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해마다 오월이면 열 명의 작가가 내는 합동 산문집이 있다. 올해로 일곱 번째 책이다. 칠 년 전 첫 책을 낼 때 참여한 사람 중 네 명이 바뀌었다. 여섯 명은 그대로다. 나는 처음부터 참여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작가들이 공저로 한두 꼭지 써서 책을 내는 경우 많다. 단회로 끝나거나 우리처럼 길게 가기도 한다. 해보니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서 끝까지 함께 가기 쉽지 않다. 올해도 여지없이 합동산문집을 낸 게 함함하다.
이번 산문집은 제목이 색스럽다. 제목을 짓는데 고심한 끝에 탄생되었는데, 우리는 지어 놓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무래도 독자의 시선을 끌게 되지 않을까 해서다. 작가의 음흉한 의도 때문에 웃었던 것이리라. 괜찮다. 책이 하도 많이 나오고 있는 이때에 제목으로라도 시선을 끌고 싶은 건 좋은 작전이다. 낚시 제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색(色)에 한자를 병기했다.
표지가 화려하다, 지금까지 나왔던 합동산문집 중에 가장. 작품에 언급되고 있는 다양한 색깔을 이미지화해서 만들었다. 제목이나 표지가 모두 잘 어울리고 흡족하다. 출판사 측의 고심이 엿보이는데, 글자 크기와 색깔 모양도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 위해 여러 손길이 작용한다. 작가 외에도. 글과 표지, 글자 크기, 간지, 첨부된 사진 등 모두 잘 어울리도록.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작품집의 글감은 색이다. 몇 년 전에 몇 개 글감을 정해놓고 순서대로 쓰고 있다. 책이 나오기 직전에 작가들끼리 모였다. 제목을 정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이번 글감은 쓰기 어려웠다고 모두 한 마디씩 했다. 누가 내놓은 글감이냐고 캐묻는 이도 있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시치미 떼었다. 내가 낸 글감이었기 때문에. 쓰기 힘들었다고 푸념하는 작가들의 질타 아닌 질타를 견디기 힘들 듯했다. 그럴 때는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다. 나중엔 발각되고 말았지만. 기억력 좋은 한 사람이 아무래도 나 같다며 쏘아보자 모두 기억해 내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질타는 없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읽어보았다. 엄살과 달리 글은 모두 좋았다. 작가들 하는 말은 다 믿을 게 못된다. 해마다 글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 흐뭇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내 이름이 가장 위에 올라오지 않는가. 잘 쓴 사람 순서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다. 가나다순으로 해마다 앞에 오는 이름이 달라진다. 작품도 내 것이 앞에 있다. 그래서 신경 쓰였다. 독자들은 앞에 있는 작품을 먼저 읽고 읽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색과 관련된 일화나 경험이 모두 있을 거다. 그 글감을 낼 때 내가 쓰고 싶은 색이 있었는데, 막상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썼다. 목 디스크로 고생하느라 미루다, 미루다, 원고 마감일에 겨우 탈고해서 보냈다. 강의할 때 가끔 강의 준비한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있다. 그날 수강생들의 분위기와 상황을 보고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글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쓰려던 것과 달리, 원고 마감일이 가까워졌을 때, 쓰고 싶은 게 있어 바꾸었다.
책이 출간되자 프로필 사진을 신작 사진으로 바꿔 걸었다. 해마다 내는 거고, 단독저서가 아니고 합동작품집이어서 누구에게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프로필 사진에서 본 지인과 제자들이 주문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요즘 시대는 자기 스스로 홍보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그게 쑥스럽다. 생각해 보면 단독저서가 아니고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쓴 거니까 내놓고 홍보하기 더 나은 거 아닌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책을 출간해도 홍보하지 못했다. 요행히 아는 사람들이 사서 읽고 리뷰를 올려주곤 했다. 왜 그게 그렇게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내 글이 부끄러운 건 아니다. 나는 성실하게 쓸 것을 재량껏 썼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라도 그렇다. 이 글을 쓰면서도 좀 낯 뜨겁긴 하다. 하지만 그 낯 뜨거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내 이름이 앞에 있기 때문일까, 공연히 책임감 같은 게 생겨서다.
출판 사정이 어려운 현실에서 책을 내준 출판사에 고맙고, 읽을 만한지 모르겠으나 책을 구매한 독자들에게도 고맙다. 그 마음은 적으나마 표현하고 싶고, 인쇄물이 넘치는 현실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걸 알리고도 싶다. 낯 뜨거움이고 뭐고 이제 다 버리고 자기 홍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온 합동산문집. 여자의 욕망엔 색(色)이 있다. 어떤가, 읽고 싶은 구미가 당기는 책 제목 아닌가. 글도 그래야 하는데, 살그머니 걱정도 된다. 읽은 독자가 이거 뭐야, 낚시 제목인데 할까 봐 가슴이 졸이기도 한다. 아무튼 다양한 색에 얽힌 사연과 함께 작가들의 사유를 만나 보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닐까.
봄이 가고 있다. 다행이다. 올 첫 과제를 해냈으니. 다가오는 여름을 힘차게 맞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