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by 최명숙

우리 아파트 정문 근처에 나무의자가 있다.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고, 나무의자 옆으로 난 작은 도랑은 보통 거의 말라 있는데, 비가 오고 난 후엔 빗물이 제법 고인다. 축축한 물기 덕분에 창포가 자란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선 언제나 노란 창포 꽃이 핀다. 그것도 아주 무더기로. 그 도랑 옆 둔덕엔 자작나무 몇 그루와 벚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두어 그루가 서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 나무의자에 앉아 쉬는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때론 산책자들도 그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린다. 언젠가 밤 산책을 하면서 고등학생 서너 명이 앉아 지절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학원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지치고 힘든 학업을 잠시 멈추고 친구들과 무슨 이야긴지 나누며 웃는데, 꼭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순수하고 고와 보였다. 밤이라 그들은 미소 띤 내 모습을 못 보았으리라.


나는 등산할 때도 쉬지 않는 편이다. 고쳐야 할 습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상까지 그대로 올라간다. 언젠가 딸과 산에 간 적이 있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모든 게 전투적이야! 좀 쉬어 갑시다,라고 했다. 내가? 아니야, 난 느긋해. 내 말에 딸은 박장대소하며 사람은 자기를 잘 모른단다. 그 후 산에 갈 때 전투적이라는 딸의 말이 생각나 천천히 오르곤 하지만 여전히 정상까지 그냥 걷는다. 곳곳에 쉴만한 의자가 있는데도. 그런 내가 아파트 정문 옆 나무의자에 앉겠는가.


꼭 한 번 앉아보았다. 나이 육십 대에 들어서면서 마음에 어떤 기류가 흘러들어오던 몇 해전 연말이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던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무튼 송년회라는 이름으로 친구들 몇이 모였던 날이다.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날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그런대로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안정된 삶을 보내고 있을 그때쯤.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국민학교라는 이름의 초등학교에 함께 다닌 친구들은 연말이 가지고 있는 눅눅한 감정 때문이었을까. 그날 우리들은 술 몇 잔을 호기롭게 마셨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대리기사를 부르긴 난생처음이었는데,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뜬금없이 남자사람친구 ‘홍’이 같이 차에 올랐다. 딸의 말대로 소도 때려잡게 생긴 내가 아닌가. 더구나 육십 대가 된 그닥 예쁠 것도 없는 늙은 여자인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보호한단 말인가. 필요 이상으로 씩씩해서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보호를 받아본 적 없는데. 이 무슨 친절인가 싶어 강하게 거절했지만 산골에서 같이 나고 자란 코흘리개 친구들만이 가진 동기간 우애 비슷한 징글징글한 정은 나의 자율성을 발현시키게 두지 않았다.


홍과 나는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내 차를 타고 와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친구는 우리 마을에서 30분 이상 가야 하는 곳에 살았다. 술 마실 작정하고 차를 놓고 온 그는 택시를 타야 했다. 자정이 막 넘어가고 있는 시각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나와 홍은 아파트 정문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그 나무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무슨 이야길 했던가. 건강하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의례적인 말을 했을까. 잊었다. 하나만 생각난다. 취기 서린 눈으로 밤하늘을 보며 홍이 말했다. 좋다, 그치? 하늘 좀 봐, 고향 하늘 같지?라고.


빈 택시를 두어 대 그냥 보냈고 그 후에 온 택시를 타고 홍은 집으로 갔다. 멀어지는 택시를 보며 나는 손을 흔들었던가,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홍도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확신이 들어 갑자기 그 친구가 가엾어졌다.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돼 어머니 여의고 일찍부터 객지로 떠돌며 청년 시절을 보낸 그였다. 우리 어머니는 홍을 보면 아무 말 없이 밥을 차려주시곤 했는데. 그 때문인지 명절만 되면 꼭 전화해서 어머니 안부를 묻던 친구다.


그런 그가 요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면 읽긴 해도 답이 없다. 재작년 연말에 암 수술을 받았다. 걱정하는 나에게 전화해서 이 오빠 건강해질 거니까 걱정 마! 라고 해서 웃음을 유발했던 친구다. 엄밀히 말하면 오빠는 오빠다. 나보다 꼭 5일 먼저 태어났으니. 해마다 대보름날 아침이면 홍에게 전화 걸어 더위를 팔곤 했는데, 작년부터 그 장난도 못 치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항암치료가 끝났고 지금 회복 중이란다. 올해 첫날 홍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꼭 건강 회복하라고, 누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으니 보고 싶어도 울지 말라고. 역시 묵묵부답. 하지만 나는 안다. 메시지 읽고는 까불고 있어! 오빠한테, 하면서 빙그레 웃었으리라는 걸.


오늘도 산책하는데 나무의자에 시선이 간다. 홍이 앉았던 자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게 했던 말, 취기 서린 아련한 눈동자. 잠시 또 기도했다. 어서 건강해져 평소의 내 친구 홍이로 돌아올 수 있기를. 안타깝고 아픈 마음만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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