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는 라푼젤 Jan 25. 2024

꿈이 가둬진 도시, 그곳은 이상향일까?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서평

스포주의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듯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꿈꿔 온 자신만의 '도피처' 혹은 '이상향'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천국은 아닐지라도, 괴로운 현실로부터 벗어나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 나에게 꼭 필요한 - 것이 갖춰진, 내 영혼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곳.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속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은 (혹은 정을 붙일 수 없는) 현실을 떠나 그 도시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슬픔으로 인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너', 연기처럼 사라진 '너'에게 마음을 모조리 태워버려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된 '나', 어떤 여인(귀신?)에게 홀려 보지 말았어야 할 세계를 본 후 '원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퇴역군 노인, 비범한 능력을 가졌으나 누구에게도(죽은 고야스 씨 제외)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한 옐로우 서브마린 파카를 입은 소년 등.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본체'가 진정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면, '그림자'는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껍데기이려나.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세계에 그들의 텅 빈 그림자를 남겨둔 채 그 도시로 이주해 왔다. 그 도시 안에서 그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허울뿐인 그림자는 덧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현실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 불확실한 벽을 가진 도시는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의 벽을 세운다. 춥고 음울한 회색빛의 도시. 간소하고 소박하고, 모든 것이 끝없이 반복되는 삶. 나에게 그 도시는 이상향이라기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모습이다. 만약 내가 그 도시로 간다면, '벽'은 나를 그 도시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 내가 그 도시에서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 그들에게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도시를 세우겠지.


어찌 됐든 그 도시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간소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춘' 이상향에 가까워 보인다. '너'라고 지칭되는 소녀에게 '슬픔(혹은 우울)'은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아무리 반짝이려 해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어둠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너'에게 그 높은 벽의 도시는 그림자(= 모든 어두운 생각)가 사라진 간결한 곳이다. 꿈을 꾸지도, 누군가를 좋아하지도 않는 존재가 된 것은 오롯이 '너'의 의지다. 현실의 '너'에게는 꿈과 사랑조차 버거웠던 걸까. '나'를 많이 좋아했음에도 '너'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또 다른 힘듦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는 그 도시에서 '나'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웠을지도.

 

'나'에게도 그 도시는 이상향에 가깝다. 현실의 '나'는 특출 나게 뛰어나진 않지만 특별한 결핍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 그럴듯한 회사를 다닌다. 다만 '너'가 없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해도 '너'와 함께하지 못하는 삶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그 도시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너'가 존재한다. 시간이 의미가 없는 그 도시에서는 '너'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무렴 상관없다. 그 도시에서 '너'는 '나'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언제까지나 열여섯 살이다. '너'가 갑자기 자취를 감출 일도 없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는 매일 '너'와 함께할 수 있다. 그 이상 바랄 게 있을까?

   

노란 잠수함 소년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의 비범한 능력을 마침내 아름답게 쓸 수 있는 곳. 그 도시는 소년이 평생토록 가졌을 의문인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이런 능력을 가졌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두려워해선 안 돼요. 앞을 향해 달리는 겁니다. 의심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믿고.


소설 속에서 '나'가 '언제' 그 도시에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소설의 시작부터 이미 현실과 그 도시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추측으로는 '너'를 잃은 후 곧장, 그리움에 사무쳐 '너'를 찾기 위해 그 도시로 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림자는 '나'에게서 벗겨진 채, 어쩔 수 없이 현실에서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채워나갔을 것이다. 그 도시에서는 그림자와 떨어진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묘사되었지만, 현실에서는 그 시간이 이십여 년이었던 것 같다. '나'의 본체(진짜 마음)는 그 도시에 있으므로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림자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도, 가치 있는 마음을 쌓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나'의 마음이 꿈틀댔던 것 같다. 현실 속의 '나'(그림자)는 무언가 달라져야겠다는 결심이 섰는지, 그 도시의 본체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더 늦기 전에 이 도시를 빠져나가야만 한다고. 더 늦어진다면 영영 그 도시에 갇혀버려 영혼을 완전히 잃고 말 것이라며. 그리고 본체 앞에서 깊은 웅덩이로 힘차게 몸을 내던진다.


