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진정한 ‘나’ 찾기
희극 배우의 대명사로 불리는 찰리 채플린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는 경제 대공황을 배경으로 인간 소외와 산업 경제 구조 속에서 기계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성 상실 문제를 채플린 특유의 따뜻한 유머로 녹여낸 명작으로 꼽힌다.
1936년 개봉한 이 작품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진한 여운에 눈물을 훔치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올해로 개봉한 지 9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각박한 사회상과 인간성 상실 문제는 더욱 공고하게 굳어진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크고 작은 집단과의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을 채우는 톱니바퀴로 전락하거나 강제로 갈리면서 기계 속에 짜 맞추어지다가 결국 수명이 다하면 버려지는 부속품과 같은 신세로 살아간다.
물론 잘 만들어진 시계는 수백 개의 정교한 부품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때 정확한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시계 속 부품은 스스로 틀린 시간을 바로 잡지 못하며, 수동적인 움직임만을 반복하다가 수명이 다하면 결국 교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아비는 너희가 “모던 타임스”의 찰리와 같은 삶(특히 젊은 시절)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적어도 조직이나 사회에 매몰되어 단순히 상사의 지시나 정해진 매뉴얼만 추종하는 삶은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이것이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적인 보통의 삶일지라도 적어도 ‘내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나“여야 하며, 필요 없어지거나 고장 났다고 폐기되는 부품이 아닌 ‘독립된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바로 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가야만 한다. 진정한 ‘나’의 정체성, 즉 ‘나’다움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해부하고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을 수 있으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깨어 있을 때 발현된다. 따라서 우선은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루고 각자 삶의 방식이든 학교나 직장 생활이든 ‘나’만의 색깔을 찾아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대하는 나만의 시선과 태도가 완성되며, 직장이나 학교와 같은 공동체는 물론 가족, 친구 사이와 같은 사적 영역에서도 독립된 주체로서 당당할 수 있다. 하다못해 카페에서 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확고한 주관과 자유의지가 있어야만 자신이 먹고 싶은 음료를 먹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진정한 ‘나’를 찾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어서 각자의 성격, 지식과 사고력의 깊이 그리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친 후에야 가능하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이 쌓일수록 심오해지기에 결국에는 그 어떤 조직이나 지위에 있더라도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례로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평소 업무에 주체적으로 임하고 자신의 소신과 주관이 뚜렷한 직원이 좋은 성과를 낸다. 흔히 말하는 파래토 법칙처럼 어느 조직에나 이런 인재 20%가 전체 성과의 80%를 달성하기에 부속품으로 만족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80%를 넘겨도 꾸준히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직원들은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만큼 개성도 강하고 아이디어가 독창적이기 때문에 곁에서 잘 이끌어 주면 핵심 인재로 쉽게 상장한다.
조지 바살라(George Basalla)는 『기술의 진화』에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는 3가지 조건은 하부기술의 다양성, 이들로부터의 선택 그리고 새로움의 가미이며, 이것이 진화의 핵심 프로세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는 조직 경영이나 거창한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모든 분야에 유효한 이론으로 3가지 조건 모두가 그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역량은 물론 이것들이 잘 표출되고 융합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는 상사나 매뉴얼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만이 충족할 수 있다. 직장뿐만 아니라 연구나 창작 활동도 마찬가지로 스승의 가르침이나 사조만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평생 독보적인 자신만의 성과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거나 종속됨이 없이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자유의지’라는 말이 갖는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함의를 떠나서 ‘나의 의지로, 나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말은 다분히 저항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위계적인 조직이나 사회 질서 속에서는 더욱 실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설익은 사람의 자유의지는 방종(放縱)과 독선이 되고, 그릇된 자의 그것은 온 사회에 해악(害惡)을 끼치기에 인류의 지성은 도덕과 사상, 종교와 법률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약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왔다. 따라서 자유의지에는 반드시 책임이라는 대가가 따르기에 정해진 틀과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내에서만 실현이 가능하며, 심지어는 기회가 주어져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여러 제약 속에서도 자유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은 인격이나 도덕성 또는 자기 분야에서의 실력과 영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일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작은 조직의 리더부터 역사를 전환시킨 위대한 인물에 이르기까지 결국 집단과 시대를 주도적으로 경영한 것은 거의 그런 사람들이었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주체적이고 독보적인 의지(또는 철학, 지식, 신념 등)를 가졌으며, 시대를 뛰어넘는 창의력 그리고 가슴 따뜻한 인간애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모든 사회에서 처음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나 에디슨과 같이 시대를 앞선 인물들처럼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하고 사람의 비웃음을 사거나 괴팍하고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도덕적이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곧 모두가 너희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며, 곧 이 세상의 변방이나 단순 부속품이 아닌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모던 타임스“의 마지막 장면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뒤로한 채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찰리와 소녀의 뒷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앞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자신만의 자유의지로 떠나는 여정인만큼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듯 너희가 앞으로 나아갈 여정 또한 희망으로 가득하길 바라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