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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Mar 18. 2023

공포로 움직이는 삶에 대하여

도와주세요.

어렸을 적 우리 집 앞에는 오거리 놀이터라는 곳이 있었다

오거리 어린이 놀이터는 놀이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어린이보다는 부랑자와 노숙자가 훨씬 많았다.

집 앞의 놀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험상궂은 모습에 함부로 그곳을 드나들기가 무서웠다.

어느 날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사는지 궁금했다. 왜 나의 아버지처럼 일을 하지 않는지...

내가 아는 어른들처럼 집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지 않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어린 나의 눈에 그들의 삶은 무척이나 기구해 보이고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엄마에게 물어보자 엄마는 "저들은 천성이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며 배우는 것을 싫어해서."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 말이 세상 무서웠다.

사실은  내가 천성이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배우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그 대답은 꽤나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고 그것은 정체 모를 공포가 되어버리곤 했다.

그것은 엄마를 원망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니까.

나는 천성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아가느라 꽤나 오랜 세월을 고생했다.

천성대로 살아가던 시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들은 나를 꽤나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일을 했다. 세상은 그에게 요행으로는 손에 100원 한 푼 쥐어주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운전과 막노동이 절묘하게 섞인 자신의 직업에 절어 집에 돌아와서도

아버지는 집에서조차 남은 일들을 모두 끝내고 골아떨어지곤 하셨다.

나는 그렇게까지 모든 인생을 일에 쏟아부어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시달리곤 하였다.

인간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저런 것이라면 나는 직업을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웃프게도 우리 아들은 나중에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엄청나게 무서워한다.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런 것이겠지..


아버지는 내가 아들을 낳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와 살가운 관계가 아니었던 나였지만 그것은 내게 극심한 심리적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슬픔의 이면에는 "과연 아버지의 삶에 행복한 순간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가득했다.

왜냐면 당시 나는 아버지와 그닥 다를 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 질문은 꽤나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아버지와 나는 같은 모양의 코뚜레를 차고 태어났기에

암만 발버둥 쳐도 허울만 좋을 뿐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는 구석이 없었다.

(나는 어렸을 적 옛날 사극을 보며 노비들의 삶을 볼 때면 저들은 왜 노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리도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의문을 품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의문은 아주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어찌나 우스운지.)


왜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 심리가 아닌 최악의 삶에 대한 공포인 것일까..

나는 나의 한심함에 수도 없이 질려버렸다.. 거의 채찍으로 조련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지 않기에.


타인을 부러워하는 것을 한없이 쫓으며..

겪지도 않은 혹은 겪어보니 별 것도 아니었던 공포가 자신을 내모는 것을 원동력으로 사는 삶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혹자는 행복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고들 말한다.

나의 행복은 아주 먼 곳에 있다. 나는 나의 불행의 근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브런치나 쓰고 있을 여유가 없다.

오늘도 그 공포를 떨구러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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