직임과 이미지에 집중하여, 산업재해로 훼손된 몸을 무대 위에 형상화하는 데 공을 들인 것이 보였다.
 

한현주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한 것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태안발전소 청년 노동자의 사고 등이었다고 한다. 이후 2023년 현재도 곳곳에서 산업재해로 스러져 가는 노동자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B를 이루는 노동하는 육신과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와 너무나도 가까이 있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B는 묻는다.  



"내 고통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겁니까?“


"무엇 때문에 나 같은 괴물이 탄생해야 합니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괴물B]의 무대화는 산재의 역사와 기억을 몸으로 수용하고, 사고하고, 질문하면서 산업재해 노동자의 고통과 침묵 당해온 그들의 목소리를 극장으로 불러내는 작업이었을 테다.


무대 위에 기다랗게 놓인 컨베이어 벨트는 극의 마지막에서 산업재해 노동자를 이송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들 영혼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느릿한 몸짓으로, 다양한 복장을 한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걷고 또 걸어가며 가는 길마다 생의 짐을 내려놓는다.

  

 

산업 노동자들의 공허한 몸짓과 목소리가 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애초에 이러한 연극이 만들어졌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고통을 기록하는 일, 그 기록을 목격하는 일은 늘 태초의 사건을 부정하고 싶게 만든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와 같은 말들과 함께.


괴물의 탄생에 우리가 일조한 것은 무얼까.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어쩌면 이 공연은 그러한 고민을 만들어내기 위해 탄생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사진 촬영 김솔,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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