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조지아주에서 바다 보러 가기 #2
아이 학교에서 콜럼버스 데이(10월 두번째 월요일)를 앞둔 주말 앞에 컨퍼런스(면담)를 핑계로 휴일을 붙여 5일짜리 가을방학을 줬다. 콜럼버스 데이는 말하자면 미 대륙의 개천절쯤이겠다. 다만, 요즘은 그 이름을 버린 주들도 있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있었는데 그게 발견이긴 하냐는 것이다. 서양인만을 주체로 보는 시각에 대한 반성이 새로 만들어준 이름은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이다. 원주민의 날을 기리는 것이 굳이 콜럼버스가 첫발을 딛은 날이어야 할지에는 의문이 들지만... 이랬거나 저랬거나 쉬는 날은 쉬고 안 쉬는 날도 쉬고 싶은 나는, 지난 번 채터누가 여행을 함께했던 두 가족을 꼬드겨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 목적지는 St. Joe Beach였다. 멕시코만에 면한 플로리다 팬핸들(후라이팬 손잡이처럼 길게 튀어나온 지역. 여러 주에 있음)에 있는 해변 중 하나다. 플로리다 탬파 인근에 상륙해 피해를 남기고 간 허리케인 밀턴이 대서양에서 소멸되고, 조지아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 돌아갈 무렵... 우리도 플로리다로 달려가고 있었다.
플로리다 팬핸들 걸프 코스트에서 나름 알려진 비치는 펜사콜라, 데스틴, 파나마시티 비치 정도다. 대부분 하얀 모래와 예쁜 바다를 품고 있다. 처음엔 데스틴과 파나마시티 비치 쪽을 알아봤는데, 데스틴은 너무 비싸고 파나마시티 비치는 젊은 애들이 떠들썩하게 노는 곳이라 해서 주저하게 됐다. 그러다 더 동남쪽으로 멕시코 비치 아래에 있는 이 조용한 해변을 알게 됐다.
St. Joe 비치엔 바다밖에 없다. 주변 다른 비치들도 가봤지만, 아이들의 원픽은 숙소 근처 이 비치였다. 모래는 하얗고, 물은 맑고, 바닥은 얕고, 파도가 작고, 해변이 한적하다. 물고기가 왔다갔다해서 낚시도 한다.
근처에 별 게 없다. 식당도 많지 않다. 서북쪽으로 멕시코 비치 가는 길에 푸드트럭 한 곳과 식당 한 곳이 있다. 장이라도 보려면 Port St. Joe까지 차로 10분은 나와야 한다. 그마저도 오래된 등대랑 마트(Piggly Wiggly랑 Dollar General Market), 식당(Joe Mama's Wood Fired Kitchen 등) 정도지만.
해변에서 저 멀리 내다보이는 방파제 같은 반도 중간 즈음부터는 St. Joseph Peninsula 주립공원이 있다. 주립공원 데이유즈 에어리어에 있는 비치 역시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로 덮여 있다. 물가에서 10미터쯤 들어가다 다시 얕아지는 구간도 있다. 어른 허리 깊이라서 아이들이 패들보트로 파도놀이를 하기 딱 좋다.
주립공원에서 나와 돌아오는 길에 St. Joe Shrimp Co. 두 곳 지점이 있는데, 주립공원에 더 가까운 at the Cape 지점만 새우튀김 등 런치메뉴(토요일 제외)를 판다. 우리는 토요일에 들렀던지라 steamed shrimp랑 맥주만 샀다. 생새우를 바로 삶으면 1파운드에 10불인데 삶으면서 양이 줄어든다며, 미리 삶아둔 것이 2배쯤 되는 양에 14불이라고 권했다. 호갱님답게 넘어간 우리는 마일드로 3봉지를 샀는데, 우리 기준으로는 마일드도 좀 짜지만 먹을 만했다. 라면에 사이드로 먹었더니 조금 남아서, 어린이들 저녁밥으로 새우볶음밥도 가능했다.