'나'는 분명 그 도시에 남기로 결정하였으나 눈을 떠보니 현실이었다. 하지만 3부에서 여전히 '나'가 그 도시에 살고 있었던 것을 보면, 결국 1부 끄트머리에서 탈출에 성공한 것은 '나'의 그림자뿐이었던 것 같다. 다만 문지기의 감시 아래 현실도 가상도 아닌 공간에 갇혀 말라가던 그림자의 어떤 '의지'가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또 다른 자아로서 현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는 그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의 마음이 시키는 일을 찾는다. 전에 없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는 아직 그 도시를 떠날 준비는 되지 않았으나 - 아직 '너'로부터, 열일곱 살에 받았던 첫사랑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준비는 되지 않았으나 -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림자의 말을 믿고 힘차게 벽을 한차례 통과했던 것처럼. 자신을 그토록 오래 옭아매었던 상처로부터 벗어나 좀 더 나은 인생, 영혼이 살아있는 삶을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 중이었을 것이다. 넘어진 그림자를 등에 업고 달린 것도, 자신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동네를 찾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직장을 찾은 것도, 그리고 커피숍 주인에게 저녁을 먹자며 말을 건 것도 모두 '나'의 의지였으니. 꿈에서의 계시도, 베레모도 사실은 모두 '나'의 강력한 의지가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말했다. "하지만, 설령 내가 이곳을 떠나고 싶다한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높은 벽에 둘러싸인 이 도시에서 나가기란 결코 간단하지 않을 텐데."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나'는 (아마도) 성정에 잘 맞는 조용한 동네의 따뜻한 도서관에서,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고야스 씨(의 영혼), 소에다 씨, 커피집 그녀(?) 등을 만나며 조금씩 변해갔을 것이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에는 재즈가 없음을, 동물도 없음을, 따뜻한 블랙커피와 달콤한 블루베리머핀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도시가 결코 이상향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끝끝내 그가 '오래된 꿈 읽기'라는 과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그가 결국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암시였을까? 


결국 '나'는 그 도시에서 나가기로 - '너'와 비로소 영원히 헤어지기로 - 마음먹는다. 아니, '나'가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결정했고, '나'는 그 마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계속해서 모양을 바꿔 내 앞을 가로막았던 그 벽은, 결코 무너질 수도 그 어떤 흠집도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벽은, 그림자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실상 그리 단단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땅에서 당신을 받아주리란 것을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겁니다. 보류하지 않고,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그가 당신을 받아줄 거예요. 그렇게 믿으세요. 당신의 분신을 믿는 건 곧 당신 자신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나'가 낙하했을 때, '나'를 받아줄 만큼 그의 그림자는 단단해졌을까? 그의 그림자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커피숍의 그녀? 아니면 고야스 씨의 영혼? 혹은 블루베리 머핀이나 재즈?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나'의 그림자는 단단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년은 '자신의 그림자는 자신을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소년은 가족들과 함께였음에도 그들에게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한다 느꼈다. 새끼를 잃고 필사적으로 주위를 헤매다 이윽고 단념하고 잊어버리는 어미 고양이를 하릴없이 관찰하면서, 그 소년은 본인의 어미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너'는 아주 어릴 적에 이미 너의 그림자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와의 대화로 미루어보건대 '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자신의 본체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에 있다고 믿으며, 열여섯 살 어느 날에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것 같다. 왜 '너'는 끝내 도시를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너'와 그 잠수함 소년은 그곳에서 영원토록 행복할 수 있을까.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 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도, 무언가에 애착을 가지거나 일렁이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가끔은 이 삶을 살아가는 내가 그럴듯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마치 그림자처럼. 모양과 색채는 다를지라도 물렁거리고 알록달록한 벽에 둘러싸인 어떤 도시에 진짜 나를 가둬둔 채 껍데기뿐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든다. 


그러나 고야스 씨의 말처럼 지금 이곳에 발을 디딘 내가 본체인지 그림자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무언가를 흉내 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니, 지금 당장 큰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하찮은 삶일지라도 언젠가는 저 벽을 뚫고 나온 진짜 내가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점프하듯 이끌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때 나는 온 힘을 다해 낙하하는 나를 받아주어야지.





TMT 1)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서평을 쓰다 보니 '나'와 '너', 노란 잠수함 소년과 커피집 그녀에게 이름이 없다. (그래서 서평을 쓸 때 헷갈리지 않도록 지칭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마음의 벽을 치고 그 높은 벽의 도시에 갇힌 이들에겐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커피집 그녀는? 그녀 역시 그녀만의 도시에(아마도 섹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높은 벽을 쌓고, 그녀의 본체를 숨겨둔 걸까?


마음의 벽이든 물리적인 벽이든, 사람은 누구나 어떤 벽을 쌓고 그 안에서 자신을 보호한다. '나'가 사랑했던 '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 넘을 수 없는 - 역병을 막을 - 견고한 벽을 만들었고, 커피집의 그녀는 갑옷을 입었다. 그 갑옷을 통해 아무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마음의 안식을 얻었던 거겠지. 


흠.. 근데 '나'가 옮겨간 마을의 이름은 왜 ** 표시된 걸까..?



