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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May 17. 2021

목적 있는 만남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언젠가부터 친구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는 뻔해졌다.


작년에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과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푸념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올해는 그 자리를 주식과 코인, 턱없이 올라버린 집값에 대한 한숨이 메웠다. 가끔 등장하는 연애와 소개팅 이야기는 퍽퍽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줬지만, 회사와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을 듣다 보면 막차 시간이 되기 마련이었다.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뇌를 함께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이번 모임에는 각자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 한 가지씩을 들고 와 '목적 있는 만남'을 갖자고 제안했다.




나는 조금 더 인정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근래에 깨달은 것"이라는 주제를 가져온 친구가 이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울컥했다. 그녀는 너무 당연하게도 충분히 인정받아도 되는 사람인데, 왜 이걸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의아하고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업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이 때문에 자기 전에 '오늘 내가 잘못한 일이 없나?'라는 반성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러다 스스로를 낮추며 잘못을 뉘우치고 잠들어야 하는 것에 의문이 들어, 그녀는 매일 밤 자신을 용서하며 잠들기로 했다. 조금은 더 행복하고 편안해졌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했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을 더욱 너그럽게 바라보게 됐다.

"당연히 너는 인정받아도 되는 사람이야.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이 없어."라고 진심을 담아 투박하게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뜻밖의 말을 했다. 


"네가 이해 못하는 듯이 무뚝뚝하게 말하는 게 위로가 될 때가 있어"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예민한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다. 이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다.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내 삶에 어느 정도까지 받아 들어야 하는가

미래에 대해 불안감과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꺼내놓은 주제이다. 어떤 이들은 가족의 품에서 온기를 느끼지만, 누군가는 한기를 느낀다. 가족들이 서로 도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있는 반면, 화살표가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가족도 많다. (세상에는 화목한 가족보다 그렇지 않은 가족이 많지 않을까..) 


부모님이 자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거나 적어도 자식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게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 부모님들은 힘든 시대를 살았고, 그들 역시 부모를 부양해야 했다. 


나는 결핍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 결핍은 끊임없이 나를 성장하게 바람이었다. 부모의 화살표가 늘 자식을 향할 수는 없고, 그들도 자신을 향할 수 있다. 비교는 대체로 불행을 가져오고, 비교를 통한 위안은 아름답지 않다. 나는 아직 비교를 극복하진 못했지만, 가족에 대한 비교는 멈춘 것 같다. 지금 내가 찾은 방법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족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반발을 포기한 수용은 나를 더 채찍질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져온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 두려움으로 인해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살고 싶은 방식'과 현실에서 나와 내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 사이에서 고민이 된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까. 엔지니어링에서는 제약 조건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위해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낼 수 있는 성과도 제한되어 있다. 30대가 되어서도 경제적 안정과 순수한 욕망 사이에서도 아직 헤매고 있다. 



1박 2일 동안 100분 토론을 서너 번 거친 듯한 밀도 있는 대화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 무작정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잠시나마 돌아볼 시간을 주었다. 


목적을 가진 대화는 서로가 고민하던 취약한 부분을 공유하게 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닌 여운이 남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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