그런데 이 곳에 독특한 경험을 하나 했다. 조지아주에서 플로리다 팬핸들 지역으로 가다보면 중간에 앨러배마 경계를 넘으면서 시간이 1시간 뒤로 간다. 여기까진 모두가 1시간의 여유를 얻는 식으로 동일한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혼돈이 왔다. 일행 중 일부의 휴대전화는 현재 시간이 1시고 일부는 현재 시간이 2시라는 식이었다.
휴대전화 일부는 중부 시간, 일부는 동부 시간을 표시하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한국 유심을 함께 꽂은 전화기는 중부 시간, 미국 유심만 꽂은 전화기는 동부 시간으로 표시됐다.
왜냐면 이곳이, 플로리다에서 유일하게 한 카운티 내에서 두 개의 시간대를 사용하는 카운티라서였다. 중부와 동부 시간의 경계인 앨러배마와 조지아 경계를 그대로 연장하면 사실 이 걸프 카운티는 중부 시간을 써야 맞다. 그러나 물류 문제 때문에 동부 시간에 맞췄던 일부 지역들이 있었다고 한다. 40여년 전, 시간을 통일하는 걸 놓고 투표도 했었다고 한다. 다만, 과반이 반대한 탓에 아직도 2개 시간을 쓰고 있다나.
덕분에 몇 시에 출발할지를 놓고 늘 "동부 시간으로" 같은 말을 한번씩 더 하다가 결국 휴대폰 시간을 매뉴얼로 동부 시간에 맞춰야 했다.
시간이 맞아도 안 맞아도 세인트 조 비치는 좋았다. 데스틴에 다녀온 적이 있는 일행도 "데스틴 모래가 더 하얗지만, 이 해변이 놀긴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3박을 했던 숙소도 떠나기가 아쉬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특히 모기장이 잘 설치된 포치, 캠프파이어 가능한 정원, 넓직한 식탁, 아이들의 영혼을 빼앗았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에어비앤비로 꽤 주고 예약했는데 숙소에 가보니 "다음에 또 오라"며 수수료 안 내고 10% 할인코드도 쓸 수 있는 직통사이트가 안내돼 있었다.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걸...
https://maps.app.goo.gl/zyQ6jYMPSdLzjRw86
아참, 갈 때 교도소를 누비는 해프닝도 있었다.
세인트 조 비치까지는 약 6시간 20분. 데스틴이나 펜사콜라도 소요시간은 비슷하다. 대신 애틀란타를 안 거치고 직통으로 내려가는 루트가 가능하다. 그래서 출발하는 날 새벽 5시반에 출발해 Buc-ee's 휴게소까지 2시간을 달려 아침을 먹고, 다시 3시간을 달려 Woodruff Dam Overlook에서 잠시 물멍을 때리고 나머지 1시간 반을 달려 Port St. Joe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Woodruff Dam Overlook 근처에 왔는데, 진입로 앞을 거대한 트럭이 막고 있었다. 얼결에 지나친 다음 다시 구글맵이 시키는 대로 들어갔더니 깃발이 휘날리는 웬 건물이 나왔다. 구글맵을 자세히 보니 이곳은 교도소. 그런데 거기서 다시 댐으로 접근하는 길로 구글맵이 안내를 해줬다. 서서히 지도를 따라가는데 뭔가 풍경이 이상했다. 왼쪽은 교도소 쇠창살, 오른쪽은 민가 앞으로 다시 쇠창살... 도대체 이 곳의 정체는 무엇인가 싶고, 앞에 난 길도 다시 막혔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접근해 왔다.
그것은 바로바로...
교도관이 차를 몰고 다가온 거였다. 밖으로 나가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나왔다. 그리고 댐은 포기하자고 다른 일행들에게 연락을 한 뒤 일단 근처 마트를 검색해 화장실에 들렀다.
나중에 구글맵 리뷰를 자세히 보니, 4달 전에 "모든 길이 폐쇄됐습니다. 왜?"라고 적힌 게 있었다.
이걸 왜 못 봤지...
다시 구글맵을 보니 댐 전망대 주소에 army와 mil이 들었다.
홈피를 클릭해 보니 예약으로만 운영된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