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달과 저녁달
새벽에 보았으니 새벽달이라 하리라. 정확하게 말하면 정월 열사흘 새벽에 본 달이다. 전날 떴던 달이 아직 지지 않은 걸 다음날 새벽에 본 것이므로. 새벽 다섯 시에 도로를 달리다 깜짝 놀랐다. 서쪽 하늘에 주홍 가까운 노란색 둥그스름한 달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시의 가로등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달이었다. 아, 새벽달이 이렇게 정겨운 모습이었던가. 홀로 외로이 어딘가 가는 나에게 벗으로, 길잡이로, 나온 수호신 같았다.
새벽달을 보며 달린다. 이른 새벽 도로는 한산하다, 여기가 도시인가 싶을 정도로. 달은 가끔씩 가리는 구름 때문에 반달로 보였다 아기를 잉태한 여인으로 보였다 한다. 나도향의 ‘그믐달’이라는 수필을 읽은 기억이 나서 고개를 갸웃했다. 새벽에 뜬 달은 남의 담을 넘는 도적이나 노름하다 새벽에 오줌 누러 나온 사람이 보는 달이라고 표현한 것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그믐달이다. 이렇게 밝은 열사흘 달 아래서 남의 집 담을 어떻게 넘을까. 정겹다, 새벽달이, 열사흘 달이.
열사흘 달이 왜 이다지 정겹게 다가올까,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벗처럼. 나의 이만큼 한 감성은, 유년의 기억들 특히 달이나 별 나무 풀 꽃 같은 자연물로부터 발현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자연물들과 벗이 되어 교감했고 즐겼다. 그래서 혼자 노는 게 조금도 싫지 않았으며 심심하지도 않았다. 삼라만상의 자연이 내 벗이었고 우주였으며 꿈이었으니까. 밤길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였던 건, 달과 별 덕분이었으리라.
나는 뒷문 여닫이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잠이 깨곤 했다. 할머니는 앞문 창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을 막는 것처럼 누우셨고, 옆에 남동생이, 가운데에 내가, 내 옆에 막내가, 어머니는 뒷문 창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을 막는 것처럼 뒷문 바로 옆에 누우셨다. 요의를 느껴 깨는 적이 있지만 훤한 달빛 때문에 깰 적이 더 많았다. 그때가 아마도 열하루에서 열여드레까지 일주일 정도 되는 기간이었을 테고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벽에 친 못에 걸린 옷가지들과 제사 때 쓰고 남은 알록달록한 사탕 옥춘당이나 산자 등이 들어있는 다락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달빛에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할머니가 다락문을 열면 우리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곤 했던 곳이다. 아랫목 중간에 있어 까치발을 하면 손이 닿았지만 우리는 절대 열지 못하는 금기의 다락,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이 다 들어 있는 것처럼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나중에 할머니의 통제 받지 않을 정도로 컸을 때 열어보니, 퀴퀴하고 매캐한 그을음 냄새, 다락 벽과 천장에서 떨어진 흙먼지만이 신문지 바른 바닥에서 묻어 나와, 첫사랑의 환상이 깨지듯 동화 속 이야기를 꿈꾸었던 환상이 깨졌다. 낡고 낡은 화투 한 묶음, 할머니의 담배 서너 갑 , 성냥, 초 두 자루, 신문지 안에 여전히 남은 옥춘당 두어 개, 다락 가장 안쪽에 손수건에 싼 지폐 몇 장과 동전. 그게 다였다.
그 다락을 비추는 달빛은 손잡이가 어슴푸레 보일 정도였다. 벽에 걸린 옷가지들은 허수아비 같았고, 언젠가 보았던 걸인의 모습 같기도 했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자고 있는 동생들과 앞문 쪽으로 뒷문 쪽으로 돌아누운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았다. 가족들의 숨소리에 섞여 들리는 부엉이 울음은 처연한 마음이 들게 했다. 이쪽저쪽 돌아보느라 풀 먹인 이불홑청이 바스락바스락 맑은 소리를 내면,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사기요강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주셨다.
“오줌 안 마려워요.” 내 말에 할머니는 어서 자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다 다시 잠이 들어, 발바닥이 따끈따끈한 온기를 느낄 때쯤 눈 떠보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세수할 물 데우고 밥 하느라 부엌에서 달그랑 달그락 소리가 났다.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달을 본 적은 없다. 달빛으로만 수년간 만났던 달이지만.
그 달을 오늘 새벽에야 만났으니 오래전 벗을 만난 것 같지 않으랴. 달아, 새벽달아, 참으로 오랜만이야.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니? 나는 너를 달빛으로만 기억해. 그날 생각하면 마음이 포근하고 포만감을 느껴. 운전하며 혼잣말하다 실소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새벽달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길을 인도해 주었다.
오후 여섯 시쯤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보다 먼저 돋아난 정월 열사흘 달을 만났다. 새벽처럼 나를 인도하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새벽에는 서쪽으로 가는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었고, 저녁에는 동쪽으로 가는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는구나 싶어서다. 한강 다리 위 동쪽 하늘에는 새벽에 보았던 달보다 더 둥글어진 달이 웃고 있었다. 도로는 막혔지만 마음은 느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