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과제가 하나 주어졌다. 제자들과 백일 동안 백 편의 글을 쓰는 일이다. 일명 백일백장. 길어도 짧아도, 완성도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이 매일 한 편의 글을 써내야 한다.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제자들과 연말에 총회를 하면서 총무가 갑자기 제안했다. 새해에는 글쓰기에 불을 붙여보자고. 대부분 찬성했고 선생인 나도 울며 겨자 먹기와 억지춘향으로 동의했다. 제자들이 써보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물론 자율적이다. 그 자리에서 찬성했으면서도 아직 1편의 글도 쓰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도 공지를 보고 쓰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쓴 글을 우리 문학회 카페에 올린다. 그러면 회원들이 읽고 좋아요 누르고 댓글을 쓰기도 한다. 이 부분도 자유다.
나는 제자들이 쓴 글을 모두 읽는다. 그리고 서너 줄을 썼더라도 좋아요 누르고 짤막한 댓글 달아 애정(?)을 표시한다. 몇 줄이라도 매일 쓴다는 게 얼마나 함함한가.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는 말이 있다. 내가 꼭 그렇다. 글의 내용이나 구성과 상관없이 제자들이 쓴 글에는 원초적인 애정이 마구마구 솟구친다. 읽으면서 행간에 숨어 있는, 쓰고 싶으나 다 쓰지 못해 애 터져하는 마음을 읽어내려 애쓴다. 그래서 몇 줄 글에도 좋아요 누르고 댓글을 단다.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던 제자가 글을 꾸준히 올리는 걸 보며 백일백장을 제의한 총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물론 글을 쓴 제자가 더없이 고맙고 기특하다. 그들에게 나는 선생으로서 용기를 주며, 때론 앞에서 끌고 때론 뒤에서 미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꺼운 마음이든 아니든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의무와 사명감으로 해야 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 위에 억지춘향, 울며 겨자 먹기라는 표현은 솔직히 과장되었다. 일종의 엄살이라고 할까.
오래전에 유아교육 현장에 있었던 적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선을 그릴 수 없어 망설이는 아이를 자주 보았다. 선을 못 그리기 때문이 아니라 깨끗한 백지에 그린다는 것에 부담감 내지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다. 그런 아이가 있을 때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스케치북에 선을 쭈욱 힘차게 긋는다. 으앙 울음 터뜨리는 아이가 있고,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물리치는 아이도 있었다. 그다음엔 모두 크레파스를 잡고 하얀 스케치북에 즐겁게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이번 백일백장에서 처음 글을 쓰는 제자를 볼 때 그 시절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백일 동안 백 편 글을 완성도 있게 쓴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백일 동안 백가지 이상 글감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쓰지 않으면 대부분 놓치고 만다. 통발에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삼베 잠방이에 방귀 새듯 술술 빠져나가고 만다. 그게 아깝다. 중요한 물건 잃어버리는 것만큼 아깝다. 그러니 쓸 수밖에 없다. 완성도나 수준과 상관없이 그냥 써야 한다. 백일이면 웬만한 습관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끝나고 나면 적어도 삼일에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으리라. 나는 그것을 노리고 있다.
내 글 쓰고, 제자들 글 읽고, 좋아요 누르고, 댓글 다느라 나는 바쁘다. 아침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제자들은 내 글에 좋아요 누르지만 댓글은 거의 달지 않는다. 내가 쓴 댓글에 묵묵부답인 경우도 많다. 괜찮다. 선생이 쓴 글에 댓글 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으므로 의미 두지 않고 패스.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귀여운 나의 제자들! 나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내게 배우는 사람들은 그냥 다 제자라고 생각한다. 인정하든 안 하든. 그렇다고 학생들 대하듯 하진 않는다. 성인들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제자들도 부지기수니까.
백일백장 쓰기 장점은 많다.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문우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더욱더. 어떤 소재든 매일 1편씩 써낸다는 게 뇌 활성화에 좋을 것이고, 글감을 놓치지 않아 바람직하며, 뿌듯한 마음이 들어 보람차지 않겠는가. 물론 단점도 하나 있다. 부담감이다, 써야 한다는. 그 부담감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기에, 제자들을 더 훈련시키고만 싶다. 악취밀까.
연말에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로 열 편째 글이니 벌써 십 분의 일을 썼다. 글머리에 몇 번째 글인지 번호 붙이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 ‘<100-10> 백일백장 쓰기’ 이것이 오늘 내 글의 제목이다. 써놓고 보니 괜찮은 제목이다. 이제 이 글을 올리고 제자들의 글도 읽어봐야겠다. 모두 글쓰기에 중독되어 삶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그 힘을, 글쓰기는 분명히 가지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