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는 라푼젤 Oct 26. 2023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

피에로 마르틴 · 알렉산드라 비올라 <쓰레기에 관한 모든 것> 


매립지는 이미 내일의 고고학적 유적지로 간주된다. 거기서 사람들은 소비사회를 연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이 우리에 대해 말해주고, 우리가 버리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의 쓰레기통을 뒤져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하루 동안 버리는 것들을 목록화해 본다면?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겉은 늘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다니지만, 내가 버린 것들이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말해줄 테니 말이다. 


나는 이 구역의 제일가는 귀차니스트이자 맥시멀리스트다. 늘 새 옷을 입고 싶어 하고, 신상과 핫플, 유행템에 환장하는 트렌드세터 호소인이자 '나 하나쯤은...'의 대표주자다. 궁금하면 일단 사고보고, 마음에 안 들면 쉽게 버리고, 뭐든 펑펑 낭비하기 일쑤. 언제부턴가는 음식을 과하게 시킨 후 남기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플렉스'라고까지 여기게 된 것 같다.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라 집에서 밥도 거의 해 먹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 최상위 VIP인 데다 편리함을 위해 가장 작은 크기(300ml)의 생수병을 이용하고 있으니, 나는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쏟아내 왔을 것이다. 고기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가. 임신 전에는 늘 한 달에 족히 소 한 마리를 거뜬히 먹어치워 왔으니, 필시 지구온난화에도 지대한 기여를 해왔겠지.


그러니 이 책이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로 선정된 것이 마냥 반가울 수 없었다. 쓰레기, 분리수거, 채식, 절약 등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주제들이기 때문.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럽고, 할 말이 없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이 책은 독자의 양심과 죄책감을 자극하며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하는 교훈서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or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며 독자가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책이다.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쓰레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기술은 필연적으로 폐기물을 만든다. 그러나 기술은 또한 그것을 줄이고 처리하는 데 근본적인 기여를 한다.  


물티슈가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아는가? '펄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반적인 물티슈의 주 재료는 사실 '폴리에스테르'와 '부직포', 즉 플라스틱이라고 한다. 페트병처럼 대놓고(?) 플라스틱인 것들은 재활용이라도 할 수 있지, 물티슈는 재활용도 불가능해 일반쓰레기로 처리해야 한다. 책에도 자세히 나와있듯 이러한 플라스틱은 폐기 과정에서 분해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리고, 소각하면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나온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 잘게 부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되돌아오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상을 닦을 때에도 행주 대신 간편하게 물티슈를 쓰고 버리는 일이 많았던 나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식당에서도 조금 걸어가 손을 씻고 오면 될 터인데, 물티슈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속으로 '기본이 안되어 있는 곳'이라고 욕할 때가 많았다. 그 가게들은 단순히 돈 몇 푼을 아끼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해서 그리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정말 무식했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 출산을 준비하면서 나는 민감해진 생식기 건강을 위해 휴지 대신 사용할 '생분해 물티슈'를 구매했다. 다소 비싼 가격이 단점 이긴 하지만, '생분해'되기에 변기에 버릴 수 있어 더욱 편리하기까지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건강에도 당연히 좋을 것 같아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기존에 쓰던 물티슈 대신 생분해 물티슈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아이가 사용하는 물티슈들도 당연히 플라스틱 성분이 함유되지 않은 제품으로 골랐다. 


그냥 내 건강을 고려하다 보니 자연스레 '환경'까지 챙기게 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나처럼 이기적이고 실천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니, 이러한 마음을 이용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고기만큼 맛있는 대체육이 개발된다면,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기꺼이 얼마든지 큰돈을 쓸 의향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인류는 후손들에게 생명을 전해주고 지식과 전통 등을 남기며 수천 년 동안 진보해 왔다. 그러나 이제 뭔가에 막혀 있다. 우리가 전례 없이 엄청난 쓰레기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상투적이지만 아이를 낳은 후 내 삶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참으로 많이 생겼다. 신체의 변화라던가 양육자로서 가지는 여러 가지 제약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 '마음가짐'인 것 같다. 아직 아이는 너무 어려 사물을 제대로 구별하지도 못하고, 내가 엄마인 것을 알아보지도 못하지만, 나는 자주 아이를 떠올리며 내 행동을 검열하곤 한다.


급한 성격 탓에 운전을 할 때면 늘 어린이 보호구역을 답답하게만 여겼는데, 이제는 횡단보도에서 우회전을 할 때도 지우를 떠올린다. 분리수거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플라스틱을 보면서도,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에베레스트산의 사진을 보면서도 지우를 떠올렸다. 생전 환경호르몬이나 미세플라스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인데(대충 살고 대충 죽자 주의), 젖병 종류와 소독 방법 때문에 밤새 고민을 하기도 했으니 말 다했지 뭐. 


부족한 나의 공중도덕심을 채워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의 존재다. 내가 보며 자란 이 아름다운 산과 들과 강을 아이도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어쩐지 요새는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기술의 진보로 나는 이토록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데, 나의 안락함을 위해 지우의 삶을 저당 잡고 있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움을 지우도 꼭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내용 자체는 참 괜찮은데, 번역이 심하게 어색한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구글 번역기로 돌려도 이것보단 낫겠다 싶을 지경. 전문번역가가 아닌 물리학 교수님이 번역을 해서 그런 건지... 출판사에서 좀 더 매끄럽게 번역을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면 훨씬 더 완성도 높은 책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쉽다.


2023년 10월 26일, 스무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LYK

1. 이 책은 여러 가지 사실을 섹션으로 구분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섹션을 골라보고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아요.
(개인적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고른다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2가지, 3가지 골라주셔도 됩니다!) 


2. 각자가 소개하고 싶은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 혹은 자연에 도움이 될만한 tip 이 있다면 소개해보아요. 


3.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확장시키고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스타일에서도 저는 미니멀라이프가 더 어렵습니다ㅠ) 
내 생활 속에서 줄이고 싶거나 다이어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아요.


4. 이 책에는 쓰레기를 다시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다른 물질들로 합성해서 유의미한 재료로 만드는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 이 외에 알고 있는 재활용 사례나 친환경적 기업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아요.


5.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쓰레기에 관련해서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이야기 나눠보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따스함이 스며있는 뇌과학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