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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푼젤 Sep 04. 2022

미국 출장이 내게 남긴 것

대환장 해외출장 story - 4 -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나흘이 흘러갔다. 업무를 하는 내내 늘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식사시간에 하는 가벼운 농담이야 못 알아들어도 헤헤 웃으며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일은 다르지 않은가?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클라이언트의 답변을 오인하여 그릇된 결과물을 낸다면, 미국 출장이 오고 싶어 약간의(?) 거짓말을 한 귀여운 사기꾼이 아닌 '진짜 사기꾼'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숫자는 만국 공통어니까! 게다가 회사 분들은 따뜻하셨고, 함께 간 회계사님 두 분 모두 영어에 능통하셨던지라 업무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 요청은 무조건 이메일로 했고, 답변 역시 반드시 이메일로 줄 것을 요청드렸다. 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재차 물었고, 구두 회의 때는 회의 내용 전체를 녹음했다. 민망함은 잠깐이지만, 잘못된 보고서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 매일 밤 호텔에 돌아가 녹음해 온 회의 내용을 다시 한번 들었고, 메일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도착한 첫 날을 포함하여 매일 필드에서 야근을 했다. 가뜩이나 시차 적응을 못해 피곤한 상태였지만, 기한 내에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선 별 수 없었다. 사무실에만 거의 갇혀 있다 보니 가끔 여기가 여의도인지, 천안 어드메 공장 한 켠의 사무실인지, 진짜 실리콘밸리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야근하는 내 손엔 '인앤아웃 버거'가 들려있어 행복했다. 바쁜 와중에 시내(?)에 나가 브런치도 먹고, 회사 분들이 안내해주시는 맛집에서 행복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엔 이렇게 브런치도 먹을 수 있어 24살의 나는 꽤 행복했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셀카는 못 잃어요... 페이스북 업데이트해야 하니까요...


24살의 2년 차 회계사였던 나는 정말 매사에 발랄했구나...


공식적인 필드 일정이 끝난 후엔 드디어 이틀 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 덕에 편하고 자유롭게 샌프란시스코 관광을 했다. 케이블카도 타고, 세상에서 가장 구불구불한 길(?)도 가고, 그 유명한 금문교도 건너고, 예쁜 소살리토를 마음껏 거닐었다. 이튿날 저녁엔 선생님들과 피어 39에 가서 던저니스 크랩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 새벽녘까지 밤새도록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다.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다음날 모두 늦잠을 자 하마터면 비행기를 타지 못할 뻔했다. 


사실 나는 여태껏 꽤나 많은 여행을 했다. 10번 넘게 유럽을 다녀왔고, 아시아나 미국, 호주뿐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도 다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짧았던 이 이틀의 여행(?)은 나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 한 번도 샌프란시스코를 가지 못했는데, 그때 걸었던 모든 길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 짧은 이틀을 위해 하얗게 새워냈던 수많은 밤들 덕분일까. 숨 막히도록 바빴던 시즌 중의 그 이틀은 정말이지 꿈처럼 짧고 달콤했다. 비행기에서의 그 고단한 시간들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출장에 돌아온 후에는 다시금 전쟁 같은 시즌 속으로 뛰어들었다. 에너지드링크 냄새가 자욱한 사무실에서 매일 밤 수명을 갈아 넣었다. 그래도 문득문득 소살리토를, 샌프란시스코의 바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 나는 주 5일 20분 수업의 전화영어를 신청했다. 물론 그 결과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예상하듯, 다소 뻔하다. 한두 달 간은 잠을 줄여가며 일찍 일어나 열심히 전화영어를 했지만, 달이 갈수록 전화를 받지 않는 횟수가 늘어났고, 결국 전화영어 수업을 해지하였다. '직장인이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역시 너무 어려워'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직장에 다니면서 자기 계발, 즐거운 취미생활이나 운동도 아닌, 하기 싫은 영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요새 뒤늦게 집 근처의 월스트리트 잉글리시 센터에 일주일에 1번 정도 나가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더 어릴 때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어떤 직업이건 영어실력이 좋으면, 선택의 갈림길에서 손쉽게 열 수 있는 문이 몇 개는 더 생긴다.  


만약 24살의 그때로 돌아가 다시 전화를 받는다면? 출장 직후에도, 지금도 내 대답은 똑같다. 또 기꺼이 나는 대담한(?) 사기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사기꾼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영어 학원에 다닌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회계사들(KI) 중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다른 직종에 비해 굉장히 드물고 귀한 편이죠.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숫자를 좋아해서 회계사가 되는 건지, 숫자를 다루다 보니 영어의 필요성을 간과하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이 회계사에게 '영어'는 큰 경쟁력이 됩니다. 물론 영어를 못해도 좋은 회계사는 될 수 있지만, 영어를 잘하는 회계사에게는 늘 더 많은 선택지가 놓여요. 이직도 잘합니다. 연봉이 올라요... 이 글을 읽으시는 예비 회계사님들, 사회초년생분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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