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서
140일에 접어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매일 세상을 다시 새롭게 배우는 느낌이다. 아이는 내 삶을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드는 존재이고, 아이에게 무언가를 교육하고자 마음먹으면 자연스럽게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평범한 진리들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분명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들,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고자 나의 어머니와 선생님들이 그토록 노력했던 것들을.
기술 자체도 중독성이 있다. 기술에 힘입어 불빛은 번쩍이고, 음악은 요란하며, 기회는 끝없이 주어지고, 더 큰 보상이 약속된다.
솟구치는 사교육비와 극한 현실을 생각하면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이 절절하게 이해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진보한 기술과 넘치는 아이디어들 덕에 '물리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참 편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분유제조기나 소독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가 아이와 좀 더 수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거나 아이들의 발달을 도와줄 수 있는 '꿀템'들이 넘쳐난다. 책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클릭 몇 번이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장난감과 교구들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몇 시간이면(요새는 하루도 안 걸린다.) 현관 앞에서 내가 산 물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국민템 중 요새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단연 '꼬꼬맘'이다. 꼬꼬맘은 아이의 시선을 오래 잡아두도록 만들어진 시끄럽고 번쩍이는 닭 모양의 장난감인데, 아이를 키우는 집 중 열의 아홉은 꼬꼬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인기템이다. 아이의 대근육 발달을 위해 '터미 타임(Tummy time)'을 시킬 때 특히 유용하다. 꼬꼬맘이 거친 목소리로 "꼬꼬댁~~ 꼬꼬~~" 거리며 사방팔방 정신없이 돌아다니면, 아이는 힘든 줄도 모르고 고개를 번쩍 쳐든 채 꼬꼬맘에 집중한다.
하지만 모든 쾌락과 편리함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아이가 꼬꼬맘의 불빛에 익숙해지는 것이 종종 두렵다. 일부 엄마들은 꼬꼬맘의 불빛이 너무 자극적이라며 불빛이 나오는 목 부위에 손수건을 두르거나, 덜 자극적인 장난감을 찾아 헤매기도 한단다. 꼬꼬맘의 번쩍임과 요란함에 중독된 아기들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고,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결국 스마트폰만이 최종 종착지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다양한 위험 요소들 중에서도 중독성 물질에 대한 높아진 접근성은 현대인들이 마주한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꼬꼬맘이 어디 있었겠나, 기껏해야 조악한 딸랑이 몇 개가 전부였을 것이다. 아빠가 요란하게 내는 호롤롤로 소리라던가, 엄마가 잔뜩 인상을 찡그려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최고의 장난감이었겠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대신에 친구들과 골목 어귀에서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 땅따먹기를 하고, 매일 무궁화 꽃을 피웠다. 어린이날이라던가 크리스마스 때나 되어야 정말 좋아하는 인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용돈을 모아 병아리를 사고, 정성을 다해 키우다 어느 날 아침 죽어버린 병아리를 보고 펑펑 울기도 했었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을 손에 넣기가 너무나 쉽다. 갈망도 인내도 배울 기회가 없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간이고 쓸개고 인형이고 장난감이고 다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꼬마 여자아이들에게 요새 가장 인기라는 '캐치티니핑'이라는 만화는 시즌4가 방영 중인데, 매화 주요 등장인물이 바뀌고 그 수가 무려 백 개가 넘는다. (궁금해서 나무위키를 보며 대충 세어보니 13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매화 더 화려해진 새로운 OO핑과 사랑에 빠진다. 조카만 해도 집에 OO핑 인형이 십 수개가 넘고, 물어볼 때마다 좋아하는 핑이 바뀌어있다.
초등학교 1학년만 돼도 대부분 핸드폰을 가지고, 유튜브를 본다. 스마트폰 안에 아이들을 유혹할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바깥세상이 과연 재밌을까. 결국 아이들은 금세 손바닥만 한 세상에 갇히고 만다. 공부뿐 아니라 운동도 놀이도 전부 빨리 경험하고, 또 쉽게 흥미를 잃는다. 학원에 가느라 절대적인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의 정신이 온전하게 자라고 발달하는 속도보다 온갖 자극에 노출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른 것이 더 큰 문제는 아닐까.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새 나는 습관처럼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열정을 가지고 즐기던 것들이 모두 유치하고 시답잖아졌다. 아름답고 몽글몽글한 대사가 많이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독립영화를 좋아했던 나인데, 언제부턴가 찌르고 죽이는 액션극이나 좀비가 떼로 몰려다니는 영화만 찾는다. 나는 그게 단지 나이가 들어서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자극들로 점철된 삶을 살아오면서 쾌락과 고통을 주관하는 나의 저울이 고장이 나버린 것일지도. 이 저울을 정상으로 되돌리면, 어렵게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작은 것에 더 감동하고 더 즐거워하고 더 웃음 지을 수 있게 되려나...?
