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과 흑역사

by 최명숙


어느 작가의 산문을 읽는데 수탉이야기가 나왔다. 공감되는 부분 때문에 웃었다. 시골에서 수탉 울음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새벽에는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새벽 단잠을 깨울 적엔 야속하기 그지없다. 암탉은 알 낳았을 적에만 울지만 수탉은 시도 때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우는 것 같다. 내 기억에도 새벽이든 낮이든 저녁나절이든 언제나 수탉 울음소리를 들었던 듯하다.


어릴 적에도 간혹 새벽에 깼다. 이불을 부스럭거리면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닭이 두 번 울었다, 더 자거라. 닭이 세 번 울면 새벽이 온다. 두 번이면 몇 시쯤이었을까. 할머니는 왜 닭 울음소리를 세고 계셨을까. 그만큼 잠이 오지 않으셨으리라. 성경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야기에서 닭이 세 번 울기 전에,라는 구절이 나오는 걸 보면, 어디서나 닭이 세 번 울어야 새벽이 오나 보다.


나는 수탉이든 암탉이든 닭 이야기만 나오면 흑역사가 생각난다. 그 시절의 많은 이들이 경험했을 이야기여서 심심찮게 문학작품에도 서술되고 있는. 그런데도 흑역사라고 하는 이유는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의 식탐이. 꼭 식탐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동생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나만 유독 그랬던 걸 생각하면 식탐이 맞는 것도 같고, 뱃속이 동생들보다 튼튼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면 발가벗겨질 각오하고 써야 하므로 밝힌다.


명절날 그것도 추석날이면 나는 언제나 배앓이를 했다. 밤에 변소에 가고 싶으면 할머니를 깨웠다. 변소는 안마당 귀퉁이 상희네 건조실 옆에 있었다. 방문을 열면 보름달이 하늘 가운데 환하게 떠서 밝은 빛을 마당 가득 뿌렸다. 그래도 혼자 변소에 가긴 무서웠다. 밤중에 변소에 가면 손각시가 나온다고 했고 몽달귀가 나온다고도 하는 이야기를 동무들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두 번은 아무 말 없이 따라가 주던 할머니가 세 번째쯤 되면 뒤란 돌아가는 귀퉁이에 있는 닭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빌어라, 수탉한테.” 할머니는 횃대에 올라 자고 있는 수탉에게 비손 하며 빌었다. 무슨 말을 하며 빌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주문 같은 걸 외우며 내게 따라 하라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저 수탉이 무슨 능력이 있어 내 배앓이를 멈추게 할까 싶었지만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손을 싹싹 비비며 수탉에게 꾸벅꾸벅 절했다. 밝은 달빛 덕분에 수탉의 모습은 훤히 보였다. 눈을 꼭 감고 자고 있는 모습이.


“할머니, 왜 수탉한테 빌어야 해?” 변소로 향하는 내 뒤를 할머니가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몰라 묻곤 했다. “수탉은 밤에 변소에 안 가잖여. 그래서 수탉한테 비는 거여.”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밤에 혼자 변소 가는 게 무서워 자꾸 말을 시켰다. 내가 변소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셨다. 가끔씩 있나 없나 확인하기 위해 할머니를 부르면, 영락없이 변소 앞에서 대답이 들렸다.


동생들은 배가 안 아픈데 왜 나만 아프냐고 물은 적이 있다. 기름기 없는 것만 먹다 모처럼 그게 들어가 그렇지, 그러게 작작 먹으라고 했잖여, 라며 흐흣 웃기도 하셨다. 내가 흑역사라고 말한 건 할머니의 말씀이 식탐 있는 아이라는 말로 들려서다. 끼니 말고는 겨우 칡뿌리나 삘기, 싱아 같은 것이나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발 빠른 아이들이 먼저 차지해 버리곤 했다. 추석 명절 때는 차례 음식과 송편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 과식한 것도 맞고, 기름진 음식 먹어서 배앓이한 것도 맞다.


그렇게 이틀쯤 배앓이를 하고 나면 깨끗이 나았다. 할머니는 수탉에게 빌어서 나았다고 믿었고, 나는 속을 비워내니 나았다고 믿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더 과학적이고 논리에 맞았지만 다음해에 또 배앓이를 하면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수탉에게 빌었다. 눈을 꼭 감고 횃대에 앉아 자고 있던 수탉은 내가 비는 걸 못 봤을 테지만 목청을 다해 울어댈 적마다 너 나한테 빌었지, 다 알고 있어, 그러는 것 같아 수탉 보기가 부끄러웠다.


할머니는 배앓이할 적마다 왜 수탉에게 빌도록 했을까. 오줌싸개에게 키 씌워 소금 얻어 오게 하는 것 같은 이유에서일까. 비슷할 것 같다. 다음 추석에는 적게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 배앓이는 육 학년쯤 되었을 때 멈추었다. 기름진 음식에 적응된 뱃속 덕분인지, 덜 먹은 덕분인지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시골엔 여전히 수탉이 울까. 명절 때 배앓이 하는 아이들도 있을까. 아득한 먼 이야기인데 엊그제 일처럼 내게는 선명하기만 하다. 물질적 결핍이 많았던 그날들이지만 정신적으론 저 보름달처럼 풍요로웠다. 그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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