TMT 2)

전자책을 읽으며, 책 말미 숫자가 100%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그러나 끝끝내 책은 나에게 물음표 백만 개를 남긴 채 그렇게 끝나버렸다. 


나는 부끄럽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해서 책이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아 하루키의 생애를 나무위키에서 찾아 읽었다. 하루키의 생애가 이 책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러다 아래 내용을 읽게 되었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성격이 매우 다른 자매, 즉 우수한 언니와 평범한 동생, 쌍둥이, [10] 벽을 뚫고 지나가기, 주인공이 자주 먹는 스파게티, 끝없이 깊은 우물, 아내의 실종, 자아의 성장, 연결되지 않는 전화가 소재로서 유난히 반복하여 등장한다.

미스터리한 여성, 귀 페티시, 마른 우물, 무언가의 실종, 추적당하는 느낌, 예상치 못한 전화, 고양이들, 오래된 재즈 레코드, 도시의 권태감, 초자연적인 힘, 달리기, 비밀 통로, 자유 공간, 기차역, 역사적 회상, 조숙한 십 대, 요리, 고양이와의 대화, 평행세계, 괴상한 섹스, 도쿄의 밤, 흔하지 않은 이름, 얼굴 없는 악당, 고양이들의 실종 등이 있다. 위스키, 비틀스 음악, 비치 보이스 등등의 로큰롤 음악은 거의 필수라고 봐도 된다.


이 책에도 끝없이 깊은 우물, 실종, 자아의 성장, 예상치 못한 전화, 고양이, 귀 페티시, 벽을 뚫고 지나가기, 위스키 등이 등장한다. 이 책은 마치 <어벤저스: 엔드게임>처럼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결집한 어떤.. 마무리와 같은 작품인 걸까? 하루키의 책을 읽은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그의 다른 책들을 읽었다면 좀 더 이해가 쉬웠을까?


아무튼 정말 어려운 책이었는데, 오히려 서평을 쓰면서 생각이 조금은 정리된 듯싶다.

이 책은 '하루키의 책이기에' 감히 명작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여전히 조금 들지만.


2024년 1월 25일, 스물세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SSM

1. 이 작품은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10대 시절 주인공이 사랑했던 소녀에 관한 이야기와 그녀와 함께 그려간 어떤 도시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도시로 찾아간 이야기, 2부는 도시에서 빠져나간 그림자의 이야기, 3부는 도시 속의 본체가 다시 그림자와 합쳐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루키는 어느 도시의 벽을 통해 ‘(그림자 없이) 본체만 살아갈 수 있는 도시’와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분리해 두었는데, 
        -  도시 안 vs. 도시 밖
        - 본체 vs. 그림자
        - 꿈을 읽는 이와 오래된 꿈 vs. 도서관 관장과 책
은 각각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2. 주인공은 갑작스레 사라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녀가 떠나간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며 40대 중반까지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도시 안 도서관 사서인 그녀를 만나게 되고 외형만 같을 뿐 전혀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함께 있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2부에서 만난 카페 사장에게는 알 수 없는 호감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스며들듯 사랑에 빠진다. 두 가지 사랑의 공통적인 특징이 플라토닉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첫사랑은 이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카페 사장은 불온전한 남녀 관계로서 유지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데, 이로써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3. 주인공은 1부에서 그림자와 헤어짐을 택하는 데, 그 이유를 “첫째,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나는 그 세계에서 더더욱 고독해질테지.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깊은 어둠에 직면할 거야. 내가 그 세계에서 행복해지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중약) 이곳에서 나는 적어도 고독하진 않아. 이 도시에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하면 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걸 알고 있으니까.”라고 말하며 남게 되고, 3부에서는 엘로서브마린 소년에게 꿈을 읽는 이로써의 역할을 넘기고 다시 현실 세계에 복귀하여 그림자와 합치게 됨을 암시한다. 왜 주인공은 선택을 나중에 번복하게 되었을까?


4. 가르시마 마르케스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콜롬비아 소설가로서,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해 왔다. 그는 그 벽이 불확실한 벽이라 지칭하며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고 말한다. 하기의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함일까? 그리고, 우리 실생활에서 불확실한 벽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주인공 / 첫사랑
        - 주인공 / 고야스
        - 주인공 / 옐로마린 소년 (왜 옐로마린 소년은 도시의 벽이 역병을 막기 위함이라고 했을까?)


5. 하루키는 이 소설 말미에 이례적으로 작가 후기를 남긴다. 1980년 잡지에 기고한 소설이나,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유일하게 출판하지 않았고, 코로나 시점과 맞물린 시점까지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불편한 감정이 들어 드디어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각자가 과거에 했거나, 하지 못한 일 중 계속 마음 한켠에 남아있거나 아쉬움이 남는 일이나,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로 돌아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