왜,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저자는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고통 마주 보기', '솔직하게 말하기', '친사회적 수치심 가지기'를 제안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 아이의 티 없이 맑은 웃음과 이모가 엄마보다 더 예쁘다고 말하는 조카의 솔직함(???)을 떠올렸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말하는 것도, 친사회적 수치심을 가지고 공동체에 귀속되는 것도, 모두 우리가 어릴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해내왔던 것들이 아닌가.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고, 자주 거짓말을 하고, 수치심을 외면하게 되었다.
그럴만한 능력(자본 혹은 배짱 포함)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엔 문제가 될 정도로 무언가에 중독된 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고통을 마주 보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덕일까?
아이로 돌아가는 것. 마음껏 고통스러워하고, 울고, 인정하고, 배우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 아이처럼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것. 그것이 결국 도파민 과잉 시대에서 우리를 치유하고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TMT)
내가 생각하는, 중독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뭐든 몰입을 잘하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중독이 될만하다 싶은 것은 아예 시작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컨대 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고, 유튜브도 아예 안 본다. 커피는 살면서 거의 마셔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마실 생각이 없다. 유튜브는 구독하는 계정도 없고(예의상 구독 중인 지인들 계정 제외) 한 달에 1번 들어가 보려나...? 그마저도 필요한 게 있을 때 잠깐 검색해 보는 수준이다.
살면서 무언가 그만두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고생해 본 적도 없다. 모바일 게임에 중독되어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다가도 그만해야지 싶어 지우고 나면,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타고난 기질이 중독에 조금 강한 편이려나...? 사실 SNS에 중독된 것은 명확한 사실 같은데, 그걸 끊어보고 싶다거나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저자처럼 '솔직하게 말하기' 방법을 써봐도.. 중독은 맞는데, 끊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 이건 정말 심각한 상태인 걸까? 그래서 생각보다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
[발제문] by JSY
1. 쾌락과 고통의 저울
쾌락 끝에 깊은 고통에 빠져버리거나, 고통의 인내 끝에 환희를 맛본 적이 있으신가요? 신경적응(neuroadaptation) 과정으로 인해 쾌락에 내성이 생기거나 고통의 깊이에 변화가 생긴 경험이 있으시다면 공유해 주세요.
2. 중독 경험
2.1. 최근에 도파민 분비를 자극했거나 당신을 중독시킨 것이 있나요?
2.2. 일반적으로 '중독'이나 '고통'은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됩니다. 중독을 원했던 이 있거나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서 오히려 좋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3. 중독의 원인
3.1. 저자는 i) 중독 대상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 ii) 낮은 교육 수준, iii) 여가시간의 증가, iv) 직업적인 특성 등이 중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중독에 더 취약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중독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지 이야기해 봅시다.
3.2. 최근 '이선균/GD 등 연예인의 마약사태'나 '전청조 사건', '나는 솔로 돌싱 편', 등과 관련된 기사나 인터넷 게시물을 보면 마치 국민 전체가 도파민에 중독되어 더 자극적인 사건과 가십거리를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도파민 중독도 전염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4. 중독의 극복
저자는 중독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물리적(공간) 구속, 순차적(시간) 구속, 범주적(의미) 구속 등 3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중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관련 사례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5.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 찾기
한국은 39분마다 1명이 목숨을 끊는,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자살률을 가진 나라입니다. 청소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을 비롯 전체 자살률 모두 OECD 회원국 42개 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죠. 반면 저자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항우울제 사용률은 1.3퍼센트로 조사 대상 25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성인 25% 이상, 어린이 5퍼센트 이상이 매일 정신치료제를 복용)
한국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가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을 찾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3가지 방법인 i) 고통 마주 보기, ii) 솔직하게 말하기, iii) 친사회적 수치심 느끼기 중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