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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Aug 30. 2023

심장이 너무도 컸던 남자, 오베

프레드릭 베크만 <오베라는 남자> 서평

[스포주의]

“좀 느긋하게 살면 좋지 않아요?”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보낸 사람, 그들이 오베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 (중략) ...

“여유를 좀 가지세요.”
그들은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컴퓨터로 일을 하고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길 거부하는, 건방이나 떨고 앉아 있는 수많은 서른한 살짜리들이. 아무도 트레일러를 후진시킬 줄 모르는 이 사회 전체가. 그러더니 자기한테 더 이상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스스로를 '젊다'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머쓱하지만, 그렇다고 또 '늙었다'라고 말하면 부모님께 등짝을 맞을 것 같은 나이가 된 지금. 가끔 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가 버겁게 느껴지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신용카드와 컴퓨터를 믿지 못하는 오베가, 다짜고짜 소리부터 빽 질러버리는 오베가 짜증 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는 그저 평생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인데, 어느 날 눈치 없이 자리 차지나 하고 앉아있는 꼰대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이 책은 로맨스소설이기 이전에 '꼰대 이해서'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베에게서 문득문득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가부장적이라 비난받는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냥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맞춰 살았던 것뿐일 테니. 토요일에도 일하는 것에 불만을 품어본 적 없고, 한 직장에 평생을 바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세대. 취미나 자기 계발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삶. 은퇴를 한 후에는 삼식이라 조롱받는 아버지들. 헌신해야 할 가족과 충성해야 할 직장, 수리해야 할 집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던 오베. 소냐가 떠나고 직장마저 잃어버린 그에게는 집과 사브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오베는 그녀를 만나기 전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질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물어봤다면, 그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고 대답했으리라.


잔인한 세상은 오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다. 아직 어렸던 오베에게선 다정한 엄마와 존경스러운 아빠를,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젊은 오베에게선 좋아하는 일을 빼앗았다. 이웃의 아픔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오베에게선 모든 것을 바쳐 손수 지었던 집을, 행복의 절정에서 뒤돌아 눈물짓던 오베에게선 목숨만큼 사랑하는 아내의 두 다리와 뱃속의 아이를 빼앗아버렸다. 동네의 유일한 친구는 치매에 걸렸고, 쇠약해진 소냐는 떠나버렸다. 그리고 결국 그는 혼자 남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오베의 차갑고 날카로운 성격은 어쩌면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것 혹은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기면 여지없이 그것을 잃고 말았으니. 그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두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스스로 벽을 세우고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베는 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음에도 아이를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고, 가정폭력을 당하던 여자와 지미를 구해내었고, 이웃들을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정찰을 했다. 선로에 떨어진 이를 건져내고, 멍청한 이웃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어디에서나 고양이를 곁에 두었다. 그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늘 마음을 내어주었다. 왜냐면 그는 '심장이 너무도 큰' 병을 앓고 있었기에.


만약 내가 오베를 학교나 직장에서 만났다면 친해질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과 섞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향적 성격에 틀에 박힌 단조로운 일상을 추구하는 사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기계든 사람이든 늘 제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 괴팍하고 불친절하고, 의심까지 많은 고집불통 꼰대 오베. 주목받는 것을 즐기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언제나 정신없고 계획이나 정리는 개나 줘버린 나를 오베는 아마 싫어했겠지..?


그는 아버지가 입던 갈색 정장이 조금 꽉 끼는 널찍하고 슬픈 어깨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오베를 좋아했을 것이다. (아이패드를 살 때 점원을 대하는 방식은 매-우 불편하긴 했지만...^^;)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해내는, 결코 한 눈 팔지 않고 늘 정직한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결국 나는 파르바네처럼, 오베라는 친구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장을 덮을 때에도,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짠한 오베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 눈물짓고, 그리워했다.


지역감정을 넘어 성별과 세대 갈등이 극에 달한 사회. 누군가를 폄오하지 않고선, 네 편과 내 편을 나누지 않고선 도저히 못 배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오베나 소냐 같은, 패트릭이나 파르바네와 같은 이웃이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읽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어서 남겨두고 싶다. (여기에 문장들을 다시 옮기면서도 여러 번 눈물이 퐁퐁 났다.) 번역된 문장들도 이리 좋은데, 원어로 읽는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스웨덴어를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


특히 작가가 사랑을 표현한 방식이 좋았다. 오베는 '일'을 대하는 것만큼이나 '사랑'을 대하는 데 있어도 정직하고 성실했다. 뜨겁게 펄펄 끓었다 이내 식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내 잔잔하고 따뜻한 사랑. 그리고 나를 기어코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그런 사랑. 나도 이런 사랑을 완성해내고 싶다.


#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 봐.


#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째로—또한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 “그만하면 됐어요, 오베. 편지는 더 이상 쓰지 말아요. 당신이 쓴 이 편지를 다 집어넣을 공간이 인생에는 없어요.”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고는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미소를 지었다.

“이제 충분해요, 사랑하는 오베.” 그러자 충분해졌다.


#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2023년 8월, 열여덟 번째 책당모의♥


(*) 8월 초 출산을 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결석했다. 그래도 서평은 쓴 나~ 칭찬해~


[발제문] by SJY

1. 오베는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이면서 내면은 따뜻한 오지랖이 넘칩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오베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 어떤 장면이 가장 오베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나요?
- 여러분이 생각하는 오베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2. 오베는 죽음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순간마다 이웃들이 등장하거나 해결해야 할 성가신 문제들 때문에 다시 살게 됩니다. 
- 죽음을 갈망하는 오베가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작가는 오베라는 인물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3. 오베는 자신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일종의 강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여러분은 오베와 같은 면모가 있나요?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4. 책은 주인공인 오베, 그리고 소냐, 이웃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 등 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렸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5. 여러분의 삶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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